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422 | 분야 세계문학전집 422, 외국 문학
20세기 유럽을 휩쓴 집단적 광기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성찰
인간성 상실의 시대, ‘최후의 인간’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들이군요. 즐거운 모습이에요. 그들은 코뿔소 모양이 좋은가 봐요. 전혀
미친 자들처럼 보이지 않아요. 매우 자연스럽게 보여요. 그들이 옳았어요.”
▶ 이오네스코는 이 충격적인 희곡을 통해 맹목적인 복종과 전체주의, 절망과 죽음이라는 가장 중요한 주제들을 아우르고 있다. ─《뉴욕 타임스》
≡≡≡≡≡≡≡≡≡≡≡≡≡≡≡≡≡≡≡≡≡≡≡≡≡≡≡≡≡≡≡≡≡≡≡≡≡≡≡
현대 부조리극의 선구자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표작 『코뿔소』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1909년 루마니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오네스코는 잔혹한 세계 대전의 한복판에서 나치즘의 광기를 직접 목격하면서 성장했다. 『코뿔소』는 이런 배경에서 쓰인 것으로, 집단 이데올로기에 빠지는 과정을 ‘코뿔소’로 변하는 것에 비유해 눈에 보이는 공포로 형상화했다. 이 작품은 1959년 독일 뒤셀도르프 샤우슈필하우스에서 첫 상연한 이래 전 세계적으로 대성공을 거두며 현대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 어느 날, 갑자기, 코뿔소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나! 코뿔소가 제멋대로 시내 한복판을 뛰어다니다니, 자넨 놀랍지 않은가?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말이야!” ─본문에서
어느 지방 소도시의 광장.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한가롭게 주말을 즐기는 가운데 느닷없이 야수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코뿔소. 커다란 코뿔소가 사람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자 광장은 일순간 아수라장이 된다. ‘우리가 본 것이 정말 코뿔소인가?’ ‘모두 몇 마리인가?’ ‘어떤 종인가?’ 코뿔소가 사라진 뒤 사람들은 방금 본 것의 정체에 대해 난상 토론을 벌이지만 극심한 불안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고양이가 우리 앞에서 코뿔소에게 짓밟혀 죽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그놈이 뿔이 하나든 둘이든, 아시아 코뿔소든 아프리카 코뿔소든 상관없이 말이야.” ─본문에서
극도의 공포 속에서 코뿔소의 정체를 밝히는 데 실패한 사람들은 코뿔소에게 짓밟힌 고양이 한 마리를 주목한다. 한 주부가 애지중지 안고 다니던 고양이가 난리 통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어떤 논리적인 설명으로도 이 슬픔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낀 사람들은 그제야 ‘고양이가 죽음을 당했다는 걸 허용할 수 없다며’ 한목소리를 낸다. 허용할 수 없다면,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사람들은 이 마지막 질문을 생략한 채 제각기 흩어진다.
한편 현장에서 코뿔소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코뿔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코뿔소를 목격한 이들과 이를 두고 헛것을 보았거나 정치적인 모략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사이에 ‘모두 몇 마리인가?’ ‘뿔이 몇 개인가?’ 하는 현학적인 논쟁이 다시 불붙기 시작하는데……. 이 논쟁은 눈앞에서 말다툼하던 상대가 검푸른 색의 코뿔소로 변하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 외젠 이오네스코가 직접 목격한 ‘코뿔소 병’의 실체는?
“그가 의도적으로 코뿔소가 됐다면 어쩔 셈인가? 의도적으로 코뿔소가 됐다면 말이야?” ─본문에서
『코뿔소』에서 가장 먼저 코뿔소로 변한 것은 직장인 뵈프다. 아침에 뵈프가 출근하지 않자 상사는 자초지종을 알아보는 대신 ‘계속 이런 식이면 그 친구는 해고야.’라고 선언한다. 그때 뵈프의 아내가 사무실에 등장한다. 남편이 주말 동안 감기에 걸렸다며 선처를 바라는 그녀는 집에서부터 코뿔소가 뒤쫓아오는 극심한 공포 속에서도 남편을 위해 사무실을 찾았노라 말한다. 그런데 창문으로 코뿔소를 바라보던 그녀가 갑자기 오열한다. 그 코뿔소가 다름 아닌 남편 뵈프였기 때문이다. ‘가엾은 뵈프, 당신 어떻게 된 거예요?’ 흐느끼는 아내를 보며 상사는 ‘이번엔 정말 뵈프를 해고해야겠군!’ 하고 중얼거린다.
가장 먼저 코뿔소가 된 뵈프의 변신은 ‘사회성이 부족하고’, ‘직장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한 개인의 일탈로 여겨졌다. 하지만 사회 지도층을 포함하여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코뿔소 무리에 합류하면서 소수가 다수로, 비정상이 정상으로 역전한다. 처음에 코뿔소 무리를 끔찍하게 여기던 사람들은 점차 그 힘과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인간을 나약하다고 여기며 자기혐오에 빠져든다.
“혹시 구조돼야 할 사람들은 우리가 아닐까요? 우리가 비정상일지도 모르잖아요?” ─본문에서
1909년 이오네스코는 루마니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국인 루마니아는 1933년 이후 온통 파시즘의 물결로 뒤덮였고 청년 이오네스코는 나치 이데올로기에 협력하는 아버지와 불화를 겪다가 끝내 어머니의 나라 프랑스로 귀화한다. 나치에 대한 이오네스코의 저항, 혐오, 의혹, 상처 등은 마음속 깊이 각인된 채, 잠재적 고뇌의 형태로 머물렀다. 『코뿔소』는 이런 배경에서 쓰인 것으로, 사람들이 집단 이데올로기에 빠지는 과정을 ‘코뿔소’로 변하는 것에 비유해 눈에 보이는 공포로 형상화했다.
작가는 ‘코뿔소’라는 제목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 동물이 공격성과 복종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강조했다. 여기에 집단성이 더해진다. 유럽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많은 지식인들이 코뿔소로 상징되는 힘의 이데올로기에 마취되었고, 이오네스코의 동료들조차 이를 무기력하게 방조하거나 직접 활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결국 『코뿔소』는 비인간적 폭력을 별 저항 없이 추종하고 이에 동조하는 대중들을 비판할 뿐 아니라 이를 보고도 남의 일처럼 판단을 유보하고 안전지대에서 관망하는 지식인들의 나약함을 고발하고 있다.
■ 인간의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난, 이 사건에 대해 연대 의식을 느껴. 무관심한 채로 있을 수 없지. 이 사건에 개입할 거야.” ─본문에서
『코뿔소』의 베랑제는 극 초반부터 무기력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옷차림은 흐트러지고 얼굴은 간밤에 마신 술 때문에 불그스레하다. 알코올 중독에 가까운 모습이다.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계획적이고 의욕적으로 삶을 살라고 훈수를 두면, 그는 ‘삶 자체에 익숙하지 않다고’ 둘러댄다.
그러던 어느 날 베랑제는 가까운 친구가 코뿔소로 변하는 모습을 목격한 뒤 오랜 무기력에서 깨어나 각성에 이른다. ‘코뿔소 병’이 그 누구의 일도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직장 동료이자 장래가 유망한 법학도인 뒤다르가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코뿔소로 변해 가는 와중에도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나?’라고 말하며 유보적인 태도로 일관하자 베랑제가 ‘광기가 광기지 뭐! 광기는 그냥 광기야!’라고 응수하는 대목은 추상적인 논리를 앞세워 상황을 정당화하는 이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지적한다.
과연 베랑제는 하나둘씩 코뿔소로 변해 가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가 주장하는 ‘인간다움’은 무엇이며 어떻게 지켜 내야 하는가? 과연 인간에게 희망은 있는가?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고민하도록 재촉하면서 ‘진짜 인간’의 드라마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 본문 중에서
“아! 의욕이라, 하지만 누구나 다 자네처럼 의욕적이지는 않아. 특히 난, 그것에 익숙하지 않다고. 삶 그 자체에 익숙하지 않단 말이야!” (19쪽)
“좀 논리적이긴 한데……. 그렇지만 고양이가 우리 앞에서 코뿔소에게 짓밟혀 죽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그놈이 뿔이 하나든 둘이든, 아시아 코뿔소든 아프리카 코뿔소든 상관없이 말이야.” (67쪽)
“나는 이 사건의 열쇠를 가지고 있어. 한치의 오차도 없는 해석 시스템을 안다고.” (100쪽)
“그가 의도적으로 코뿔소가 됐다면 어쩔 셈인가? 의도적으로 코뿔소가 됐다면 말이야?” (117쪽)
“도무지 잊히지가 않는걸! 장은 무척 인간적인 친구였어. 휴머니즘의 열렬한 옹호자였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런데 그 친구, 그 친구가!” (134쪽)
“어느 정도까진 자네의 충격을 인정하네. 하지만 너무 지나쳐. 유머가 없어. 그게 자네의 결점이라고. 유머 감각이 없단 말이야. 이런 사건은 초연한 태도로 가볍게 볼 줄도 알아야 해.” (141쪽)
“난, 이 사건에 대해 연대 의식을 느껴. 무관심한 채로 있을 수 없지. 이 사건에 개입할 거야.” (141쪽)
“다른 곳, 혹은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면, 그리고 신문을 통해 알려진 사건이라면 태평하게 토론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얘기할 수 있겠지. 그리고 나중에 객관적인 결론을 끌어낼 수도 있고. 학술 토론회도 개최하고, 전문가나 작가, 법률가, 여성 지식인, 예술가 등을 토론에 참여시키면서 말이야. 물론 거리의 시민들도 토론회에 참석할 수 있어. 그건 분명 흥미진진하고, 교육적 효과를 유발할 거야. 그러나 자신이 직접 사건에 개입 되어 있거나, 갑자기 폭력적인 현실에 놓이면, 스스로 당사자임을 느끼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 너무 충격이 커서 이성을 잃을 정도로 말이야. 난 무척 놀랐다고! 도저히 그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141쪽)
“이봐, 베랑제. 언제나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네. 하나의 현상과 그 결과들을 이해하려면, 성실하고 지적인 노력을 통해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고. 그런 식으로 노력해야 해. 우린 생각하는 존재 아닌가.” (149쪽)
“어쨌든 처음엔 호의적인 예측을 하는 게 좋고, 적어도 중립을 지키거나 개방된 생각을 하는 게 좋아. 그게 과학적 사고의 특징이니까 말이야. 모든 게 논리적이지. 이해하는 것, 그건 곧 정당화하는 것이지.” (149쪽)
“광기가 광기지 뭐! 광기는 그냥 광기야! 누구나 광기가 뭔지 알고 있다고.” (151쪽)
“그대로 전하면, “자기 시대를 따라야 한다.”라고 했어요. 그게 인간 보타르가 마지막으로 한 말입니다!” (157쪽)
“그러니까 우린 살 권리가 있어요. 주위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대로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요. 죄의식은 위험한 징조예요.” (173쪽)
“혹시 구조돼야 할 사람들은 우리가 아닐까요? 우리가 비정상일지도 모르잖아요?” (180쪽)
등장인물 9
1막 11
2막 69
2막 1장 71
2막 2장 104
3막 127
작품 해설 189
작가 연보 205
독자 평점
3.5
북클럽회원 2명의 평가
한줄평
밑줄 친 문장
도서 | 제목 | 댓글 | 작성자 | 날짜 | |
---|---|---|---|---|---|
코뿔소
|
비타 | 2024.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