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린저는 야만적인 현대 사회를 고발하고
부조리를 울부짖는 예언자였다.”
생전에 절대 공개될 수 없었던 개인적인 기록과 주변 증언은 물론,
그의 문학 작품과 시대상을 균형 잡힌 시각에서 종합한 결정판 평전
전 세계 7000만 부 판매, 콜필드 신드롬을 일으킨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셀린저. 1965년 마지막 작품을 끝으로, 줄곧 침묵을 지켜 온 그가 2010년 91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샐린저 사후 최초로 발표된 전기 『샐린저 평전』은 『호밀밭의 파수꾼』, 『아홉 개의 이야기』, 『프래니와 주이』 등 그의 대표작이 탄생한 배경을 망라했을 뿐 아니라,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샐린저의 미발표 작품과 초기 단편들까지 모두 소개한다. 또한 샐린저의 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 유진 오닐의 딸 우나 오닐과의 사랑과 파경, 비밀에 부쳐진 첫 결혼, 출판사 및 언론과의 마찰, 그가 접한 동양철학과 신비주의 영향 등 베일에 싸인 샐린저의 사생활까지 전부 공개한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91년의 생애를 가로지르는 광대한 자료 조사, 엄밀한 작품 분석과 끈질긴 인터뷰 끝에 완성된 결정판 『샐린저 평전』.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샐린저 작품의 이면, 은둔 속에 감춰진 그의 일생이 마침내 밝혀진다.
▶ “샐린저의 삶과 작품을 균형 잡힌 시각에서 조명한 가장 완벽한 전기”
J. D. 샐린저의 이름 뒤에는 ‘은둔 작가’, ‘괴짜’, ‘사생활 보호에 과민한 사람’ 등 예사롭지 않은 표현들이 늘 따라다녔다. 실제로 샐린저는 1965년 마지막 작품을 발표한 이후로 수십 년간 코니시라는 작은 마을에 머물며 문단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은둔을 시작한 1965년은 작가 샐린저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전성기였다. 당시 그의 이전 작품들은 해마다 새로운 쇄를 찍었고, 『호밀밭의 파수꾼』은 매년 30만 부씩 팔려 나갔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은둔 생활을 유지했다.
샐린저는 또한 ‘괴팍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매번 책을 출판할 때마다 편집은 물론 표지 디자인, 홍보 방식까지 하나하나 간섭하고 통제했다. 또 ‘홀든 콜필드’가 부당하게 인용되는 걸 용납하지 않았으며, 대중매체에 자신의 개인 정보가 오르내리는 일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샐린저 생전에 랜덤하우스(이언 해밀턴)가 출판한 『샐린저 전기』는 법정 공방에까지 이르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샐린저는 저작권 및 사생활 보호 명목으로 『전기』에 인용된 개인적 편지, 신상 정보, 자신이 언급된 모든 인터뷰 기록을 삭제시켰고,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저작권법 판례가 되었다. 따라서 샐린저가 살아 있는 동안 그의 ‘전기’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기획이었다. 그리고 2010년 1월 27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10년 5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최고의 샐린저 웹사이트(deadcaulfields.com) 운영자인 케니스 슬라웬스키는 『샐린저 평전』, 바로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샐린저 사후 최초로 출간된 획기적인 평전이다. 샐린저 생전에는 절대 공개될 수 없었던 그의 편지들, 부모님과 전 아내들에 관한 정보, 유진 오닐의 딸 우나 오닐과의 연애 등 베일에 가려져 있던 사생활의 전모가 밝혀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언론에 의해 왜곡된 은둔 생활의 진실, 미국 문단의 최대 스캔들이었던 조이스 메이너드와의 관계,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까지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조명하였다. 샐린저의 삶과 사랑, 참전 경험, 인간관계를 전부 망라한 케니스 슬라웬스키의 『샐린저 평전』은 샐린저의 전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충실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케니스 슬라웬스키는 이전의 ‘샐린저 전기들’이 취했던 (작가 샐린저에 대한) 관음증적 시각과 비평가적 거만함을 버리고, 『샐린저 평전』을 완성했다. 이 평전은 샐린저 작품의 진화를 추적하고, 사상적 변화를 살피는 데 더없이 유익하다.”(《뉴욕타임스》)
▶ 『호밀밭의 파수꾼』부터 미발표 작품에 이르기까지
샐린저 모든 작품의 진수를 밝히다
전 세계적으로 7000만 부가 팔린 『호밀밭은 파수꾼』은 그 자체로 신화고, 시대의 아이콘이다. 한때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던 『호밀밭의 파수꾼』은 오늘날 수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영원한 청춘의 문학으로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은 중편소설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결코 만만하게 읽히는 작품이 아니다. 작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길게 이어지는 홀든 콜필드의 난해한 독백은 깊은 감동과 더불어 고약한 오해까지 불러일으켰다. 출판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호밀밭의 파수꾼』은 수많은 뮤지션과 영화, 심지어 암살범들에게까지 언급되면서 일종의 사회현상이 되었고,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샐린저의 작품을 둘러싼 대중들의 사랑과 오해는 비단 『호밀밭의 파수꾼』에 그치는 게 아니다. 샐린저의 초기 작품과 『아홉 개의 이야기』, 『프래니와 주이』,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와 같은 대표작들도 매번 독자들을 당황케 했다. 이때 저자 케니스 슬라웬스키는 샐린저 작품의 진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과 사상적 궤적을 두루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샐린저 평전』은 샐린저의 삶을 조망하면서 각각의 작품이 쓰인 맥락을 정확히 짚어 내고, 동시에 연대순으로 샐린저의 전 작품을 살핌으로써 그의 인생을 심도 있게 관찰한다. 저자 케니스 슬라웬스키는 독자들에게 이러한 통찰을 전하기 위해 샐린저의 가정환경, 학교생활, 그의 독서 경험과 전쟁 체험, 실연의 상처까지 하나하나 찾아다닌 것이다. 『샐린저 평전』을 읽고 다시 샐린저의 작품을 음미한다면, 분명 이전과는 다른 독서의 폭과 깊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홀든의 정신 상태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중심적인 이미지이긴 하지만, 그것이 이 작품의 핵심은 아니다. 진짜 핵심은 앨리는 이미 죽었고,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표현도 로버트 번스의 시에서 잘못 인용한 것이라는 피비의 대답이다. 그제야 홀든 안에 있던 무언가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 샐린저는 홀든이 시를 잘못 인용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독자나 학계에서는 그 내용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만날 때”를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잡을 때”로 바꾸면서, 샐린저는 시의 함의까지 바꾸어 버렸다. ‘위험이 가득한’ 어른들의 세계로 떨어지는 아이들을 ‘잡는’ 행위는 보호해 주고, 막아 주고, 혹은 금지시키는 간섭이다. 하지만 ‘만남’은 지지하고 함께 나누는 것, 즉 이어 주는 행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홀든의 여정은 번스의 시를 잘못 인용한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 과정이 된다. ‘잡는’ 것과 ‘만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순간, 그의 투쟁도 끝난다. 그 깨달음은, 신의 출현과 같은 하나의 계시가 된다.”(『샐린저 평전』 본문에서)
▶ 작가 샐린저를 통해 들여다본 20세기 미국 문단의 핵심
『샐린저 평전』의 또 다른 재미는 20세기 미국 문단의 생생한 모습을 살필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 케니스 슬라웬스키는 방대한 조사를 통해 축적한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20세기 미국 문단은 물론, 미국 사회의 역사적 배경까지 세밀하게 그려 낸다. 화려한 192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의 비극, 냉전 시대의 매카시즘 광풍, 베트남전쟁과 히피 문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까지, 작가 샐린저의 인생과 그의 작품은 그대로 역사가 된다. 특히나 샐린저가 피츠제럴드에게 남긴 찬사, 윌리엄 포크너가 샐린저에게 내린 평가, 스승 휘트 버넷과 샐린저 사이에 일어난 마찰,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대한 샐린저의 신랄한 비평, 편집자와의 신경전 등은 20세기 미국 문단의 결정적인 한 부분을 보여 준다.
“평소 샐린저는 단 한 번도 헤밍웨이나 그의 작품을 존경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셔우드 앤더슨이나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작가들을 존경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뇌에 빠져 파리 거리를 배회하던 헤밍웨이를 거두어 준 바로 그 작가들이었다. 따라서 샐린저는 헤밍웨이와의 만남 자체를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앤더슨과 피츠제럴드의 기분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헤밍웨이와 함께 보낸 시간을 일종의 배턴터치로 여기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가 리츠 호텔로 달려간 것은 헤밍웨이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마땅히 물려받아야 할 것을 얻기 위해서였다.”(『샐린저 평전』 본문에서)
더불어 샐린저가 어떠한 방식으로 작품 집필에 전념했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도 결코 놓칠 수 없다. 샐린저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수많은 메모와 습작, 수백 번의 수정을 필요로 하는, 마치 수도승처럼 문장 하나하나를 갈고닦는 과정이었다. 저자 케니스 슬라웬스키는 『샐린저 평전』을 통해 “문학은 곧 기도다.”라는 샐린저의 주장에 참된 영광을 부여한다. 그리고 샐린저가 은둔을 선택하게 된 진짜 이유와 그가 최후의 순간까지 쓴 미공개 원고의 존재도 차례로 밝혀진다.
“선 사상과 샐린저가 확신했던 예술과 영적인 것의 합일은, 결국 글쓰기와 명상이 동일하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영적인 힘을 잃지 않기 위해 전투 중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바로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믿음이었다. 그 후 몇 년 사이에, 샐린저는 자신의 개인적 믿음과 불교의 선 사상이 완벽히 맞아떨어진다는 점을 확인했다. (……) 대중의 시선에서 불편함을 느낀 후, 샐린저가 글쓰기를 명상의 한 형태로 받아들인 것은 제법 만족스럽고, 또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부담감을 느끼면서 글을 쓰는 일에 차츰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명상으로서의 글쓰기는 고립된 상황과 집중력을 요구했다. 그런 방법을 택한 샐린저에게 소란스러운 대중과 유명세는, 작업은 물론 명상과도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었다.”(『샐린저 평전』 본문에서)
▶ “샐린저는 죽음을 믿지 않았다”
저자 케니스 슬라웬스키는 『샐린저 평전』을 집필하면서 ‘은둔 작가’, 혹은 ‘괴짜 작가’ 샐린저를 포위한 가십성 억측과 잘못된 신화를 상대해야 했다. 샐린저는 타블로이드 신문에 보도되는 내용처럼 ‘인간관계가 불가능한 광인’도, ‘소아성애자’도, ‘탐욕스러운 장사꾼’도, ‘음모론의 핵심’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홀로코스트의 참상과 물질문명의 병폐를 울부짖는 현대의 예언자로서 글을 썼다. 그렇게 샐린저는 이 세상이 좀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며 글쓰기를 통해 기도를 올렸던 것이다. 단지 그는 자신의 기도가 더 이상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모든 영화를 버리고 은둔의 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샐린저 평전』은 샐린저의 죽음을 기회로 삼은 ‘폭로’가 아니라, 그의 뜻깊은 취지를 바로 세우기 위한 장대한 변론이다. 우리는 샐린저의 죽음을 통해 그가 남긴 작품, 그 속에 깃든 영원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과 『아홉 개의 이야기』, 『프래니와 주이』,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시모어: 머리말』을 읽고 깊이 파 보십시오. 그 작품들 속 깊숙이 각인된 작가의 영혼에 감사하며, 그를 다시 한 번 경험해 보십시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샐린저는 떠났지만 (그래서 세상은 공허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창조해 낸 책 속에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이고, 마치 뉴욕의 대로 혹은 뉴햄프셔의 숲 속을 거닐 듯이 생생하게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자신의 예술 속에 살아 있을 것입니다.”(『샐린저 평전』 본문에서)
▶ 『샐린저 평전』에 쏟아진 각종 언론의 찬사
샐린저의 작품과 사상적 진화를 본격적으로 분석한 훌륭한 평전-미치코 가쿠타니
샐린저의 위대한 업적을 그의 인생과 아울러 조망한 놀라운 시도-《뉴욕타임스》
이제껏 발표된 샐린저 전기 중 가장 애정 넘치고 균형 잡힌 작품-《스펙테이터》
샐린저의 미발표 작품과 감춰진 인생의 궤적을 추적한 유일무이한 책-《데일리텔레그래프》
20세기 소설 중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인 동시에 가장 큰 사랑을 받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 샐린저를 연구한 최고로 인상적인 전기이자, 중요한 기록-《커커스 리뷰》
머리말: 샐린저는 죽음을 믿지 않았다
1 소니의 기숙학교
2 첫사랑과 야망
3 군복을 입은 반항아
4 낯선 세계에서
5 전쟁의 지옥
6 전후의 연옥
7 작가의 사명
8 치유의 글쓰기
9 홀든의 탄생
10 호밀밭의 파수꾼
11 문학의 순교자
12 프래니
13 두 가족 이야기
14 주이
15 시모어
16 어둠의 정점
17 은둔의 작가
18 마지막 작품
19 침묵의 시
20 호밀밭 지나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