하, 참. 이렇게 사실적이면서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니. 한동안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자주 보던 표지라 고민 없이 샀지만 이런 내용이 담겨있을 거라고 감히 상상하지 못 했다. 책 앞편에 작가 소개를 보니 영화 시나리오와 소설 작업을 병행한다고 적혀있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영상으로 떠오른다. (오해가 생길 것 같아 적자면, 주인공의 행위가 아닌 이미지 말이다.)
이야기 속에서 이 부장의 외적인 묘사는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러기 아빠’, ‘부장’, 각종 안쓰러운 모습들을 보며 왠지 엄청나게 나이가 들거나, 대머리 회사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다 보면 46세라는 정확한 나이가 나온다. 게다가 한 에피소드에서 정장을 입고 등장하는 이 부장의 모습에 놀라는 ‘구매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말끔하고 지하철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중년의 모습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결말이 더욱 짠하기는 하지만.
결말을 적을 수 없지만 어찌 보면 새드엔딩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해피엔딩일 수도 있지만, 내가 주인공이라면..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나 책 자체는 유쾌하다. 덤덤하게 담은 중년의 모습이 인상적이고, 같은 회사원으로서의 고충도 가미되어있어 흥미롭기도 하다. 책을 구입할 때는 몰랐던 뒤 커버의 메시지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의, 대체로 무난하게 살아온 마흔여섯 기러기 아빠의 은밀한 자기 개발”
이렇게 책 커버에 적힌 문구에 공감해 본 적이 드물다. 약 170페이지의 책을 읽기 번거롭다면, 저 문장만 읽어도 충분히 읽은 책 목록에 넣어도 될 것이다. 아무래도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와 잘 맞는다. 어느 글인가 적었지만, 소설은 참 나와 안 맞는다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시리즈를 읽으며 느낀 것은, 내가 ‘다른 사람이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어디선가 ‘꼭 읽어야 할 책’이라며 추천한 책, 그리고 ‘들고 다니면 멋있는 책’만을 찾은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소설이라면 수백 권도 읽을 수 있을 거란 용기가 생겼다. 시간을 가볍게 흘려보낼만한 책을 찾는다면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