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흡인력과 살아 있는 문장,
허구의 공간과 상황을 설계하는 탁월한 능력
오늘날의 세태를 유려하게 드러내는 현대인,
“현대 소설가” 김희진의 첫 장편소설
“입에서 빠져나온 혀들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현상을 다룬” 독특한 알레고리 소설 「혀」로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후,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온 신예 김희진이 첫 장편소설 『고양이 호텔』을 펴냈다. 중세 유럽의 성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저택에서 188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아름다운 주인공이라…… 뭔가 심상치 않은 냄새가 솔솔 피어오른다.
『앨리스의 생활 방식』의 저자이자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로 2009년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장은진의 쌍둥이 동생이기도 한 김희진은,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흡인력과 기발한 상상력을 한껏 과시하며 자신의 재능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다. 섬세한 꽃미남 인터뷰어(interviewer) ‘강인한’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 인터뷰이(interviewee) ‘고요다’의 가슴 설레도록 아찔하고 짜릿한 밀고 당기기가 시작되면, 『고양이 호텔』에 사로잡힌 독자들은 마지막 장까지 이 매혹적이고도 감각적인 작품에서 도통 눈을 뗄 수가 없다.
‘은둔형’ 작가라는 성향에서부터 숨어 있지 못해 안달인 등장인물까지, 일견 비슷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김희진과 장은진, 그들 쌍둥이 작가의 작품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 역시 꽤 쏠쏠하다. 앞으로 한국 문단은 그들 자매의 특이하고 빼어난 작품 세계를 위해 새로운 페이지를 써 나가야만 할 것이다.
■ 라푼첼의 현대판 우화 혹은 고양이 수가 늘어나는 이유에 대한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라푼첼의 긴 머리카락이 내려올 것만 같은 원뿔 모양의 지붕이 얹어진 옥상 위 세 개의 탑, 프로방스풍의 돌출 창과 요철 모양으로 마무리된 옥상 난간, 그리고 온통 모래로 뒤덮인 학교 운동장만 한 넓은 마당. 『고양이 호텔』의 여주인공 고요다는 거대한 성을 닮은, 열한 개의 방이 있는 3층짜리 대저택에서 188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현대의 도시에 그런 고풍스러운 저택이 있을까 싶을 만큼 그로테스크한 성채다. 불모를 상징하는 모래로 덮인 사막 같은 마당은, 그 위에 서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화려한 고택을 더욱 그로테스크하게 만든다. 고딕 동화풍이다. 게다가 고요다는 라푼첼의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다. 긴 머리카락 대신 그녀가 사용한 무기는 ‘뒤꿈치’, 그리고 “방을 빌려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팻말이다. 그녀의 소설 『뒤꿈치』(이 작품 속에서 3억 원 현상 공모에 당선된 고요다의 소설 제목)는 그녀를 베일에 싸인 작가로 만들어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녀에 대한 궁금증에 사로잡히게 하고, 급기야 강인한 기자를 라푼첼의 성으로 찾아오게 한다. 그전에는 “방을 빌려 드립니다”라는 팻말이 많은 이들을 그녀의 성으로 찾아들게 했고,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된 사람들의 운명을 비극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녀의 방을 빌려서는 안 된다. 그녀의 뒤꿈치를 궁금해해서도 안 되고, 그녀를 사랑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것들은 라푼첼의 머리카락이고, 일단 걸려들면 변신하게 되는 치명적인 미끼이기 때문이다.
■ 목숨을 건 치명적 인터뷰이거나, 소설의 기원이거나
고요다가 사는 도시 인근에서 발생한 25명 연쇄 실종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는 추리적 기법과 판타지가 교묘하게 뒤섞인 『고양이 호텔』의 주요 서사는 고요다와 강인한의 인터뷰다. 고요다는 스스로를 베일 속에 감춰 타인들로 하여금 자신을 궁금하게 했고, 기자인 강인한은 많은 사람들이 가진 그녀에 대한 궁금증과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고요다와의 인터뷰를 성공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소설은 상처를 받아 자기 유폐를 감행한 여자에 대해, 역시 과거에 상처를 입은 남자의 집요한 소통 시도를 기록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작가 김희진은 남녀 주인공의 소통이 점진적으로 성공하는 표면 너머의 허위를 폭로하고 묘파하는 데 더 주력한다. 오로지 강인한의 철저한 거짓과 가장에 의해서 진행된 인터뷰는 고요다의 고백(또는 자백)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소통을 끌어내지 못한 탓에, 강인한으로 하여금 사실과는 전혀 다른 허위 기사를 쓰게 만든다. 결국 그와 같은 철저한 불신이 강인한을 비극으로부터 구원했다는 것 역시 이 소설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고양이 호텔』을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 작품이 머리가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형상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의 끝은 곧 소설의 시작이다. 이미 완성된 소설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소설의 집필 동기다. 고요다의 실명은 바로 이 소설의 작가 김희진이고, 김희진은 강인한 기자와의 만남 이후 그와의 인터뷰에 착안하여 소설 쓰기를 시작하는 메타 픽션(픽션에 대한 픽션, 소설 쓰기에 대한 소설)적 기법을 차용하고 있다. 따라서 『고양이 호텔』은 상처받은 정신으로부터 어떻게 소설이 탄생하는지에 대한 메타 픽션으로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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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작품 해설/ 라푼첼과의 인터뷰_ 김형중(문학평론가·조선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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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고 당기기 속에 드러나는 사실들이 재미를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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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수 | 2015.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