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긴 번영기 강건성세의 서막을 연 황제 강희제의 삶과 치세를 읽는다

강희제 평전

민생을 살펴 태평성대를 이룩한 대통합의 지도자

원제 康熙傳

장자오청, 왕르건 | 옮김 이은자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0년 12월 10일 | ISBN 978-89-374-8316-5

패키지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744쪽 | 가격 35,000원

분야 논픽션

책소개

“중국이 본받아야 할 위대한 시기는 강건성세의 시기이고
본받아야 할 황제들은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이다.”
― 후진타오 중국 주석
   
세계에서 가장 긴 번영기 강건성세의 서막을 연
황제 강희제의 삶과 치세를 읽는다
 
중국의 제왕 중 가장 오랫동안 재위하며 청나라의 기틀을 다진 강희제의 삶과 치세를 담은 『강희제 평전』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는 민생 안정을 최우선으로 두고 정책을 펼치며 문무를 겸비한 지도력으로 중국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다. 만주인ㆍ몽고인ㆍ한인의 피를 모두 이어받은 강희제는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음에도, 각 부족의 정치적, 군사적 위협을 명민한 지략으로 차례차례 극복해 나가며 강력한 통치권을 확보했으며 현대 중국의 국경선을 확정 지었다. 동시에 조세 제도나 치수, 탐관오리 퇴출 등 경제, 사회 분야에서도 탁월한 식견으로 현실적 정책을 과감히 시행하여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데 기초를 세웠다. 폭넓은 사료를 통해, 130여 년간의 팍스 시니카를 가능케 한 강희제의 통치를 재현한 이 책은 강희제를 본받으려는 장쩌민, 후진타오 등 중국의 지도자들이 지향하는 미래상을 보여 줌과 동시에 강희제가 실현한 천하 경영을 통해 모든 지도자들이 지향할 대통합의 모범을 제시한다.

편집자 리뷰

중국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룩하다
지금까지도 한족이 대다수를 이루는 중국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이민족이 한족을 내몰고 중원을 차지하여 세운 나라는 원나라였다. 그러나 원나라는 100년을 채 잇지 못하고 다시 한족에게 멸망한다. 이민족이 세운 두 번째 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였다. 청나라는 원나라와 달리 300년 가까이 유지되었으며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세를 이룩하였다. 이러한 청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이가 바로 강희제였다. 그는 1661년 여덟 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라 1722년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60여 년간 재위하며 이른바 강건성세(강희, 옹정, 건륭 세 황제가 재위하는 동안 이어진 태평성세의 시기)의 서막을 열었다. 강희제의 아버지인 순치제가 집권하는 동안까지도 청나라는 여전히 국토에 대한 지배력을 제대로 가지지 못했고 민족 갈등은 첨예했다. 이민족 출신의 어린 왕인 강희제가 건국 초기의 불안정한 상황을 정리해 나가며 오랜 평화의 시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왕권을 뒤흔드는 여러 부족의 위협에 현명하게 대처하고 통합을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강희제의 할머니는 몽고족, 어머니는 한족으로서 그의 탄생 자체가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더불어, 사냥을 즐기며 학문에도 매진하여 만주족의 유목민적 기백에 한족의 문화, 심지어 서양의 문화까지 두루 섭렵하여 다문화를 몸소 체현했다. 이러한 안정의 기반을 딛고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정책들을 과감히 실행에 옮김으로써 번영의 시기를 구가하게 된 것이다.
 

중국 역사상 최대의 판도를 통합하다
이 책의 전반부는 강희제의 유년 시절과 즉위 후 정권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강희 나이 열여섯 살, 직접 정무를 보기 시작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강희제는 권신 오배(鰲拜)를 슬기롭게 제거함으로써 왕권을 확보하고 나라 안팎의 불안정한 요소들을 정리해 나간다. 그중에서도 상가희(尙可喜), 경중명(耿仲明), 오삼계(吳三桂)가 이끄는 삼번은 청 왕조의 가장 큰 위협 요소였다. 이들은 옛 명나라의 장수들로서 청나라 건국 과정에서 군벌로 성장하여 권력을 휘두르다 결국 난을 일으킨다. 강희제는 8년간의 지난한 전쟁 끝에 가까스로 삼번의 난을 진압하였고, 2년 후에는 정씨 일가가 지배하던 대만까지 점령하여 국내를 안정시킨다. 국외적으로는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고, 몽고에 직접 출정하여 정복했으며, 티베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여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판도를 확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강희는 유화책과 강경책을 적절하게 운용하면서 자신의 힘을 키워 나갔고 안정적으로 나라를 통합하는 데 성과를 거두었다.


강희는 참령(參領) 양문괴(楊文魁)를 최초의 복건 대만(福建臺灣) 총병관으로 임명했다. 양문괴가 임지로 떠나기 전 강희를 소견할 때 강희는 특별히 그 앞에서 명을 내렸다. 대만은 멀리 바다 위에 있고 이제 막 새롭게 안정을 되찾았다. 그곳의 새로 투항한 병사와 사인(士人) 및 흑인 등은 종류가 한결같지 않다. 너는 부임한 후 이들을 관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마땅히 힘을 사용해야 할 경우에는 힘을 사용하고, 마땅히 자애로움을 사용해야 할 경우에는 자애롭게 그들을 품도록 하라. 이렇게 해야 병민이 모두 편안한고 해외가 안정을 가져온다.” ― 본문 중에서

 

민생을 정치 득실의 척도로 삼다
강희제의 내부 통치를 다룬 후반부에서는 경제와 민생, 관리 다스림, 치수, 학문 등에 대한 정책들을 상세히 설명한다. 강희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며 생업을 즐겁게 여기도록 뒷받침하는 안민(安民)이야말로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백성의 안정이 곧 정권 안정의 전제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에 따라 농업과 상업 분야에서 여러 현실적인 경제 정책을 시행했고,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국가 소유의 황무지를 민간에게 넘겨 개간을 독려하는 한편, 한족의 빈곤한 농민이 만주 귀족의 노예로 들어가는 투충을 금하여 자영농을 육성하는 동시에 한인과 만주족 사이의 갈등도 완화했다. 또한 강희제는 공상업을 지지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상인에 대한 과다 징세를 단속하고 관리가 상인을 겸하거나 시장을 독점하는 행위를 제한했다. 이러한 정책들로 안정된 상업은 농업과도 서로 상승 작용하며 경제 전반이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밖에도 대대로 큰 국가사업이었던 황하와 회수를 다스리는 치수에서도 과감한 정책으로 두드러진 업적을 남겼고 서양의 앞선 과학 기술 등의 서학을 받아들이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로써 강희제는 역사상 가장 높은 성세의 봉우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공부는 강희에게, 직예 및 하남 순무에게 조운(漕運)을 돕기 위해 조운선이 지나간 뒤 전야(田野)에 물을 유통시킬 것을 명령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 관원이 민생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이렇게 말했다. “짐이 처리하는 모든 일은 반드시 민생과 관련이 있으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이후 시행한다. 해당 부서가 의논한 바는 조운이 잘못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서이지만, 애초에 민생과 관계되는 일인지를 생각해야 했다.” ― 본문 중에서

 

대통합의 모범
최근 중국에서는 명청 시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청나라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한데, 강희제가 그 중심에 있다. 장쩌민, 후진타오 등 중국 지도부에서도 본받을 만한 리더십의 전형으로 강희제를 자주 손꼽았으며 소설, 드라마 등의 대중문화에서도 강희제가 많이 조명되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영역을 지배하면서도 굳건하게 나라를 통치했던 강희제에게서 인구 문제, 부패, 국가 통합 등 현재의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강희제를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중국의 지도자들이 추구하는 미래상을 가늠해 보는 방법일 수 있다. 나아가, 세계에서 가장 긴 번영기를 실현한 강희제가 펼친 천하 경영은 비단 중국에서뿐 아니라 모든 지도자들이 지향할 만한 대통합의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목차

1장 어린아이로 제위에 올라, 소년이 되어 훌륭한 재능을 드러내다
2장 후방에서 책략을 세워 삼번을 무너뜨리다
3장 강온책을 통해 정씨 일가를 무너뜨리고 대만을 통치하다
4장 흑룡강 상하의 일하 일계(一河一溪)는 조금도 러시아에 넘겨주지 않다
5장 세 차례 친정하여 갈단의 난을 평정하다
6장 달라이와 판첸을 도와 티베트를 안정시키다
7장 경제와 민생을 정치의 최우선 과제로 삼다
8장 이치(吏治)를 엄격히 하고 상벌을 분명히 하다
9장 전문 인재를 선발하고 직접 지휘하여 황하와 회수를 다스리다
10장 이학치국(理學治國)
11장 이교도를 존중하고 서학을 배우며 국가의 존엄을 중시하다
12장 후계자 계승 문제와 강희제의 사망
 
후기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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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장자오청

1929년 중국 저장성(浙江省)에서 태어나 샤먼 대학교(厦門大學校)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경제사를 전공했다. 샤먼 대학교 역사학과와 항저우 대학교(杭州大學校)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중국고대사, 명청시대사, 사회경제사를 연구했다. 저서로 『명청 항자후 사회경제사 연구(明淸杭嘉湖社會經濟史硏究), 『간명 중국 경제 통사(簡明中國經濟通史)(공저), 『중국 고대 명인 소전(中國古代名人小傳)(공저) 등이 있다.

왕르건

1964년 중국 장쑤성(江蘇省)에서 태어나 샤먼 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사회경제사를 전공했다. 현재 샤먼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겸 샤먼 대학교 역사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명청 해강 정책과 중국 사회 발전(明淸海彊政策與中國社會發展)』, 『명청 민간 사회의 질서(明淸民間社會的秩序)』, 『민영 교육의 역사 관조(民營敎育的歷史觀照)』 등이 있다.

이은자 옮김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근대사를 전공하여 문학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학교 쌀ㆍ삶ㆍ문명연구원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의화단운동 전후의 산동(山東)―민간종교결사(民間宗敎結社)와 권회(拳會)에 관한 연구, 『중국 민간 종교 결사―전통과 현대의 만남, 『중국과 타이완ㆍ홍콩 역사 교과서 비교(공저), 『개항기의 재한(在韓) 외국 공관 연구(공저), 『타이완ㆍ홍콩 대학의 역사교육과 한국사 인식(공저)가 있으며, 역서로 『근대 중국의 반기독교운동(反基督敎運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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