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파이낸셜 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
원제 THE THING AROUND YOUR NECK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3년 4월 28일
ISBN: 978-89-374-1720-7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0x210 · 292쪽
가격: 16,000원
《엄마는 페미니스트》의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대표 소설집
■ 차례
1번 감방 9
모조품 34
사적인 행위 61
유령 78
지난주 월요일에 101
점핑 멍키 힐 129
숨통 155
미국 대사관 172
전율 189
중매인 221
내일은 너무 멀다 246
고집 센 역사가 260
감사의 말 285
옮긴이의 말 286
《엄마는 페미니스트》의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대표 소설집
급격히 밀려든 미국 문화와 세계화의 거센 물줄기
그 속에서 몰이해와 소통의 순간을 겪으며
공존에 다다르려는 나이리지아 사람들의 위태하고도 흥미로운 여정
《파이낸셜 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
▶ 아디치에는 잊을 수 없는 캐릭터들을 만들어 낸다. 이 인물들은 페이지에서 튀어나와 당신의 머리와 심장 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USA 투데이》
아프리카 현대 문학을 이끄는 대표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숨통』이 새로운 장정으로 재출간되었다. 아디치에는 『자주색 히비스커스』로 등단하자마자 “치누아 아체베의 21세기 딸”이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두 번째 장편소설 『절반의 태양』(2006)으로 오렌지 소설상을 받고 “천재 상”이라 불리는 맥아서 펠로로 선정되었다. 『숨통』은 2002년부터 6년간 《프로스펙트》, 《그란타》등 세계 유수의 잡지에 발표했던 열두 편의 단편 소설을 모은 소설집으로, 모든 것이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미국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전통을 지키려 애쓰며 자신만의 삶의 양식을 개척해 가는 나이지리아인들의 지난한 여정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 냈다.
전작들을 통해 고국 나이지리아가 겪은 역사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썼던 작가는 이번에는 열아홉 살에 도미한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인이 아닌 ‘타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더 동시대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계화라는 커다란 흐름에 놓인 약소 국가의 한 개인이 주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아낸 『숨통』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도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작가의 날카롭고 섬세한 관찰력과 진중하면서도 곳곳에 배어 있는 유머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2009년 《파이낸셜 타임스》 선정 ‘올해의 도서’ 목록에 올랐다.
■ 세계화의 흐름에 맞서 ‘자기만의 삶’을 꾸려 나가려는 이들의 이야기
『숨통』에는 저마다 다른 삶의 내력을 지닌 다양한 나이지리아인들이 등장한다. 나이지리아라는 나라 자체는 낯설게 느껴질지 몰라도,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그들의 고민은 우리에게 크게 낯설지 않다. 나이지리아에 살면서도 미국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거나 미국에 살지만 나이지리아인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는, 양쪽 세계에 걸쳐 살아가는 나이지리아인들의 모습에 구미 문화권 출신도 아니고 영어를 모국어로도 하지 않는 이른바 주변인으로서 오늘날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겹치기 때문이다. 각 이야기들은 미국 혹은 나이지리아 어딘가에서 펼쳐지지만, 그들이 어디 사느냐 하는 공간적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며 주인공을 한국 사람이라고 가정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보편적이다. 작품은 국가, 가족, 개인의 신념 등과 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들을 위협해 오는 것으로부터 자기만의 고유성을 지키고 싶어 하며, 보호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하길 원하는 인간의 열망을 매우 세밀하게 그려 낸다.
내가 그런 말을 한다면 그 애에겐 마침내 여기 와서 나를 미국으로 끌고 갈 구실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나는 모든 것이 너무 편리해서 재미없는 삶을 살아야만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기회”라 부르는 것으로 더럽혀진 삶. 내게는 맞지 않는 삶. (중략) “그런 생활이 좋으세요, 아빠?” 은키루카는 요즘 나랑 통화할 때 은근히 귀에 거슬리는 미국식 악센트로 이렇게 묻는 데 맛을 들였다. 그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야. 그냥 내 삶일 뿐이지. 나는 딸에게 그렇게 말한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다. —「유령」에서
작품들 속에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신념 아래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이들과 ‘삶의 양식이 의식을 지배하는 것’을 경계하며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에 자신의 삶이 휩쓸릴까 조심스러워하는 이들이 함께 등장한다. 하지만 작가는 무엇이 좋고 나쁜가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거대하고 막강한 세력 앞에서 무차별적인 변화를 강요받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며 모든 것이 단일한 기준에 의해 통합되고 수렴되어 가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미국’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으로 망명 간 남편 때문에 정부 요원의 손에 아들을 잃기도 하고, 원하지 않는 결혼 이민을 와서 사랑하지도 않는, 배 나오고 입 냄새가 나며 이보어도 못 쓰게 하는 의사 남자와 살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하기보다는 최대한 저항하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미국 대사관」에 등장하는 주인공 여자가 죽은 아들을 팔아넘겨 미국 망명 비자를 받느니 이 땅에 남겠다며 대사관을 박차고 나오는 장면이나, 「고집 센 역사가」에서 노인 느왐그바가 기독교식 장례를 위해 자기 몸에 성유를 발랐다간 남은 힘을 다해 후려쳐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장면 등은 ‘대세’가 무엇이든 각 개인은 자신만의 삶의 양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자명한 진실을 상기시켜 준다.
■ 편견 너머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해 주는 소설
에드워드는 생각에 잠긴 듯이 한참 파이프를 씹더니, 이런 유의 동성애 이야기는 아프리카의 진짜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어느 아프리카요?” 우준와가 불쑥 말했다. (중략) “지금이 2000년일지는 모르지만 가족들에게 자기가 동성애자라고 고백하는 여자 이야기가 대체 얼마나 아프리카적이라는 거요?” 에드워드가 물었다. 그러자 세네갈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를 속사포처럼 쏟아 내기 시작하더니 약 1분 동안의 일장 연설을 마친 뒤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네갈인이에요! 내가 세네갈인이라고요!” —「점핑 멍키 힐」에서
당신은 그와 가까워졌음을 알았다. 당신의 아버지가 실은 교사가 아니라 건설 회사의 말단 운전사라고 그에게 말했을 때. 그리고 당신은 아버지가 털털거리는 푸조 504를 운전했던 어느 날의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중략) 당신이 이 이야기를 마치자, 그는 입술을 오므리면서 당신의 손을 잡고는 당신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당신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 세상이 자기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혹은 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갑자기 화가 났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에게, 이해해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고, 그냥 사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말했다. —「숨통」에서
『숨통』은 또한 타자, 특히 주변부를 바라볼 때 범하기 쉬운 오류를 보여 준다. 작품 속에는 소위 아프리카 애호가, 아프리카 전문가라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아프리카에 대해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며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대놓고 혹은 은연중에 과시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특정 대상에 관심을 갖고 그것에 대해 많은 정보를 터득한다고 해서 그 대상에 대한 ‘이해’가 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중심부에서 서서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누군가를 편견 없이 온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그 불가능성을 겸허히 인정하고 시각의 축을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이동하려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에드워드 교수가 “이런 유의 동성애 이야기는 아프리카의 진짜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점핑 멍키 힐」)이나 외제차를 살짝 박은 아버지가 길바닥에 엎드려 “저와 제 가족을 판다 해도 선생님 차의 타이어 하나 살 수 없을” 거라며 비는 모습이 꼭 ‘똥’ 같아 보였다는 나이지리아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미국인 남자 친구가 “당신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숨통」)은 자기가 아는 일부 사실만으로 그 대상을 ‘안다’고 생각하는 ‘만용’과 같다. 작가는 ‘아프리카’를 떠올렸을 때 흔히 생각지 못하지만 아프리카인들의 삶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동성애, 결혼 이민과 같은 일들을 진솔하게 그려 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편견의 더께를 걷어 내고 ‘진짜 아프리카’의 모습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작가는 “소설에는 가슴으로 느껴지는 진실이 반드시 드러나야 한다”며 이것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일상성 안에서 상황을 설명하기보다는 그대로 보여 줄 때 느껴지는 진실”을 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작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여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이 개인의 삶에 드리운 행복과 불행의 면면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소설집 『숨통』에도 작가의 이러한 신념이 관철되어 있다. 낯선 세계 속에서 갖가지 난관들을 헤치며 자신의 영역을 위태롭게 확보해 나가는 이들에 관한 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진솔한 이야기가, 점점 복잡해져만 가는 세상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잊은 채 분주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계기를 마련해 준다.
■ 본문에서
아이를 낳으러 미국에 왔을 때 처음 얼마 동안은 자랑스러운 흥분감을 느꼈다. 결혼을 통해 자신이 갈망하던 부류, ‘아내를 미국에 원정 출산 보낸 부유한 나이지리아 남자들’이라는 부류에 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들이 세 들어 살던 집이 매물로 나왔다. 좋은 가격이야, 오비오라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우리가 그 집을 살 거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그가 “우리”라고 말했을 때 마치 그녀에게 정말 발언권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자신이 또 다른 부류, ‘미국에 집이 있는 부유한 나이지리아 남자들’의 일원이 된 것도 기뻤다. 「모조품」(40쪽)
“딸아이는 미국에서 잘 지내나?” 이켄나가 물었다.
“아주 잘 지내네.”
“의사라고 했지?”
“그래.” 나는 이켄나에게 더 자세히 말해 줘야 마땅하다고 느꼈다. 혹은 아까 내가 한 말 때문에 생긴 어색함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 애는 코네티컷주의 작은 마을에 살아. 로드아일랜드주에서 가까운 쪽이지. 병원 이사회에서 의사를 구하는 광고를 내서 우리 애가 찾아갔더니 걔가 의사 자격증을 나이지리아에서 땄다는 걸 알자마자 자기들은 외국인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래. 하지만 그애는 미국 시민이거든. 내가 전쟁 후에 미국으로 가서 버클리에서 강의할 때 그 애가 태어났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은 그 애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지.” 나는 킥킥 웃으면서 이켄나도 함께 웃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화염목 밑의 사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령」(93쪽)
그는 키가 크고 턱이 길었다. 그리고 말하는 품에 뭔가 부드럽고 달래는 듯한 면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 그가 변호사이기 때문이리라고 그녀는 추측했다. 그는 부엌에서 면접을 봤다. 조리대에 기대서서 그녀의 출신과 나이지리아에서의 삶에 관해 물었고 조시가 유대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자신의 뿌리를 둘 다 알도록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동안 전화기에 붙어 있는 은색 ‘총기 반대’ 스티커를 계속 문질러 댔다. 카마라는 애 엄마는 어디 있나 궁금했다. 어쩌면 닐이 그녀를 죽여서 여행 가방 안에 넣어 놨는지도 몰랐다. 카마라는 지난 몇 달 동안 법률 TV를 보면서 지냈고 미국인들이 얼마나 미치광이인지 알게 됐다. 「지난주 일요일에」(105쪽)
“지금이 2000년일지는 모르지만 가족들에게 자기가 동성애자라고 고백하는 여자 이야기가 대체 얼마나 아프리카적이라는 거요?” 에드워드가 물었다.
그러자 세네갈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를 속사포처럼 쏟아 내기 시작하더니 약 일 분 동안의 일장 연설을 마친 뒤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네갈인이에요! 내가 세네갈인이라고요!” 이 말에 에드워드는 똑같이 유창한 프랑스어로 대답하고 나서 다시 영어로, 부드러운 미소를 띠면서 “저 사람은 고급 보르도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나 보군요.”라고 말했고 몇몇 참가자들이 킥킥 웃었다. 「점핑 멍키 힐」(146쪽)
그래서 당신이 오늘의 메뉴를 줄줄 읊은 뒤에 그가 식당의 어두침침한 불빛 속에서 당신에게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나이지리아라고 대답하고 나서 그가 보츠와나의 에이즈 퇴치 운동에 돈을 기부한 얘기를 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당신이 요루바족인지 이보족인지를 물었다. 얼굴을 보니 풀라니족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당신은 깜짝 놀랐다. 당신은 그가 주립대의 인류학 교수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니 나이가 조금 젊긴 했지만 얼굴만 봐서 어떻게 알겠는가?
이보족요, 당신은 대답했다. 그는 당신의 이름을 물었고 아쿤나가 예쁜 이름이라고 했다. 다행히,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당신은 사람들에게서 “‘아버지의 재산’요? 그럼 당신 아버지가 실제로 사위한테 당신을 팔아넘길 거란 말인가요?”라는 말을 듣는 게 지겨웠기 때문이다. 「숨통」 (1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