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산티페의 대화

원제 Xanthippic Dialogues

로저 스크루턴 | 옮김 김재인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1999년 2월 20일 | ISBN 89-374-2429-0

패키지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332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기원전 4세기의 문헌인 『크산티페의 대화』를 발견하였다는 황당한 거짓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허구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허구의 세계’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그의 솜씨, 해박한 지식, 야심찬 기획에는 박식한 문헌학자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편집자 리뷰

뒤집어본 그리스 철학과 플라톤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대처 전(前) 수상의 정책 자문 위원이기도 하였으며, 국내에 『칸트』(시공로고스총서), 『현대철학소사』(현대미학사)가 번역되어 문예미학자로도 알려져 있는 로저 스크루턴의 철학소설 『크산티페의 대화』는 당시 철학서적으로서는 드물게 화제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었다.
우선, 기원전 4세기의 문헌인 『크산티페의 대화』를 발견하였다는 황당한 거짓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허구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허구의 세계’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그의 솜씨, 해박한 지식, 야심찬 기획에는 박식한 문헌학자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서늘한 아침 시간에 나는, 어느 알렉산드리아 학자의 세심한 손으로 씌어진 한 편의 소크라테스식 대화의 도입부를 파피루스로부터 추출해 내었다. 나는 곧 확신할 수 있었다. 내 앞에는 잃어버린 「크산티페의 국가」 도입부 단편이 놓여 있는 것이다. 그 대화편은 기원전 4세기에 실존했으며, 모호하기는 하지만 몇몇 고대 자료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었다. 그후 이 단편뿐만 아니라 어떤 문헌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은 두 개의 대화편을 더 발견했는데 이것은 아마 학계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일 것이다\” -「편집자 서문」 중에서
 
또한 이 책은 플라톤의 방대한 대화록에 대한 거대한 패러디다. 플라톤의 저술은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대화들이 실재의 서술이 아니라 일종의 허구라는 점은 대체로 간과되어 온 경향이 있다. 그래서 로저 스크루턴은 자신의 허구 작업을 통해 서구 형이상학의 근원이 되는 플라톤의 철학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보여 주려 한 것이다.
 
플라톤   맙소사, 어머니, 난 어머니의 이론에서 뭔가 의미를 발견하기 시작했어요.
페릭티오네   실은 그건 내 이론이 아니라 크산티페의 이론이란다.
플라톤  뭐라고요?
페릭티오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그 이론 작업을 함께 해냈던 거야. (p.160-161)
 

 

 
완벽한 허구를 구성하여 <진리란 무엇인가>를 캐묻는 철학 주제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편집자 서문」부터 「색인」까지) 모두 허구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① 「편집자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의 편집자는 원래 플라톤 연구자였다. 그는 메마르고 건조한 플라톤 연구에 싫증을 느껴 그리스로 갔고, 거기서도 별다른 진척이 없자 우연의 목소리를 따라 이집트까지 가게 된다. 이곳에서 어떤 술집 여자가 보여 준 『파피루스』에는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크산티페의 대화록 세 편이 실려 있었다. 그것을 자신의 여관방으로 가져와 옮겨 적고 마침내 번역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크산티페의 국가」, 「페릭티오네의 파르메니데스」, 「크산티페의 법률」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저자임을 숨기고 있으며, 오로지 편집과 번역을 하고 주석을 달았다는 것만 밝히고 있다.
 
② 또한, 플라톤이 자신의 대화편들에서 실재(實在)를 은폐하고 허구적 기술을 하였듯이, 로저 스크루턴 역시 시종일관 역사상의 실재 인물들의 행위와 사상, 관계를 허구적으로 기술한다. 가령, 크산티페나 페릭티오네(플라톤의 어머니)의 어록들을 실재와 맞먹게 재구성한 대목은 실제로 그런 대화가 가능했을 법하게 기술한다.
역사상 존재했는지가 의심스러운 많은 고대 문헌들을 발굴해서 연관지은 것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이다. 만일 그런 고대 문헌들이 발굴되었다면 철학사 기술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여러 고대 문헌들을 위조하여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각주 28)의 내용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히파티아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 저술인 『딥소소피스타이』에서 이 주장을 부정하기 위해 분투했다 (……).” 이중에서 『딥소소피스타이』라는 문헌에 대한 언급이 이에 해당한다.)
 
③ 로저 스크루턴의 그리스 로마 고전들에 대한 애정과 해박한 지식은 가짜 문헌과 가짜 주석을 기술하는 데에서 빛을 발한다. 교묘하게 고안해 낸 가짜 문헌과 가짜 주석들, 색인,편집자 서문들을 읽다보면, 실제로 그것이 사실인지 의심이 들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허구적인 문헌과 주석이 진짜일지 모른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로저 스크루턴의 이러한 방법론은 현대 소설의 기법 중 하나인 상호텍스트성을 연상시킨다. 보르헤스와 움베르토 에코, 이인화가 자신들의 작품에서 구체화한 기법과 유사하게 로저 스크루턴 역시 현대적인 기법으로 고대 문헌들을 재해석,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진리 탐구의 척도를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장치들은 로저 스크루턴이 제기하는 ‘커다란 물음’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어가야 한다. 스크루턴은 ‘우리 삶에서 허구는 얼마만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확대하여 ‘서양철학사의 근원에는 허구가 얼마만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한 것이다. 그래서 철학이란 답변보다 ‘물음의 창조’ 속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면 이 책은 충분히 철학적이다. 다른 한편, 모든 물음은 배경과 맥락을 통해서만 제기될 수 있는데, 그 배경과 맥락 그리고 인물을 통해 ‘물음의 현장’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문학적이다.
 

 

 
크산티페를 통해 2,500년 만에 밝혀지는 그리스 철학의 비밀
 
플라톤의 대화편들에서는, 이상화(理想化)된 소크라테스가 전 역사를 통해 플라톤을 유명하게 만들 생각들을 자세히 말하고 있다. 형상(이데아)들의 세계, 이상 국가와 그것에 대한 전체주의적 기획, 사랑의 신(혹은 적어도 동성애적 사랑의 신)인 에로스에 대한 찬사, 영혼의 구원에 대한 약속 등. 이 모든 것은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특유한 어조 속에서 전해져 왔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얼마나 믿었을까? 플라톤의 동시대인들이 그 이야기에 정말로 동의하고 승복하였을까? 플라톤은 대체 누구였을까? 실제 세계의 인간들을 그처럼 철저히 배제시킨 플라톤의 철학 뒤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크산티페의 대화』가 발견되기 전까지 우리는 이 물음들에 대한 답변을 찾지 못했다. 이제 플라톤이 자신의 논변 진행에서 추방했던 여인들에 의해 진짜 플라톤이 우리에게 드러난다. 이 멋지고 재치 있는 책에서 추상의 가면은 벗겨지고 그 아래 놓여 있는 진리가 드러난다. 그 진리가 바로 크산티페다. 소크라테스의 아내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며 서구 세계를 기초 지은 어머니인 크산티페.  (「역자의 말」 참조)
스크루턴이 크산티페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철학을 설파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플라톤의 전체주의와 이상국가론에 뚜렷이 반대한다. 그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저자인 칼 포퍼의 입장과 유사하게 플라톤의 사고를 헤겔, 마르크스의 사고와 함께 전체주의라는 이름으로 비판하고 있다. 전체주의 속에서 사랑은 그 온전한 의미를 실현할 수가 없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스크루턴은 크산티페의 입을 통해 ‘여성의 관점’에서 플라톤/소크라테스의 입장에 반대한다. 가족, 우정, 사교, 정치, 국가, 법률 등으로 확대되는 사회적 영역을 또다른 의미에서 보자는 것이 크산티페의 관점인바, 이것이 ‘다른 관점’, ‘다른 시각’의 도입이며, 이때 필요했던 것이 ‘여성의 입장에 대한 옹호’다. 소크라테스의 어록들을 기록했다는 점을 들어 플라톤이 완벽한 허구로 구성해 놓은 플라톤의 『대화록』과 정확히 대쌍(對雙)이 된다는 점에서 크산티페를 인용한 것이다.
완벽한 이성적 계획, 전사회적 통제, 이상국가론에 대한 비판은 ‘여성적 관점’과 더불어 영국인 특유의 ‘경험주의’를 기반으로 수행된다. 스크루턴은 완벽한 이성적 계획은 불가능하며 차라리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정착된 ‘관행’을 따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를 ‘경험적 합리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사회를 파괴하거나 문제를 발생시킬 소지를 없애려는 의도로 법률을 제정하게 되면 그것은 곧 삶에 대한 강력한 구속과 파괴를 초래하게 되리라고 본다. 이런 입장이 「크산티페의 국가」나 「크산티페의 법률」에서 개진되고 있는 내용이다.
 
이상으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철학적 주제의 일부를 정리했지만, 정작 이 책 자체가 요약될 수는 없다. 대화 속에서 오가는 생생한 철학적 삶, 철학적 논증, 논변 들은 “저자가 열어놓은 대화 공간에 참여하여 독자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점검할 수 있어야만” 그 의미의 추적이 가능하다. 이 흥미진진한 대화편들을 읽어 나가는 동안 자신이 어느덧 철학자가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작가 소개

로저 스크루턴

보스턴 대학의 교수.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대처 전(前) 수상의 정책 자문 위원을 맡기도 했다. 저서로 <스피노자>, <성적 욕망>, <현대 철학> 등이 있다. 수십 년간 칸트 철학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강의했으며 몇권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

김재인 옮김

1969년 서울출생. 서울대학교 미학과 졸업. 동대학원 철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출강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천 개의 고원>, <들뢰즈 커넥션>, <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 <크산티페의 대화>, <질 들뢰즈의 베르그송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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