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

중국인들의 가슴을 적신 한 아버지의 목소리

원제 부뢰가서(傅雷家書)

부뢰 | 옮김 유영하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1년 5월 1일 | ISBN 89-374-2473-8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3x196 · 380쪽 | 가격 10,000원

분야 논픽션

책소개

어떻게 하면 자식을, 아니 가족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알게 되는가
아들아, 힘을 다해 우리의 경험과 냉철한 이성을 바쳐 너의 충실한 지팡이가 되고 싶다. 어느 날 네가 이 지팡이가 귀찮다고 생각할 때 나는 소리 없이 종적을 감추어 절대 너에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편집자 리뷰

중국의 번역문학가이자 예술사가인 부뢰가, 폴란드로 피아노를 공부하러 간 그의 아들 부총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할 때까지 부총을 위해 쓴 편지들을 묶은 책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원저명 부뢰가서(傅雷家書))가 민음사에서 번역, 출간되었다.『부뢰가서』는 1984년 중국의 북경과 홍콩에서 동시에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100여만 부가 팔린 밀리언셀러이다. 이 책은, 아들 부총이 폴란드에서 열릴 제5회 쇼팽 국제 피아노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 1954년부터, 지은이가 문화 대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게 되는 1966년까지의 편지 110통으로 이루어져 있다.그런데 이 편지들에는 아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나서부터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직접 엄하게 가르치는 독특한 자식 교육법, 아들에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 잘못까지도 서슴없이 토로하고 반성하는 아버지로서의 솔직한 태도, 아주 작은 것까지도 세세하게 챙기는 섬세한 아버지의 모습,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들은 가정의 교육적 역할이 크게 감소한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부뢰는 어떤 사람인가?
아버지 부뢰(傅雷, 1908~1966)는 1950~1960년대 중국의 대표적인 번역문학가 겸 예술사가이다. 1926년에 상해 지지(持志)대학에 입학하였고, 1928년에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 파리 대학과 루브르 미술사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중국에 돌아와서는 상해 미술전문대학에서 미술사와 프랑스어를 강의하였다. 1930년대부터는 공직에서 물러나 프랑스 문학 작품 번역과 미술사 연구에 몰두하여, 서양 문학 작품과 미술, 음악 작품에 대한 풍부한 소양을 쌓아 나갔다. 1966년 문화 대혁명 발발 초기 홍위병들이 누명을 씌우자 부인과 함께 자살함으로써 무죄를 주장하였다.1934년 3월 10일 상해에서 아들 부총을 낳아, 부총이 세 살일 때부터 그를 자신의 밑에 두고 엄하게 교육시켰다. 아들의 재능을 확인하고 나서부터 문학과 서양 고전 음악을 직접 교육시켰고, 여덟 살 때부터는 가정교사를 두어 피아노 공부를 가르쳤다. 아버지의 슬하를 떠난 뒤에도 부총은, 아버지의 편지를 통한 격려와 가르침 속에서 각종 국제 피아노 대회에 참가해 많은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솔직한 아버지, 섬세한 아버지가 되자.
이 책에서 나타나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각별하다. 아들의 건강 문제, 금전 문제, 결혼 문제에서부터 음악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지은이가 아들의 생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특히 편지 봉투의 겉봉을 좀 더 깨끗하게 쓰라고 타이르거나, 편지 봉투에 글씨를 너무 크게 써서 우표 붙일 자리가 없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는 것은 지은이의 사랑이 얼마나 세심한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런데 잔소리에 가까운 이런 말들이 세심함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는 솔직한 태도 때문이다. 지은이는 편지들에서 자신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토로하곤 한다. <편지를 자주 해주지 않아 너무 가슴 아프다>, <홍콩에 왔을 때 전화를 해주지 않아 못내 서운했다>는 등의 감정 표현을 자식에게 그대로 하고 있다. 또 <아들아, 내 아들아! 너를 어떻게 보듬어주어야 나의 이 회한과 뜨거운 사랑을 너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라며 아버지로서의 정을 그대로 드러낸다.특히 아들에게 너무 엄하게 대했던 지난날을 돌이키며 가슴 아파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은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도 솔직해야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아버지로서 나는 중대한 잘못을 너무 많이 했다. 일생 동안 친구와 사회에 대해서는 별로 잘못한 일이 없지만, 집에서는 너와 네 어머니에게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많이 하였다. 뒤늦게나마 1년 전부터 내 잘못을 깨닫고는 늘 괴로웠는데, 특히 요 며칠 동안은 그 생각이 악몽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마흔다섯이 되어서야 비로소 부성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구나!
 
자식을 위해 전문가가 되자. 그리고 큰 그릇은 크게 키우자.
이 책에서 보이는 또 다른 자식 사랑은 아들의 교육을 위해 전문가가 되려고 하는 아버지의 애정이다. 지은이는 끊임없이 서양 음악 잡지들을 뒤지고, 그 속에 실린 훌륭한 글들을 번역하고, 그것을 아들에게 보낸다. 그리고 그 노력들 가운데에서 지은이 자신도 일급 음악 비평가의 수준에 가까워지게 된다. 이런 사실은 아버지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를 새삼 되새기게 해주는 대목이다.또 이는 근대 서구식 교육 방법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동양식 교육 방법이 성공을 거둔 사례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도덕 교육, 교양 교육, 전문 교육의 세 축을 모두 가정에서 떠맡아 일관성 있는 전인 교육이 얼마만큼 가능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 나타난 부뢰의 자식 교육법은 독특하다. 부뢰는 자식들을 아주 엄하게 대했는데, 자식들이 아버지 앞에서는 장난도 못 칠 정도였다. 식탁 예절, 식생활 습관에서부터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 때 지켜야 할 것들까지, 세심하게 그리고 엄하게 가르쳤다. 그리고 아들을 북돋워주어야 할 때는 주저하지 않고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었다. 이런 그의 가르침에 대해 그의 친구 루적이(樓適夷)는 <큰 그릇은 깎고 다듬어야 하는 법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부총이 그만큼 큰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큰 그릇을 깎고 다듬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핵가족화 속에서 약화되어 가는 우리들의 자식 사랑을 자연히 돌이켜보게 된다.

목차

1. 부뢰 부부의 편지
2. 부뢰 부부의 유서
3. 부총이 부모에게 보낸 편지
4. 이 책을 읽고 부뢰를 생각하며
5. 이 책을 엮고 나서

작가 소개

부뢰

1926년 상해 지지대학에 입학하고, 1928년 프랑스 파리대학과 루브르 미술사 학교를 졸업한 후 상해 미술전문대학에서 미술사와 프랑스어를 강의하였다. 1930년대부터는 공직에서 물러나 프랑스 문학 작품 번역과 미술사 연구에 몰두하였으나, 1966년 문화 대혁명 발발 초기 홍위병들이 누명을 씌우자 부인과 함께 자살함으로써 무죄를 주장하였다. 저서로는 『세계 미술 명작 20강』이 있고, 논문으로는 「베토벤의 작품과 그 정신」「소설 삼리만을 평함」등이 있다.

유영하 옮김

단국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홍콩 신아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천안외국어대학 중국어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논문으로 「혁명문학 논쟁(1928-1930) 연구」「5·4정신과 사회주의중국화 과정에서의 내성외왕」등과, 역서로 『중국어 시사문선』『중국 백년 산문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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