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수상 작품 천성에 가까운 순수한 미감을 지닌 황인찬의 첫 시집최근 우리 시에서 볼 수 없었던 농도 짙은 개성사물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무수한 질문과 운동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예술적인 다양한 방법론을 지워 버리는 독특한 방법론을 지닌 희귀한 시인

구관조 씻기기

황인찬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2년 12월 7일 | ISBN 978-89-374-0809-0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32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2012 <김수영 문학상> 수상 작품
천성에 가까운 순수한 미감을 지닌 황인찬의 첫 시집

최근 우리 시에서 볼 수 없었던 농도 짙은 개성
사물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무수한 질문과 운동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
예술적인 다양한 방법론을 지워 버리는 독특한 방법론을 지닌 희귀한 시인

 

“20대의 젊은 시인이 갖추기 힘든 기량이다. 주체의 편에서 치열하게 대상과 싸우거나 대상을 변형하고 왜곡하는 시에 조금은 지친 사람이라면, 황인찬의 시가 주는 깊은 위로에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그는 무례함이라고는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이 세계를 지긋이 바라본다.”박상수 시인이 표현한 황인찬이다. 2012년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인,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장면과 표정 없는 언어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안정적이고도 개성적으로 그려내는 시인, 미적 망각이 아닌 의지로 ‘그냥’ 말하는 시인. 2010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한 이후 2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지면을 통해 그 개성을 인정받아 온 황인찬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구관조 씻기기』가 민음의 시로 출간되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송승환은 황인찬을 ‘첫 시집이 기다려지는 젊은 시인’으로 주목하며 “동세대 신인들의 시가 보여 주는 장황하고 화려한 산문체 언술 방식과 거리를 두고 최소한의 언어와 간결한 형식으로 시적 주체의 실존과 기원을 응시하는 시를 써 왔다.”고 평가한 바 있다. 등단작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외 총 54편의 시로 구성된 시집 『구관조 씻기기』는 전위적인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황인찬 시인의 황홀하면서도 슬픈 백색 감성을 제공한다.

 

■ 김춘수에서 시작된 반인간주의 전통 계승

황인찬 시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바로 성스러움, 신비감, 고요함이다. 황인찬의 시는 무엇보다 고요하다. 애초에 어떤 감정의 변화도 경험해 본 적 없다는 듯 황인찬의 시적 주체들은 격앙되는 법이 없고 크게 절망하거나 한탄하는 일도 없다. 그저 지켜보는 것으로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담담하게 대상을 바라볼 뿐이다. 이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거리 두기로 해석되고는 한다. 인간 중심적인 관점이나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의 감정으로 대상을 드러내는 대신 사물의 사물성과 순수성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보존하려는, 김춘수로부터 시작된 한국 시의 오래된 반인간주의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요함에서 발생하는 공백은 시간을 정지시키고 소음을 지우며 사방으로 번져 나가고, 그와 대상이 만나는 곳은 정적에 둘러싸여 이상하고 신비로운 세계로 변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백 속에는 대상을 쉽게 규정하거나 침범하지 않으려는 품격과 배려, 예의가 있다. 등단작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은 지긋한 바라봄 끝에 ‘백자’가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의 순결한 이미지로 깊은 울림을 남기며 은은하게 빛나게 되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이었다
이곳에 단 하나의 백자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알았다
(……)
나는 단 하나의 질문을 쥐고
서 있었다
백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많은 여름이 지나갔는데
나는 그것들에 대고 백자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여전했다
(……)
사라지면서
점층적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믿을 수 없는 일은
여전히 백자로 남아 있는 그
마음
여름이 지나가면서
나는 사라졌다
빛나는 것처럼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에서

 

이 시를 통해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성스러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시인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섬세하게 대상을 지키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 안에서 유한하고 깨지기 쉬운 사물들은 황인찬의 시 안에서 초역사적이고 초자연적인 사물로 오래 보존된다.

 

 

■ 시대의 가장 강력한 항체가 내포된 시

그의 시적 주체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무조건 성스러운 대상을 발견하여 지켜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기에 더욱 특별하다. 오히려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그러나 너무나도 온화하면서도 관능적으로 그는 신의 형상을 이 땅에 구현해 낸다. 말하자면 황인찬의 시는 표면은 고요하나 심층은 역동적인 시다. 가령 “계절이란 말보다 계절감이라는 말이 좋듯”이(「유체」) 실체를 만질 수는 없지만 실체를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는 이미 실체를 감각한 것처럼 대상과 연결된다. 그의 시가 의외로 촉촉하고 감각적인 이유다. 실체보다는 실체를 가리키는 언어에서 더욱 예민하게 에로스를 탐지하는 사람. 백자의 내부는 텅 비어 있지만 그는 이미 ‘백자’라는 말을 통해 백자를 감각하고 있으며 여름의 내부가 텅 비어 있지만 이미 그는 여름을 자신의 육체 속에서 눈부시게 되산다. 그는 멀리 있는 신성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게다가 관능적으로 감각하는 존재이기도 하면서 그 신성을 자신의 육체를 통과시켜 적극적으로 구현해 내는 ‘감각의 전도사’이기도 하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처에서 젖은 풀이 생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게 너무 생생해서
실감이 나질 않았다
여중생들이 비를 맞고 신났다 이 또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달리는 차들과 그것들이 튀기는 물과 깜빡이는 불빛의 긴 꼬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지하로 돌아가고 싶었다 거기에 두고 온 것이 있었다 거기엔 물이 이미 차 있었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계절이 흘렀다
비가 계속 내렸다 비를 실감할 수 없었다
물에 비친 검은 머리카락 영혼들이 내게 손짓했다
계절감이란 말이 좋았다 계절이란 말보다

몸이 자주 부었다
—「유체」

인간의 여하한 관념에도 침범당하지 않은 순백의 신성을 보존하겠다는 듯이 그는 사물과 행위의 인간주의적인 때를 지운다. 이로써 그의 시는 일상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일상을 뛰어넘고 무한한 해석의 심층과 숨골을 품게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황인찬의 시가 시대의 가장 강력한 항체 역할을 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는 있지만 하지 않을 자유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황인찬의 시가 더 소중해진다.

 

 

■ 신성한 전도사, 백색의 간달프

신성의 발견과 구현이라는 심층의 정신 작용을 펼치기는 하지만 그것은 성공보다 실패에 이를 때가 많다. 감각이 발달한 사람이라면 쉽게 눈치채겠지만 실상 이 시집에서 빛을 되살려 내는 아름다운 시편들은 1부에 집중되어 있을 뿐 나머지 2, 3, 4부는 오히려 회색이나 검은색에 가깝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기에 나는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의 안쪽에는 나와 기원이 있었다
나는 기원을 바라보며 혹시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는지 물었다
기원은 내게 잘못된 일은 없다고 말해 주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올여름의 아름다운 일들을 생각했다
아무런 일도 생각나지 않았다
뜨거운 빛이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개종」

이것이 백색의 시라면 끝내 빛의 구현에 실패한 자들의 은밀한 고통. 신성의 구현에 내재한 회복할 수 없는 균열. 마침내 도달한 파국의 심연을 보여 주는 다음은 회색 혹은 검은색 시다.

혼자 집에 앉아서 물을 마셨다
한 번 마시면
멈출 수 없었다
(……)
아무도 없는 집이 심심했다 말 걸어 주는 사람도 없고
살아 있는 사람도 없었다
—「물의 에튜드」에서

황인찬이 실패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나는 과연 살아 있는 것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불안의 계기로 작동한다. 황인찬의 시가 아름다우면서 서글픈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사물과 만나지 못하는 삶이 계속되다 보니 역설적으로 그는 비실체적이고 비현실적인 격리감이 지속되어 도무지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인지 죽어 있는 것인지를 실감하지 못하는 이상한 감각의 상태로만 자기 삶을 자각하는 상태에 이른다. 비극이다. 해결할 수 없는 파탄이다. 그가 신성의 전도사이자 백색의 간달프로서 치루어야 할 혹독한 대가다. 그의 시에서 자주 이상한 내면의 목소리가 튀어나올 때 우리는 바로 이 처연한 불행을 느낀다.

황인찬은 그저 바라본다. 투명하고 담담하게 계속 바라본다. 자신의 손이 닿는 과일마다 썩어 있음을 발견했던 「원정(園丁)」의 김종삼처럼, 마치 손을 뻗기만 하면 죄를 짓게 될 것임을 예감하는 사람이라니. 시적 주체는 도저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행동의 모든 것이 죄와 연결되는 프로세스를 지닌 사람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이 아닐까.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을까. 있다. 그가 바로 황인찬이다. 슬픔이 장막처럼 드리워 있는 ‘무위’의 시, 더럽혀진 자신을 발견하고 꾹꾹 울음을 눌러 참는 자의 비감이 서려 있는 시, 무의미한 중립성을 견지하는 듯하지만 깊은 정서적 울림을 동반하는 지극히 세련되면서도 전위적인 시. 인간의 옷을 입고 속세를 살아가는 백색의 기사, 황인찬의 시다.

 

 

■ 추천의 말


 

『구관조 씻기기』는 언어가 닿지 않는 지점 또는 사물이나 사물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무수한 질문과 운동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을 보여 주는데, 시인은 거기에 은유적인 이름을 붙여 주기보다는 감추면서 드러내기를 통해 오는 미세한 자극을 즐기는 것 같다. 그가 앞으로 이루게 될 시적 성취에 대한 기다림은 불안이 아니라 큰 즐거움이다. —김기택(시인)

너무 빨리 시작해서 너무 빨리 끝나는 음악 같은 시의 각 연들은 각각 하나의 인상 깊은 구체성에 도달하고 있다. 이러한 인상적인 조각들이 또 모여 세상 안에 숨겨진 서늘하고 끔찍한 역설을 드러낸다. 그렇다. 무미건조한 신문지 몇 장처럼 간결하고 감정이 실리지 않는 몇 개의 시구가 세계의 거대한 피투성이 머리를 덮고 있다. 그 덮은 모습은 피투성이를 직접 대면하는 것보다 끔찍하다. 이렇게 시어에 마음을 섞는 동안 이미 우리는 이상한 아름다움으로 차 있는 건물에 저도 모르는 사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서동욱(시인・문학평론가)

언어에게 옷을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언어를 씻기는 방식을 통해 그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적 경험을 제공
한다. 그는 예술적인 다양한 ‘방법론’을 지워 버리는 ‘방법론’을 지닌 희귀한 시인이다. ‘그냥’ 말하겠다는 것이 미적 망각이 아니라 의지일 때, 그의 시학은 우리의 눈을 씻긴다. 그를 따라서 “놀라울 일이 없는데도 나는 놀란다”. 그에게 ‘낯설게 하기’는 기법이 아니라 세계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물의 침묵이 인간적인 목소리 너머에서 깨어나고 있다. 나는 ‘시’라고 말하고서, ‘시’라고 말한 것이 놀랍고 ‘시’가 놀랍다. 김수영의 말대로 “침묵의 한 걸음 앞의 시, 이것이 성실한 시”라면, 황인찬의 시를 두고 성실한 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김행숙(시인)

 

그렇다. 신성(神聖). 최근 어떤 젊은 시에서 우리가 신성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가? 그의 독특한 시적 자질의 핵은 그가 절대로 이를 직설적으로 제안하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운 장면으로 그린다는 점일 것이다. 덧붙여 그가 대상을 쉽게 침범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그것이 어떤 대상이든 간에 주체와 대상 사이에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이상한 격리감’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 그는 지상의 모든 존재를 신성의 잠재적 구현자로 예감하고 있기 때문에 감히 신을 만질 수 없는 수행자처럼, 마치 울타리를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믿는 신자처럼 어떤 종교적인 염결성으로 대상을 바라본다고 말이다. 공백은 격리감으로 뒤바뀐다. 그야말로 신성한 격리감이다. —박상수(시인・문학평론가)|작품 해설에서

목차

1부
건조과
구관조 씻기기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듀얼 타임
순례
캐치볼
유체
서클라인
여름 이후
낮은 목소리
목조건물
X
개종

2부
개종2
면역
거주자

항구
파수대
구조
구획
발화
돌이 되어
저수지의 어둠
물의 에튜드
개종5

4부
혼자서 본 영화
세컨드 커밍
히스테리아
무화과 숲

작품해설/박상수
서글픈 백자의 눈부심

작가 소개

황인찬

1988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문창과를 졸업했으며 2010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 『구관조 씻기기』로 제31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는’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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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리뷰(2)

독자 평점

4.4

북클럽회원 11명의 평가

한줄평

어쩔 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졌을 때

밑줄 친 문장

바다에 있었는데, 겨울이었다 잘못 들은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아이가 바다에 빠졌습니다 당신 아이가 바다에 빠졌다구요 빠졌다구요? 바닷가에는 사람이 없다
- '말린 과일에서 향기가 난다 책상 아래에 말린 과일이 있다 책상 아래에서 향기가 난다 // 나는 말린 과일을 주워 든다 말린 과일은 살찐 과일보다 가볍군 말린 과일은 미래의 과일이다 // 말린 과일의 표면이 쪼글쪼글하다 // 말린 과일은 당도가 높고 식재료나 간식으로 사용된다 나는 말린 과일로 차를 끓인다 // 말린 과일은 뜨거운 물속에서도 말린 과일로 남는다 / 실내에서 향기가 난다'( 전문)
놀라울 일이 없는데도 나는 놀란다
도서 제목 댓글 작성자 날짜
구관조를 씻자
마요 2018.12.31
구관조 씻기기
베스 2015.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