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는 없는 시의 고향 마을 낙원으로 데려다 주는 휴식의 언어와 만나다
자연을 가장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이기철 시인의 열네 번째 시집 『나무, 나의 모국어』가 출간되었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자연 세계를 동경해 왔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 실린 60편의 시편들을 통해 시가 태어난 고향이자 시인의 이상향인 각북 마을로 우리를 초대한다.
각북은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지명으로 이기철 시인의 창작실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시인의 시 속에서 각북은 현실의 지명이라기보다 시인이 상상해 낸 유토피아에 더 가깝다. 1995년에 첫 시집 『청산행』을 발표하고 오랜 시적 여정을 지나온 지금, 시인은 그토록 바라던 유토피아를 각북에서 이루었다. 시간이 흘러도 동심의 상상력으로 움직이는 시인의 언어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나무, 나의 모국어』에 이르러 각북 마을의 아름다움을 보여 줄 수 있는 ‘각북의 언어’를 완성했다는 것. 자연을 그리는 데 최적화된 그의 시어는 스스로 자연이 되어 우리를 새와 꽃과 나무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준다.
“날마다 한 트럭의 어휘를 싣고 언덕을 오르는 나날”을 보내며 “일생 말 농사”를 지어 온 시인이 수확한 한 줄, 한 행의 시어에는 “꽃씨가 물고 있는 베낄 수 없는 언어”가 있고 “바람의 연원”이 있다. 시인의 초대에 응하려면 동심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만, 그가 들려주는 세계 속에 발을 들이기만 하면 어느새 박토에 뿌리박은 나무가 되어 있고 하늘을 나는 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무, 나의 모국어』는 자연에 대해 썼을 뿐 아니라 자연으로 쓴 시다.
■ 글자를 심고 가꾸며 지상에 없는 시의 고향을 만들어 내는 기쁨
이기철 시인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언어로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했다. 첫 시집 『청산행』에서 시인은 나날의 번잡과 피곤 건너편에 있는 청산으로 가서 휴식의 언어를 구하고자 했다. 그 청산은 멀리 있지 않았다. 오히려 쌀 안치는 소리가 들리고 저녁연기가 보일 만큼 가까이 있어서 현실의 욕됨과 바쁨과 욕망에 위축된 수많은 자아들에게 위안의 손길을 뻗어 주곤 했다. 그의 시적 여정은 오랜 시간을 통과했지만 깨끗함을 추구하는 시인의 언어는 여전히 동심의 상상력으로 움직인다. 자연이라는 자칫 상투적일 수 있는 소재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나무, 나의 모국어』가 새롭고 아름다운 것은 시인이 그리고자 하는 각북 마을의 아름다움이 언어의 아름다움이자 시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지상에 없는 각북 마을의 풍경들을 그려 내기 위해 때 묻고 불완전한 언어를 씻고 세공한다.
글자를 심고 글자를 가꾸던 날의 고통스런 기쁨
기다리라 말한들 구름이 멎겠는가
구름은 활자로는 심기지 않는 잎 넓은 나무
바람의 연원을 찾고 싶어 등성이를 오르면
활자 바깥에 무한이 있음을 선홍 놀이 가르치고
-「활자 생애」
언어로는 구름을 멈출 수도 없고 바람의 연원을 찾을 수도 없다. 그래도 시인은 그 언어들을 심고 가꾸면서 지상에 없는 시의 고향 마을을 만들어 낸다. “구름은 활자로 심기지 않는 잎 넓은 나무”라거나 “활자 바깥에 무한이 있음을 선홍 놀이” 가르쳐 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각북 마을의 아름다움이 된다. 이러한 미학적 잠언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것이『나무, 나의 모국어』를 읽는 즐거움이다.
각북, 하면 여러분은 낯설겠지요 나는 각북에 산답니다 거기가 어디냐고 물으면 지구의 끝이라고 말할게요 아니면 별똥별이 새끼 별똥별을 데리고 놀다 가는 곳이라 하겠습니다
-「나는 각북에 산답니다」
그러나 각북 마을에 초대받아 그곳을 구경한다는 것은 미학적 즐거움에만 그치는 일이 아니다. 맑고 고요한 언어를 세공하여 만든 공간인 각북 마을을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탐욕스러운 자아에 가려져 있던 다른 자아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그 자아는 “나무와 풀과 새와 돌멩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아이기도 하고 “고독과 허무를 반죽하면 곱고 보드라운 기쁨을 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아이기도 하다.
■ 현실에 지친 어른들을 위한 동시
각북 마을에 들어가려면 작아야 한다. 더불어 겸손해야 하고, 무엇보다 동심이 있어야 한다. 어린 시절 우리에겐 동심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동심은 사라져 버렸고 이제 그 시절의 자아는 현실의 시간이 멈추는 곳에서만 겨우 고개를 내밀 뿐이다. 각북 마을로 우리를 초대하는 이기철 시인의 시는 이러한 우리에게 어린 시절을 되찾아 준다. 그러나 “노력으로 어린 시절을 회복하는 사람”을 천재라고 했던 니체의 말처럼 동심을 회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인은 이를 문맹에 대한 그리움으로 돌파한다. 동심을 찾으려는 시인은 문맹의 언어, 최초의 언어를 포착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잠든 지붕을 깨우며
어떤 불결과 광포함도 잠재우며
정결 하나가 왔다
그가 두 발로 꼿꼿이 서 있는 한
지구의 허파들이 경건한 숨을 쉰다
초연(超然)이라는 말 하나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백조(白鳥)가 날아왔다」
“순종을 가르”치는 활자가 우리를 순치하지 못하고 “위인과 명언과 성구(聖句)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처녀 말”과 “한 번도 쓰인 적 없는 시어”를 찾아 나서는 헤맴. 현실의 시간을 잠깐 정지하고 우리 앞에 맨발의 언어를 드러내 보이는 『나무, 나의 모국어』는 자연에 대해 말하다 보니 자연처럼 말하게 됐고 자연처럼 말하다 보니 끝내 자연이 되어 버린, “피그말리온의 생령”이자 어른들을 위한 동시이다.
■ 작품 해설에서
이기철의 시들은 우리를 청도의 각북 마을로 초대하여 현실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자아를 되찾아 준다. 물론 이렇게 회복한 자아만으로 현실을 견뎌 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동심의 도움 없이는 온전한 삶을 지향할 수도, 삶의 균형과 품위를 구할 수도 없다. 이기철의 시들은 아름다움의 근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현실의 시간을 멈춰 놓고 현실과 다른 세계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나무, 나의 모국어』는 현실에 지친 어른들을 위한 동시이기도 하다. — 이남호(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 추천의 말
“누란의 꽃”이 환기하는 의미역은 아득함과 신비로움과 안타까움과 희귀함이다. 궁극적으로 사랑은 시적 화자 자신에 대한 혹은 자신의 지나온 삶의 굴곡과 역정에 대한 연민으로 귀결된다. “새 신 신은 유년의 발로 신성한 풀숲을 밟고 가는” 체험은 가난과 힘겨움을 농악으로 펼쳐 내는 농악의 한 한풀이에 비견될 수 있다. 시에 나타난 시적 화자의 강렬한 체험은 자기와 자기 생에 대한 연민과 씻김굿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최라영(문학평론가)
손으로는 만질 수 없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물질”로 인식한다는 것은 그 가을이 무언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이 느끼는 가을의 물질성은 금속 같은 “햇빛”, “광물질의 나뭇잎” 등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 그렇게 “발등 위에 광물질의 나뭇잎이 내려왔다는 기억”으로 가을은 물질이 된다. 더구나 “촉촉이 편지 쓰는 물질의 승화는 손의 계보에 편입”될 정도로 시인과 가을은 서로 몸을 섞는다. 가을이라는 물질 속에 있는 시인 역시 가을이라는 물질로 변전한다.—윤의섭(시인)
■ 작가 소개
이기철
1943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1976년부터 ‘자유시’ 동인으로 활동했고 대구시인협회장, 한국어문학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청산행』, 『유리의 나날』, 『가장 따뜻한 책』 등 13권의 시집과 『손수건에 싼 편지』 등 3권의 에세이집이 있다. 그 외에도 『시학』, 『작가연구의 실천』, 『인간주의 비평을 위하여』 등의 저서가 있으며 2011년 산문집 『영국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출간하였다. 1993년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로 김수영 문학상, 1998년 『유리의 나날』로 시와시학상, 2000년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로 최계락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영남대 명예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