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젊은 시인을 대표하는 탁월한 감각, 깊은 사유
한국문학사와 대결하는 아름답고 슬픈 박력
어느 날 나는 나의 영혼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아이가 너무 좋았다
-「오수」에서
여기 시를 쓰는 자신의 영혼을 견딜 수 없어 하는 젊은이가 있다. 동시에 시라는 아이를 너무나 좋아해 버린 시인이 있다. 그의 두 번째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구관조 씻기기』로 제31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황인찬 시인이 돌아온 것이다.
이번 시집 『희지의 세계』를 통해 시인은, 한국문학사와의 대결에 돌입한다. 그것은 ‘매뉴얼화’된 전통과의 다툼이며, 전통에 편입하려는 본인과의 사투이기도 하다. 주체가 퇴조한 동시대 젊은 시인의 움직임 중에서 황인찬의 시는 돋보이는 사유와 감각을 보여 준다. 치밀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 젊은 시인 황인찬이 구축한 『희지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 종로에서
그래도 우리는 걸을 거야 서울의 밤거리를 자꾸만 걸을 거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서 그냥 막 걸을 거야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아직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나는 너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된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종로사가」에서
대결은 종로에서 시작된다. 제목을 제외하면 장소를 변별할 수 없는 시를 두고서 시인은 여기가 종로이며, 그리하여 종로는 모든 곳이자 아무 곳도 아님을 역설한다. 일상의 소음, 일상의 회화, 사소한 사건이 종로의 질료이다.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선생님’, ‘의사’, ‘오래된 거리’ 같은 것이다. 일상의 특징은 그것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평범하다는 점인데, 시인은 어디보다도 전통적인 평범함으로 가득 찬 종로 복판에 예민한 시선을 던진다. 그의 시선에서 평범함의 이면이 벗겨진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된 일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일상의 매뉴얼을 차가운 시선으로 다시 관찰할 수 있다. ‘종로’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황인찬과 한국문학사와의 대결은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 희지와 두희와 숙이 등과 함께
숙이는 생각한다 사랑이 창밖에 내리는 빗물이라면, 뺨 위로 흐르는 이것은…… 그것은 생각이 아니었고,
결정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숙이의 정치」에서
매뉴얼을 상대하는 것은 결국 캐릭터다. 황인찬에게 캐릭터는 공공에게 노출된 상품으로서의 캐릭터 아닌, ‘나—너’의 이자 관계 속의 캐릭터다. 희지와 두희, 숙이는 모두 실재하는 인물이 아닌 캐릭터로 존재하며 시인이나 독자는 캐릭터를 움직이는 유저가 되어 매뉴얼의 세계를 비행한다. 의미가 부재한 이름을 얻은 캐릭터나, 이름이 없는 의미만 얻은 명사들, 즉 너, 그, 개, 연인 등은 모두 캐릭터라는 중대한 장치에 부합한다. 그들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가 그렇듯이 매뉴얼을 무시하고 매뉴얼에 균열을 내면서 동시에 매뉴얼에 복속되기도 한다. 황인찬은 시집 『희지의 세계』를 통해 매뉴얼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매뉴얼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그것의 무능함을 폭로하는 아이러니한 목적성을 드러낸다. 「신세기 에반겔리온」에서 주인공 이카리 신지가 매뉴얼의 완고함이 결국 그것의 불가지성에 있다는 걸 폭로하는 것처럼, 황인찬의 캐릭터 또한 잘 알지 못해 싸울 수 없는 상대와 맞닥뜨리며 분노나 억울함이 없이 패배하는 방식으로 한국문학사와 대결에 열중하고 있다. .
■ 매뉴얼을 거부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 다시 아침의 빛과 어울리게 되는지
너의 아침은 이제 슬픔을 모르고
너의 아침은 이제 사랑하는 것만을 사랑하는 것
-「너의 아침」에서
황인찬의 시는 한국문학사를 부정하면서도 필연적인 패배 혹은 어쩔 수 없는 속박을 본능적으로 안다. 매뉴얼이 되어 버린 전통을 비웃고 어떤 가르침도 거부하고는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다시 “아침의 빛과 어울리게 되”는 어둠처럼 시적 히키코모리는 다시 세상으로 나아간다. 한국문학사에 대한 황인찬의 도전은 여기까지다. 종로라는 전통적 배경에서 연인 관계에 가까운 캐릭터를 통해 펼친 대결의 승자는 누구일까. 죄악감을 얻은 우리일까? 죄악감을 발생시킨 저들일까? 승자와 패자를 가늠하기 힘든 대결. 다만 황인찬의 시를 통과한 우리는 “판결이 끝났다”는 사실을 등에 지고서 “평생 동안”의 “죄악감”을 얻었을 따름이다. 이 과정에서 황인찬은 모더니즘의 새로운 기수로 임명받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인의 정수리에 있는 난쟁이가 되길 거부했다. 시인은 차라리 한국시에서 ‘모더니즘이라는 거인’ 자체가 되어 지금까지의 거인의 자세와 태도, 옷차림과 말투를 바꾸려 한다.
이렇게 황인찬의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는 한국시의 전면에 위치하며, 한국문학사의 맨 앞에 자리하는 시집이 될 것이다.
■ 해설에서
그와 동시대의 젊은 시인들의 시에 나타나는 ‘주체의 퇴조’는 ‘이카리 신지의 고민’과 어느 지점에선가는 닿아 있다. 아무도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지 않고, 그 참고점이 될 만한 전통도 이미 매너리즘(=매뉴얼화)에 빠져 버린 상황에서 그들은 몸을 숨기고 대상을 관조하고 사태를 관망하는 데 머물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와중에 모두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누구의 도움도 없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니거니와, 한국문학사와 대결하는 황인찬의 박력과 패기는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장이지(시인)
독자 평점
4.5
북클럽회원 6명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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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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