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일 2011년 3월 18일

대학교 2학년이었을 때 남친이 자신이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길 하며, 태양빛 때문에 총으로 사람을 죽였다며, 뭔가 느낌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당시 난 무슨 생각을 하면 살았는지 모르겠는데 남친이 얘기한 소설이나 그 내용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고,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니 뭔 미친놈인가, 단순히 넘겼던 것 같다.

20년이 흘러 그 소설이 알베르 카뮈라는 유명한 소설가의 ‘이방인’이라는 걸 알았고, 한번 읽어봐야지 사다놓은 채 책꽂이에 몇 달을 줄만 세워놓았었다.

 

그 이방인을 이제야 읽었다. 감동과 감탄은 왜 빨리 읽지 않았나 하는 후회를 자아냈지만 그래도 이제 읽어 다행이다.

이 소설에는, 알제리라는 더운 아프리카 배경이라 그런지, 햇빛과 피로와 졸음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엄마의 장례식에 가기위해 버스를 탔을 때 주인공은 나른한 졸음에 빠졌다. 엄마의 관 앞에서도 졸았고, 마리와 수영할 때는 부표 위에서·해변 모래 위에서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장례 행렬 속에 넘치는 햇빛은 비인간적이어서 사람의 기를 꺾을 정도였고, 별장으로 놀라갔던 해변의 햇빛은 영문 모를 취기를 연상시켰다. 아랍인이 들었던 단도는 햇빛에 반사되어 이마를 쑤시는 칼날 같더니 나중엔 두 눈을 파헤치는 듯했고, 결국 그는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이고 말았다.

알제리가 어떤 곳인지 사실 난 전혀 모르겠다. 더군다나 바닷가의 풍경이라든가 날씨도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을 경험한 바로 직후라 그런지, 소설 속의 이글거리는 태양빛이 떠오르면서 정신의 혼미를 가져올 수도 있겠다는 연상이 바로 이어졌다.

주인공 뫼르소의 살인을 옹호하고 싶진 않지만 누구나 그런 상황이라면, 판단이 흐려질 정도의 더위와 칼을 쥔 적의 모습을 보고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삶은 부조리고 모순 덩어리란 말이 주인공에게 딱 어울리지 않나싶다. 상대방의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짜깁기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 그 상대방이 큰소리로 따지지 않으면 더 불리하게 돌아가도록 머리를 쓰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부조리로 만드는 것이리라.

뫼르소의 마지막을 종교로 이끌기 위해 찾아온 사제가 마지막에 눈물이 가득한 채 돌아서 사라질 때 나도 눈물이 살짝 맺혔다. 냉정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뫼르소에게 감정이입 같은 건 안 될 것도 같은데, 나도 모르게 그를 응원하고 있었나 보다. 가슴이 조금 답답했지만 큰 감동이 밀려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정서씨의 ‘카뮈로부터 온 편지’란 책을 받고 아직 읽지 못했는데, 그의 생각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난 민음사 김화영 번역에 한 표를 보내고 싶다. 문학동네 이기언 번역과 비교해가며 읽었는데, 민음사 쪽이 (간혹 단어나 문장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문학적으로 훨 감미로웠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