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한데 엉긴 꿈을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소리 내어 외는 기도
권민경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꿈을 꾸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가 민음의 시 296번으로 출간되었다. 첫 시집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에서는 꿈과 생, 그 사이에 벌어진 상처의 수많은 면면들을 생생하고 세밀하게 재현해 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꿈과 생을 한데 뒤섞어 버린다. 얼마간 선언적인 제목처럼, 시인은 꿈을 잠든 뒤에 꾸지 않고, 깨어 있는 동안의 삶 속에서 속속들이 골라낸다. 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당장 잡아챌 수 있는 것이라는 듯. 꿈과 분리된 민낯의 삶은 전보다 더욱 지독하고, 삶으로부터 솎아 낸 꿈은 더욱 처절하다. 시인은 자신을 ‘칼잡이’라 정의 내리고, 삶을 부수고 때로는 달래 가며 그만의 꿈 찾기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시집 『꿈을 꾸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는, 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 이후 어떻게 꿈을 실현해 나갈 수 있는지를 탐구해 보려는 과정의 기록으로, 꿈이라는 말이 지닌 부드럽고도 비현실적인 감각을 너무도 현실적이고 치열한 감각으로 바꾸어 놓는다.
■ 또박또박 이야기하기
태어나 버렸다
기왕,
입을 크게 벌리고 이야기한다
그걸 진심으로 믿는 사람에게 다가갈 거야
진심을 진심으로 읽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알지 못하고
―「빈 하늘에 기도문」에서
기도할 때 흔히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조용히 기도의 말을 읊조리는 것은 세상과의 연결을 차단하고, 신 혹은 초월적 존재와의 연결을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함일 테다. 그런데 권민경의 기도하는 인물은 일반적인 기도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 내어 또박또박 기도문을 왼다. 그때의 기도는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을 열망하는 것이 아닌, 현실을 “야무지고 억척스럽게” 살아 내기 위한 몸짓에 가깝다. 나의 기도를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속삭이는 대신, 세상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기 위해 눈을 감는 대신, 권민경의 인물들은 모든 ‘척하는 것’을 거두어 버린다. 나의 안위를 살피는 상대에게마저 “엄마 괜찮아졌다고 생각하지 마 히키코모리 생활을 끝냈다고 내가 다 나은 건 아냐”(「담담」)라고 다시 한번 고쳐 말하는 태도는 나를 보다 정확한 현재에 위치시킨다.
■ 아름다움을 향한 칼
나는 생업으로의 칼 씀이 아닌 자신을 악귀나 도깨비, 그것도 아니면 세상의 것을 벗어난 아름다운 무엇으로 느끼며, 아름답고 초월적인 존재가 칼을 씀으로 표출되는 것을 느끼며 내가 왜 운명적으로 칼잡이로 태어났는지 알 수 있게 되었고 왜 악사가 아니 되었는지도 알 것만 같았다.
―「꿈을 꾸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에서
권민경 시의 화자는 자신을 ‘칼잡이’로 정의 내린다. 그는 자신이 “왜 운명적으로 칼잡이로 태어났는지” 알고 있다. 그의 기도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의 칼 역시 현실을 향해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 쉽지만, 의외로 그의 칼은 “생업으로의 칼”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그는 칼을 쓰는 행위를 통해 무언가 “표출되는 것”을 감각하며, 자신을 “세상의 것을 벗어난 아름다운 무엇”으로 느낀다. 기도를 하되 현실을 향해, 칼을 쓰되 초월적인 가치를 향하는 권민경의 시는 강한 운동성을 지녔다. 그렇게 시가 진동하는 와중, 문득 솟아 나온 사랑의 말들이 있다. “내 칼과 나는 서로 공명 중”이라 진술하던 화자가 이내 사랑하는 이를 향해 당신이 “죽지 않았음 좋겠어”라고 고백하는 장면. 날카로운 기도와 아름다움을 좇는 분투 사이 때때로 고개를 드는 사랑의 말들, 이는 권민경의 시 세계 전체를 향한 은유처럼도, 우리의 삶에 대한 은유처럼도 읽힌다.
■ 본문에서
내 뒷덜미는 아직도 소년 같아서
기분 나쁘다
만사가 너로 보이고
모르는 그림자 너
아는 개 발자국 너
죄다 닮아 있다
―「떨어진 머리를 안고」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면 왜 가슴이 찢길까
내 것이 아니여서인가 보다
내 것이었다 해도 난 늘
찢어졌겠지만
―「번개」에서
다들 읽어 봐요 큰소리로
읽을 수 없다면 대체 무슨 말인지
물어봐요
위풍당당에게 감히
물어보세요
나는 내 이름을 가장 많이 발음한 사람이 아니다
―「내 이름 몸뚱이에 새겨 넣은 네가」에서
■ 추천의 말
권민경의 꿈에서는 개구리알 냄새와 같은 비릿한, 강아지, 땀, 오늘 겪은 일들의 냄새가 뒤섞이며 육박해 온다. 그것은 ‘나’로부터 발산하는 냄새이며, ‘나’를 구성하는 냄새이자, 돌연 ‘나’를 초과하여 다시금 ‘나’를 가격하는 냄새로서, 그것으로 이 세계를, 세계와 연루된 존재인 ‘나’를 감각하게 한다.
─작품 해설에서│최가은(문학평론가)
1부 병
빈 하늘에 기도문 13
새해 14
4월 30일 16
담담 19
번개 22
사단법인 취업 지침 24
벽 27
마 푸어 베이베 30
그 책 32
철원 36
2018 예술인 심리상담 지원 38
퇴근 40
혹과 뿌리 42
무게 44
2부 사랑
활 51
동병쌍년 53
번아웃 56
불꽃 축제 58
무신론자 60
떨어진 머리를 안고 62
연애담 64
사랑 ㅇㅇㅇ 67
N극의 자기 70
느리게 떴다 감는 사람 74
대강당 76
첫사랑 78
내 이름 몸뚱이에 새겨 넣은 네가 80
껌과 꿈 82
잃을 사랑도 없다는 듯 84
3부 나와
밑천 89
어린이 미사 3 91
오후에 눈 떠 천장을 94
그린명품크리닝 앞 흔들리는 꽃양귀비 96
고행자 A 98
서늘하고 축축한 곳간 100
주제 102
꿈을 꾸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 105
웃는 용 118
피크닉 121
초신성 124
어린이 미사 2 126
홍수 흔적 기념비 128
밤의 쇼핑몰 130
냄비들 132
서킷으로 134
4부 같은
니트 139
노벨 화학상을 받을 노래 141
선배-롤모델 143
선배-선배는 146
선배-유적 148
말머리 아줌마 150
구멍 152
청설모 155
대가출시대 156
겨울나무 158
미로 160
침착하세요 조용하게 지내세요 161
장래희망 164
맺음, 말 166
작품 해설
The Dreaming_최가은(문학평론가)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