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인문학의 첫걸음, 그리스-로마 신화의 최고 전범바이블과 함께 서양 문화의 두 축이 된, 천지창조에 관한 대서사
『변신 이야기 Metamorphoses』는 그 내용의 방대함은 물론 수려한 문체로 그리스-로마 신화의 최고 전범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서양 중세 문화는 기독교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만큼 이 책은 아직 기독교에 물들지 않은 서양 고대의 인식체계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한편 시대를 뛰어넘어 수많은 작가와 시인과 화가 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예술 창조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이 책에 담긴 세계에 대한 풍부한 모티프들과 시적 상상력들은 서양의 인문학에 접근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지식을 제공할 것이다. 나아가 하늘이 열리던 아득한 때와 사람이 살게 된 시대 사이에 가로놓인 긴긴 세월을 일시에 뛰어넘는 신화적 경험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오비디우스의 유쾌한 경망(輕妄)
영어권 독자들에게 <오비드>로 알려져 있는 푸블리우스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는 기원전 43년 로마의 술모(이탈리아에 있는 지금의 술모나)에서 부유한 기사(騎士)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오비디우스는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관리가 되기 위해 로마로 나와 수사학과 법률을 배우게 됩니다만, 오비디우스는 바야흐로 카에사르의 뒤를 이은 아우구스투스가 평화를 정착시킨 이 역동적인 도시에서 따분하게 관리 노릇이나 하고 있을 사람이 못 되었던 모양입니다. 당시의 로마는 아우구스투스에 의한 이른바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가 꽃피던 시절, 도시에는 호화스러운 극장이 속속 들어서고 있던 시절, 메살라와 마에케나스(예술의 후원자를 뜻하는 프랑스어 \’메세나\’는 이 이름에서 유래한다)의 문단(文壇)은 젊은 문학 지망생들을 고무하여 현실적인 근심걱정에 구애되지 않은 채 문학적인 재능을 갈고 닦을 수 있게 해 주던 그런 시절을 구가하고 있었습니다.아버지의 희망을 저버리지 못해 오비디우스는 짧은 기간 관리 노릇을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세월을 보내기에는 오비디우스는 지나치게 재주 있는 사람, 유쾌한 사람, 유복한 사람이었고, 로마는 지나치게 관능적인 도시, 호화로운 도시, 평화로운 도시였습니다. 시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명예에 견주면 관리로서 누릴 수 있는 영달이 참으로 하찮은 것임을 깨달은 오비디우스는 곧 기지(機知) 놀음이 통하는 문단으로 진출, 오래지 않아 그 방면의 선두주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이때부터 오비디우스는 풍족한 유산, 빛나는 기지, 엄청난 기억력, 반듯한 사교술을 가로세로로 구사하면서 일약 문단과 사교계의 총아가 됩니다.이 시절에 그가 쓴 작품이 저 유명한 『사랑의 기술』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랑에 대한 점잖은 교과서적 가르침을 우롱하면서 <보아 주는 이 없는데 곱게 핀 꽃에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식으로 구체적인 연애 기술, 활달한 사랑법을 가르칩니다. 남성에게는 여성을 꾀는 방법, 여성에게는 남성을 유혹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이 책은 당시 로마 인들에게 상당한 입씨름거리를 제공했던 모양입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을 찬양하는 사람들에게는 <명쾌한 탁견>이었고, 악평하는 사람들에게는 <경망스러운 말장난>이었던 것입니다.그런데 이 시대는, 말이 <프린켑스 세나투스(원로 중 으뜸가는 원로)>였지 실제로는 황제나 다름없던 아우구스투스는 <파트리 파트리아이(國父)>로서 풍속의 새마을 운동을 근엄하게 펼치던 시절입니다. 그는 검투사들이 죽고 죽이는 광경을 짜릿하게 즐기던 로마의 여인들에게 검투장 출입을 금지시킴으로써, 죽이는 검투사와 죽는 검투사의 알몸을 마음껏 감상해 오던 로마 여성들을 매우 심심하게 만들었는가 하면, 50세 이하의 모든 여성에게는 결혼과 출산의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남성들 사이를 부유하던 불나비 여성들을 몹시 갑갑하게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그러나 아우구스투스의 유신(維新)이 추상 같았는데도 불구하고 외동딸 율리아는 아버지의 율령을 귓전으로 흘리고 그 명령과 금령을 교묘하게 피하는 수단과 방법을 종횡으로 구사함으로써 로마의 미풍양속을 비웃게 됩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정적(政敵)들의 위협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이 딸을 로마에서 황량한 섬으로 추방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머니와는 동명(同名)인 율리아의 딸 율리아 역시 어머니를 그대로 시늉함으로써 아우구스투스가 요구하는 미풍양속의 호소에 순응할 생각이 없는 무리의 찬양을 받으며 로마의 불나비가 되어 버립니다.고삐 풀린 말처럼 설치고 다니던 율리아는 많은 로마의 호걸들을 사랑하는데 바로 그중의 한 사람이 『사랑의 기술』로 한 차례 로마의 미풍양속을 뒤흔들어 놓은 오비디우스입니다. 결국 아우구스투스는 그 시대를 비웃으면서 『사랑의 기술』로 성공을 거두고, 두 율리아와 어울림으로써 아우구스투스로부터 용서받기 어려운 괘씸죄를 얻게 됩니다. 참다 못한 아우구스투스는, 딸 율리아의 방탕한 삶을 찬양하고 게다가 손녀 율리아의 애인 노릇까지 한 이 오비디우스를 토미스(지금의 루마니아 콘스탄티아)라는 땅으로 귀양을 보냅니다. 오비디우스 자신은 귀양당한 원인에 대해 <어떤 시구(詩句)와 어떤 과실(過失)> 때문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바로 이 시구는 큰 율리아를 찬양하는 시구이고, 과실은 율리아의 애인 노릇을 한 일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을 법한 오비디우스가 유배지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쓴 작품이 바로 이 『메타모르포시스』입니다.아우구스투스가 풍속 새마을 운동을 펼치던 이 시대는 바로 리비우스가 『로마 건국사』를 쓰던 시절, 호라티우스가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기쁘고도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하던 시절, 베르길리우스가 대작 『아에네이스』를 씀으로써 어떻게 하든지 로마 황제에게 신통성(神統性)을 부여하려고 하던 시절입니다. 우리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보면, 중국의 역사를 끌어들임으로써 어떻게 하든지 조선 건국에 정통성을 부여하려던 노력의 흔적이 보이는데,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스』와 오비디우스의 『메타모르포시스』는 바로 우리의 이 용비어천가를 상기시킵니다.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로마의 신화는 등장하는 고유명사만 달랐지 사실은 그리스의 신화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의 신화는 우라노스와 가이아에 의한 천지창조 시대, 이 천지창조 뒤에 오는 <티타노마키아(거신(巨神)들의 전쟁)>시대, <기간토마키아(거인(巨人)들의 전쟁)> 시대로 이어지고, 이윽고 이 시대는 올륌포스 신들의 시대, 영웅의 시대, 인간의 시대로 이어지다가 트로이아 전쟁으로 일단 막을 내립니다.그런데 베르길리우스는 『아에네이스』를 통하여 트로이아의 전쟁 유민 아이네이아스를 이탈리아의 라틴 평원으로 이주시키면서 이 아이네이아스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로마인의 조상은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거쳐 아이네이아스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고, 따라서 이 족보는 다시 아프로디테(베누스)를 거쳐 신들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우라노스까지 소급됩니다. 로마의 문화공보부가 로마의 황제들을 신격화시킨 이론적 근거는 바로 여기에 그 뿌리를 댑니다.오비디우스의 이 『메타모르포시스』는 한술 더 떠서 방대한 그리스 신화는 물론이고 당시에 떠돌던 소 아시아의 설화, 트로이아 전사(戰史), 로마의 건국신화까지 한 줄에 꿰어 아우구스투스에게 신성(神性)을 부여합니다. 오비디우스가 이것을 집필하게 된 정황과 의도는 대체로 이러합니다만, 이 작품은 오비디우스의 대표작인 것은 물론 그리스와 로마 신화의 가장 충실한 길잡이의 하나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 읽는 토마스 벌핀치의 『그리스·로마 신화』의 대부분은 바로 이 『메타모르포시스』를 인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중세를 <기독교와 오비디우스의 시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이 말은 오비디우스가 그려낸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체계가 작가와 시인과 화가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들의 붓끝에 세례를 베풀고 끊임없이 그 시대로 돌아가게 했다는 뜻일 것입니다.오비디우스의 <명쾌한 경망스러움>은 주신(主神) 유피테르의 <위대한 난봉>을 연상시킵니다. 이 세상의 인간과 문화와 문명의 살림살이를 지어내고 온갖 개념을 시운전(試運轉)해 낸 유피테르에게 난봉기가 필요했듯이, 신들의 세계를 엿보고 이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려 했던 오비디우스에게 약간의 명쾌한 경망스러움은 어쩌면 필요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이 책의 원제인 <메타모르포시스(變形, 變身, 變貌)>는 사물이 비롯되는 정황을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에는 창조설이 있듯이 많은 문화권의 신화나 설화는 나름의 창조설과 전신설(轉身說)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원숭이의 엉덩이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빨갛게 되었다느니, 게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게걸음을 걷게 되었다느니, 수수 대궁이는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피가 묻게 되었는데 그래서 수수 대궁이는 빨갛다……는 식입니다.물론 순진한 신화해석학에 속하는 이 <메타모르포시스>라는 개념은 과학적으로는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한 개념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개념이 <시적 메타모르포시스>라는 표현으로 바뀌면 그 성격은 사뭇 달라져서 오비디우스의 시대에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조금도 다름없이 유효한 개념이 됩니다. 따라서 오비디우스의 메타모르포시스는 그 시대 사람들의 시적 상상력이 투사된 <시적 메타모르포시스>쯤으로 이해되면 좋을 듯합니다. 사실 <메타모르포시스>라는 개념은, 세계의 모든 민족이 나름의 신화와 전설의 체계에서 자연과 인간 사이의 모순을 해소하는 하나의 만병통치약 노릇을 해 온 듯합니다.많은 사람들은, 장쾌미려한 신화의 정교한 철학체계와 웅대한 서사문학을 지어낸 그리스에 견주면, 이 그리스를 정복하고 세계 제국을 건설한 로마는 어쩐지 초라하게 보인다는 말들을 곧잘 합니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 같은 사람은 <정복당한 그리스는 오히려 광포한 로마를 문화로써 재정복했다>는 말을 할 정도입니다.호메로스와는 달리, 이 오비디우스를 읽다 보면 이따금씩 궁색한 대목을 만나게 됩니다. 아마 오비디우스가 저희 왕통(王統)을 그리스의 신통(神統)에 끌어다 붙이기 위해 그리스 신화를 지나치게 아전인수로 윤색해서 풀어먹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따금씩 신화의 아귀가 맞지 않아서 마뜩지 못한 대목을 만나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귀합니다. 인류 2천 년 문화의 두 대궁 중 한 대궁은 기독교적 인식체계를 바탕으로 한 문화인데, 그 인식체계에 물들지 않은 고대의 인식체계, 그리스도 이전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읽는 것은 신선한 읽기의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하늘이 열리던 때의 아득한 때와 우리가 사는 때 사이에 가로놓인 긴긴 세월이 소거(消去)되는 듯한 희한한 경험도 가능하게 합니다.
번역대본으로는 영어판을 썼습니다만, 일본어판 『轉身物語』의 고유명사 색인도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원래 이 책은 2인칭의 운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상당 부분이 <유피테르여, 그대는 올륌포스의 신이었도다> 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체는 우리 독자들에게 지나치게 생소할 것 같아서 읽기 쉽도록 3인칭의 산문으로 바꾸면서 번역했습니다. 역어(譯語) 중 고유명사는, 이 책의 저자가 로마인인 만큼 라틴어식으로 표기했습니다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대목에서는 그리스식 표기 및 영어식 표기도 덧붙여 두었습니다. 가령 올륌포스의 주신 <유피테르>의 경우 라틴어식으로는 <유피테르>이지만, 그리스식으로는 <제우스>, 영어식으로는 <주피터>가 됩니다. <베누스>의 경우도 라틴어식으로는 <베누스>이지만, 그리스식으로는 <아프로디테>, 영어식으로는 <비너스>가 됩니다. 정확하게 하고 싶었고, 또 나름대로 필요를 느꼈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이름을 덧붙여 두었습니다만, 이것이 독자를 조금 헛갈리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영어권 학자들과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고유명사의 발음에서 혼란을 느끼고는 합니다. 영어권에서는, 그리스식 독법(讀法)으로는 거의 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이윤기
제9부 헬라클레스 외
제10부 오르페우스의 노래 외
제11부 미다스의 귀는 당나귀 귀 외
제12부 트로이 전쟁 외
제13부 유민의 시대
제14부 로물루스와 레무스 외
제15부 카에사르의 승천 외
역자 후기 오비디우스의 유쾌한 경망(輕妄)/이윤기
독자 평점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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