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의 준비

강보원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4년 9월 30일 | ISBN 978-89-374-1959-1

패키지 양장 · 46판 128x188mm · 212쪽 | 가격 16,000원

책소개

‘나의 것’에 대한 회의, 진실의 존재 여부를 겨눈 의심,

문학의 통념에 건네 보는 농담,

무한한 유예 속에서 피어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강보원의 창작(준비)론

 
편집자 리뷰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강보원의 첫 산문집 『에세이의 준비』가 민음사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으로 출간되었다. 강보원은 2016년 《세계일보》 평론 부문으로 등단하였으며, 2021년 시집 『완벽한 개업 축하 시』를 출간하는 등 장르를 자유로이 거닐며 독창적인 문학관을 구축해 왔다. 이 책에는 저자 자신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다종다양한 글들을 경유하여, 글쓰기의 이유부터 형식, 좋은 작품과 작가의 면모, 그리고 그사이를 오랫동안 헤매 온 저자의 시간들이 오롯이 기록돼 있다.

강보원은 『에세이의 준비』가 두 가지 면에서 실용적이고 현실적이기를 원한다. 먼저 스스로 이 책을 계기로 무언가를 쓰게 되는 것, 다음으로는 이 책을 읽는 다른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쓰게 하는 것. 오늘날의 문학이 내어 줄 수 있는 가치, 그리고 쓰기를 계속해 나가기 위한 태도에 대한 견해를 촘촘한 논리와 유머로 엮은 열두 편의 탁월한 글은 결국 ‘준비’라는 말로 귀결된다. 무언가를 위한 준비의 과정에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 줄 『에세이의 준비』와 함께라면, 저마다의 길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무겁지 않은 발걸음으로, 결코 농담을 잃지 않는 마음으로.

 

■ ‘준비’라는 형식

작가에게 당신은 왜 계속 글을 쓰나요? 하고 물었을 때 그 이유를 명확히 답할 수 있는 이는 없거나 매우 드물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에게 글쓰기는 이미 하나의 의무가 된 것으로, 그는 그저 계속 쓴다. 그렇게 계속 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형식’이다. 『에세이의 준비』라는 책 제목에서도 눈치 챌 수 있듯이, 강보원은 다름 아닌 ‘준비’를 형식으로 삼는다. 준비가 곧 형식이 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다. 준비는 무언가를 실제로는 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감각을 준다. 이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무력감보다는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또한 준비는 사실상 모든 행위를 그 안에 품을 수 있다. 글쓰기를 위한 정리 정돈하기, 쓰기에 참조할 만한 다른 책 읽기, 허리 건강을 해치지 않을 수 있도록 운동하기, 머리를 식혔다 다시 제대로 임할 수 있도록 티브이 시청하기까지 세상 모든 일이 곧 준비라는 형식 안에 담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준비는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준비 안에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이 포착될 수 있고 그것을 다시 쓰기의 영역으로 옮겨 가야 한다면 우리는 현실을 낱낱이 관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에세이의 준비』를 함께 읽어 나가며 준비라는 형식이 우리에게 쥐여 주는 이점들을 누려 보자. 그것은 당신의 글쓰기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 거리의 벤치처럼 놓여 있는 어떤 글들에 대하여

준비라는 형식에는 글쓰기에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글 읽기 역시 포함되므로, 『에세이의 준비』에는 강보원이 제시한, 글쓰기의 이상에 가까운 작품들이 등장한다. 강보원은 좋은 작가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좋은 작가들은 자신만의 확고한 진실을 만들고 나서 그것이 남들에게 천대받고 부서지도록 놔둔다. 자신만의 확고한 진실을 손에 쥔 채, 자신을 포함한 나머지 모든 것이 그 나름대로 돌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시인 최정례의 「이불 장수」라는 시의 화자는 시장에서 속아서 산 이불을 덮고 자면서, 이것이 자신이 원하던 이불도 아니고, 이불의 화려한 무늬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말을 아낀다. 시인 찰스 부코스키의 「약속」이라는 시의 화자는 자신의 그림 마흔 점을 도둑질해 가는 여자를 목격하고도 그를 추궁하는 대신 그저 그림을 더 그려야겠다고 결심한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마치 거리의 벤치처럼 놓여 있어 어딘가 태평만만한 기운을 풍기면서도 이용자들이 자신의 입맛에 알맞게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렇게 활용되는 것에 벤치 입장에서 어떤 불만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고요한 존재 양식은 독자에게 묘한 자유로움을 준다. 문학이 줄 수 있는 수많은 가치 중 ‘자유로움’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에세이의 준비』에 제시된 몇몇의 자유로움을 지나쳐 가며 우리는 각자의 글이 선사할 수 있는 감각과 그 글에 글쓴이로서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새삼스레 고찰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돌아봄은 우리를 분명 어떤 변화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 영원을 담은 매일의 쓰기, 문학론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

하루하루 지나가는 일상과, 시간을 넘어 오래 기록될 문학을 나란히 놓아 봅니다. 매일 묵묵히 쓰는 어떤 것, 그것은 시이고 소설이고 일기입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무심히 지나가지만 그 속에서 집요하게 문학을 발견해 내는 작가들에 의해 우리 시대의 문학은 쓰이고 있으며, 그것들은 시간을 이기고 영원에 가깝게 살 것입니다. ‘매일과 영원’에 담기는 글들은 하루를 붙잡아 두는 일기이자 작가가 쓰는 그들 자신의 문학론입니다. 내밀하고 친밀한 방식으로 쓰인 이 에세이가, 일기장을 닮은 책이, 독자의 일상에 스미기를 바랍니다.

■ 본문에서

하지만 여기에도 교훈은 있다. 일반적으로 준비라는 비-행위가 갖는 미묘한 지점이 있는 것이다. 준비는 특정한 행위로 이행하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이지만, 이 이행은 부드럽고 연속적이라기보다 어떤 급격한 단절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준비가 행위와 대립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준비가 대개 달콤한 이유는 우리가 실제로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하고 있다는 어떤 환상을 선취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준비는 시작의 무한한 지연이다.

-「1화 아무것도 아닌 것과 어떤 것」에서, 17쪽

 

내가 형식을 바라보는 관점은, 우리가 형식 속에서 그보다는 많은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형식에 대해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최근에 나는 시를 쓰면서 결코 바꿀 수 없는 모습을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의식적으로 꼭 그것이 아니어도 되는 어떤 말들이 시가 될 수 있는 형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내 생각이지만, 내용과 형식의 일치라는 이상을 너무 곧이곧대로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내용과 형식의 어긋남, 혹은 내용의 교환 가능성은 진실하지 않음이 아니라 반대로 진실함의 가장 강렬한 표지이다.

-「4화 말의 내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며, 심지어 아무 말이 없더라도 괜찮다」에서, 66쪽

 

물론 나의 미루는 습관도 심각하지만 상황이 이쯤 되면 이것은 단순히 미루는 것을 넘어 외면이라고 말해야 하는 수준이 아닐까? 어렸을 때에 비하면 지금 나는 생각하는 것도 결정하는 방향도 많이 달라졌고, 내가 가진 이런 좋지 못한 성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 왔지만, 되돌아보면 뭐가 얼마나 달라졌나 싶기도 하다. 내 나이와, 내가 하는 일, 통장 잔고 같은 것들을 토대로 냉정히 생각해 보았을 때 슬프게도……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외면은 글쓰기에 있어 아주 중요한 도구다. 우리는 반대로 글쓰기란 무엇인가를 직시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을 더 선호하지만 말이다.

-「5화 눈을 감은 채로 걷기」에서, 75쪽

 

뭐, 내 생각에는 그렇다. 꼰대가 되는 것은 중요하고, 호구가 되는 것은 그것의 두 배로 중요하다. 꼰대는 뭔가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호구는 남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순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좋은 작가들은 자신만의 확고한 진실을 만들고 나서 그것이 남들에게 천대받고 부서지도록 놔둔다. 자신만의 확고한 진실을 손에 쥔 채, 자신을 포함한 나머지 모든 것이 그 나름대로 돌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7화 호랑이도 장미꽃도 공작새도 다 가짜라는 것 안다」에서, 121쪽

 

이 책에서 내가 계속 다루고자 했던 것은 할 말이 없어도 무엇인가를 쓰는 일에 대한 것이었다. 어쩌면 시작하기의 논리와 끝내기의 논리는 전혀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쨌든 나는, 전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끝맺음을 잘 하는 사람도 아니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사실 나는 끝이라는 걸 싫어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싫어하는 무엇인가가 끝나는 일은 매우 드물어서 거의 본 적이 없고, 그러니 끝나는 것들은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2화 실제로는 하나도 맛이 없는 술」에서, 192쪽

목차

1화 아무것도 아닌 것과 어떤 것 9

2화 인생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없다 23

3화 모조 마음 49

4화 말의 내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며, 심지어 아무 말이 없더라도 괜찮다 53

5화 눈을 감은 채로 걷기 69

6화 너는 지구와 상관이 있고, 나도 사과와 상관이 있어 85

7화 호랑이도 장미꽃도 공작새도 다 가짜라는 거 안다 103

8화 비평가 선생들께서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123

9화 이런 일은 우리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우 종종 일어난다 139

10화 끝이 없음에 대한 지루함은 잊어버려야 한다 153

11화 우리가 예상하거나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171

12화 실제로는 하나도 맛이 없는 술 189

 

작가의 말 205

작가 소개

강보원

199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시와 평론 등의 글을 쓴다. 시집 『완벽한 개업 축하 시』를, 공저 『셋 이상이 모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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