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개업 축하 시

강보원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1년 5월 17일 | ISBN 978-89-374-0904-2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208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장난스럽고도 고요한 인물들이

쓸고, 닦고, 정리한 슬픔들

편집자 리뷰

강보원 시인의 첫 시집 『완벽한 개업 축하 시』가 민음의 시 284번으로 출간되었다. 강보원 시인은 2016년 《세계일보》 평론 부문으로 등단하여 평론뿐만 아니라 시, 에세이 등 다방면의 장르에서 고유한 글쓰기를 선보여 왔다. 시집 『완벽한 개업 축하 시』는 강보원이 시인으로서 내보이는 첫 결실로, 강보원 특유의 힘 빠진 유머와 지성, 구조에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시집은 “슬프지 않아도 괜찮으면요”라고 쓴 시인의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조재룡은 강보원의 시가 “슬퍼야 한다는 정서적 움직임을 통해” 슬픔을 기술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강보원은 슬픔을 “쓸고, 정리하고, 청소하”는 방식으로 슬픔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장면들과 인물, 화자들로 독특한 시를 직조해 낸다. 그리하여 건조한 단어들, 문장의 작동 방식에 대해 골몰하는 문장들, 만화적 인물들, 풍경들만 존재하는 산책의 장면들, 시 전체를 통제하는 독특한 시적 구조들이 선택되었다.

그러나 슬픔이 소거된 시에서 독자들이 읽어 내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슬픔,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모를 낯선 슬픔이다. 시집의 표제작 「완벽한 개업 축하 시」에는 ‘완벽한 개업 축하 시’가 들어 있지 않다. 완벽한 시에 대해 골몰하는 “그”의 고민이 있을 뿐이다. ‘완벽한 개업 축하 시’가 없는 시 「완벽한 개업 축하 시」를 통해 그 완벽함이 무엇일지 저마다의 방식대로 짐작해 보듯, 우리는 슬픔이 소거된 시집에서 낯선 슬픔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를 울게 하는 슬픔이 아닌, 차곡차곡 정리해 두는 것이 가능한 슬픔들을.

 


 

■ 의도된 헤맴

 

우리 바다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거 맞지? 그래 맞아. 그런데 왜 우주로 가고 있는 거 같지, 이거 우주선인가? 아니 잠수함 맞아. 아니 아니 이거 우주선 아냐? 아니 아니 잠수함 맞아.

―「비품 보관 요령」에서

 

강보원의 인물들은 자주 헤맨다. 그들은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현실이 바다인지 우주인지 확신할 수 없다. 몸을 실은 잠수함이 “빨갛고 동그랗고 울퉁불퉁한”(「잠수함(혹은 우주선)을 탄 함장의 일생」)지 정확히 기억해 내지 못한다. 공간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자신과 상대가 내뱉은 말에 대해서까지도 강보원의 인물들은 쉽사리 진실을 가려낼 수가 없다. 모든 말을 반대로 내뱉기로 한 남자와 여자가 있고, 장난 끝에 남자가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여자는 이렇게 답한다.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거야?”(「참외의 시간」) 어떤 가정으로도 명백한 참을 가려낼 수 없는 장난의 끝에는 오직 무수한 헤맴만 있을 뿐이다. 강보원은 화자와 문장 들을 끝나지 않는 헤맴 속에 놓아둠으로써 이들을, 그리고 독자들을 오롯이 시 안에 붙잡아 둔다. 시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동안 우리는 강보원이 탐구하는 문장의 가능성들과 새로운 시적 질서를 천천히 가늠해 볼 수 있게 된다.

 


 

■ 만화적 인물들의 무용한 몰두

 

징징이의 클라리넷을 부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라면 낙지처럼 손가락을 모으고(낙지는 손가락이 없으므로) 손등을 구부려 손 전체를 클라리넷을 감아 쥔 낙지의 촉수처럼 만든다 그리고 입술을 쭉 내밀고 클라리넷을 부는 것처럼 양손을 입술의 앞쪽에 위치시킨 뒤 박자에 맞춰 들썩인다

―「클라리넷 연주법」에서

 

강보원 시의 인물들은 얼핏 만화 캐릭터처럼 보인다. 만화 《스펀지밥》의 낙지 캐릭터 ‘징징이’처럼 클라리넷을 불어 보고자 시도하는 화자가 나오는가 하면, ‘너무 헛기침이 많은 노배우’의 일과를 늘어놓기도 하고,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려고 방구석에 놓인 벌집부터 옮기는 ‘나무 인간’이 등장하기도 한다. 당장이라도 떠들썩한 사건에 휘말려 우스꽝스러운 결말을 맞을 것 같은 인물들이지만 그들은 고요히 자기만의 일에 몰두한다. ‘징징이’의 발 모양처럼 다섯 손가락을 모아 보기도 하고 ‘징징이’가 서 있는 방식대로 발을 모아 보기도 한다. 이런 몰두 끝에 얻는 효용이라면 “바다 속에 잠긴 기분 짭짤한 소금 맛 내게 팔과 다리 두 개 정도씩 부족하다는 감각” 정도다. 효용이 없어 보이는 일에 몰두하는 일을 바라보는 것은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다가오지만, 그것을 꿋꿋이 계속하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일은 곧 단단한 용기가 된다.

 

그는 반으로 쪼개진

양파 같은

희고

매콤하고

사각사각거리는

개업 축하 시를 쓰고 싶었지만

개업 축하 시는

써지지 않고

있었다

―「완벽한 개업 축하 시」에서

 

모닝 당구장 회원들은 당구를 좋아하고 큐대가 닳아서

키 작은 아이만 해질 만큼 당구에 열심이고

부푼 마음속 녹색 잔디밭을 꿈꾸듯 누비고만 싶은데

 

알맞은 스핀과 적절한 구속이란 건…… 멀고 잔디밭은

끝나지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열심 말고 다른 걸 알기엔

 

머리를 못 쓴다

―「유령들의 밤 당구」에서

 

마루야, 하고 나는 마루를 불렀는데 방 안에 있던

푸들들이 다 우르르 달려오는 거야 백한 마리나 되는 이

푸들들의 이름을 다 마루라고 한다면 겹치는 걸까?

겹치면 더 좋겠지…… 나는 구분 가지 않는 것들을 사랑해

그 불가능성이 그 푸들들을 전부 다 사랑하게 만들었지

어쩔 수가 없어서 다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저택 관리인」에서

 


허무에 고개를 묻어 버리지 않고, 감동의 참호를 파지도 않는 시, 이론의 잔을 높이 들어 추상의 경배에 입을 맞추거나, 그 방울방울을 교묘하게 흘리거나 방치하지도 않는 시, “비유가 없”으며 “시적 짜잔도 없”는 시, 오로지 한 문장 한 문장, 기억과 생각을 배합하고 덧붙여 내며, 이야기에서 뺄셈을 만들어 내는 시, 강보원의 첫 시집에서는 맑은 슬픔과 차가운 현기증, 저 순간순간들이 문장들의 반란 속에서, 새로운 고안 속에서, 끝없이 피어오른다.

―조재룡(문학평론가)┃작품 해설에서

목차

1부

클라리넷 연주법 13

눈이 내리고 고양이가 울부짖는 새벽 14

나무 인간을 만난 영화 애호가의 일생 16

너무 헛기침이 많은 노배우의 일생 18

비품 보관 요령 24

영화 애호가를 만난 나무 인간의 일생 26

잘 만져 본 내일 28

포도나무 기르기 수업 31

짙은 안개가 낀 밤의 숲 34

잠수함(혹은 우주선)을 탄 함장의 일생 36

지구에 사는 어떤 신의 영수증 39

무덥고 춥고 밝은(혼잣말) 41

 

2부

이원론적 세계 45

거위 소녀 46

완벽한 개업 축하 시 50

파란 코끼리 58

심야 공사 60

말벌이 나타나면 창문을 활짝 열자 63

훔쳐 쓰기로 결심하는 시 66

남미적인 모양의 구름이 있는 해변 76

뽈 베흐가의 옥탑방으로부터 78

마지막으로 한 번 덜 하는 82

동물들 84

유령들의 밤 당구 86

러시아 동화 90

바나나 우유 영혼 92

겨울 화분 키우기 93

 

3부

참외의 시간 97

현실적인 잠 102

평화연립주택 입주자를 위한 안내서 104

미라와 미래 111

평화연립주택 102동 102호, 여름 112

정리 113

참외의 시간 116

새의 부리가 부드러운 돌을 두드렸다 118

부재중 125

 

4부

벌들 벌들 벌들 129

멜랑콜리 아이스크림 130

나는 두루미의 친구 132

이 책이 더 많이 대출되기를 바랍니다 136

어른의 양치법 140

제빵의 귀재 142

코끼리식 식사법 144

그림 그리기 준비 149

그러나 노랗고 무거운 150

작은 공터의 미래 152

저택 관리인 154

지구에 사는 어떤 신과 나뭇가지 155

디디와 디디의 밤 모텔 158

바다로 가는 밤 보트 160

비가 오는 세계 162

레몬 빵 레시피 163

나무들 164

멈춘다 166

뭉게구름 아래의 말벌 167

 

작품 해설 169

검은 노트의 문장을 들고 거리를 걸으며 참외와 거위의 ‘as if-미래’를 생각하는-

생각하지 못하는, 가능성-불가능성의 이원론을 밟고 걸어 다니는 코끼리의 식사

법과 연립주택 102호 정리하기-잠자기, 의미-의문의 자리와 글쓰기의 방식을 타

진하기_ 조재룡(문학평론가)

작가 소개

강보원

199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시와 평론 등의 글을 쓴다. 시집 『완벽한 개업 축하 시』를, 공저 『셋 이상이 모여』를 출간했다.

독자 리뷰

독자 평점

4

북클럽회원 1명의 평가

한줄평

사실 우리는 모두 무언갈 훔친 지도 모른 채로 훔치고 무얼 쓴지도 모른 채로 써버릴지도 모른다.

밑줄 친 문장

- '넓은 침대를 혼자 굴러다니다가 / 나는 그런 꿈을 시로 써서 발표해야겠다, 생각했다 / 그러니까/ 두 편의 시; / 한 편은 훔쳐 쓰기로 결심하는 시 / 한 편은 훔쳐 쓰는 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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