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고 또 닳도록 본 내 인생의 책.

당신이 기뻐하는 것에 나도 기뻐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무지하지 않다는 걸, 천박하지 않다는 걸, 남의 험담을 일삼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면 한 편의 코미디야. 당신이 지성에 얼마나 겁을 먹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당신이 아는 다른 남자들처럼 당신에게 바보처럼 보이려고 별 짓을 다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기 대문에 개의치 않았어.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랑에 보답받지 못하면 불만을 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어. (중략)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때때로 당신이 나로인해 행복하거나 당신에게서 유쾌한 애정의 눈빛을 느꼈을 때 황홀했어.

달과 6펜스의 저자 서머싯 몸의 작품, 인생의 베일.

독서 토론회에 갔을 때 추천을 받고 호기심에 그 다음날 바로 구매해서 읽어버렸다지.

인간의 모습들을 무심한듯 적나라하게 풀어내고 있다.

1920년대의 여성의 지위, 외도, 죽음, 죽음이 드리워진 마을, 임신, 수녀원, 고아, 사랑의 잔인한 속성, 남성의 예민함과 나약함….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전통적 가치관의 여성이 긍정적 여성상을 바로 세워가지고 새출발을 한다는 점에서

(비록 중간에 희망이 구겨져버리기도 하지만, 작가님의 관용아닌 관용으로 구겨진 희망이 다시 펴지는 모습을 보니…),

이 소설은 어찌보면 그저 그런 소설이 아닌, 성장소설이고 읽고나면 마음이 괜시리 뿌듯하고, 어디선가 아버지랑 잘 살고 있을 것같은 살아있는 느낌.

 

그리고 나의 모습을 투사화 시켜서 키티를 바라보게 되었다.

난 부정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남편의 협박에 못이겨서 가는 것도 아닌 데, 그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 겁난다. 무섭다. 두렵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기대된다.

키티가 만난 원장 수녀님처럼 멘토가 되어줄 분을 만날 수도 있을 거라는 설레임, 아직은 내 안에서 자라나길 거부하는 내면아이가 내면 어른으로 성장할 꺼라는 기대감.

 

암튼,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추천하는 책.

책이 술술 넘어가지만, 작가님이 설정해놓은 책 속의 숨은 포인트들은 절대 술술 넘어가기 힘든, 생각하게 하고, 아! 하게 하고-

-2011.04.15 블로그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