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귀와 보는 눈”을 받은 위대한 예언자의 역작! ―존 루카치(역사학자) 20세기 최고 지성 자크 바전의 혜안과 통찰이 빛나는 역사 베스트셀러학자와 일반 독자 모두에게 균형 잡힌 역사 감각을 전하는 지혜의 보고 1500년 이후 서양사를 종교 혁명, 군주 혁명, 자유주의 혁명, 사회주의 혁명으로 구분하고, 인간이 실존적으로 추구하는 열망을 해방, 원시주의, 추상, 분석, 과학만능주의 같은 키워드로 읽어 낸다. 유려한 문체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예술에서 시대마다 다르게 표현되는 인간관을 살피고, 서양 문화를 이끈 주요 원동력을 명쾌하게 풀어낸다. 거장의 번뜩이는 통찰이 드러나지 않은 문장은 하나도 없으며, 이 책에서 발견하지 못할 주제는 없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시대 구분이나 개성 있는 주제 의식보다도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평가하는 자크 바전의 심오한 통찰력이다. 이 책을 평생 쓴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자크 바전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 책은 지성의 거인이 다섯 세기의 서양 문화사를 한 세기 동안 섭렵하면서 최종적으로 간추려낸 거대한 역사의 잠언집이다.” ―옮긴이 이희재★ 자크 바전 말고는 이처럼 매력적인 역사 글쓰기를 상상할 수 없다. 이 책은 마치 이 시대 최고 지성의 생생한 라이브 강의를 듣는 것처럼 순식간에 읽힌다. ―다이앤 래비치(뉴욕대 교수)
자크 바전만의 독창성과 혜안이 번득이는 지식의 보고
바전은 1907년에 태어났으니까 한국 나이로는 정확히 100살이다. 구대륙 유럽에서 태어나고 1,2차 세계대전을 목격하고 신대륙 미국에서 자리를 잡은, 20세기를 온몸으로 체험한 산증인인 것이다. <새벽에서 황혼까지>는 우리 시대 최고 지성의 평생의 역작이며,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시대 구분이나 개성 있는 주제 의식보다도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평가하는 저자의 심오한 통찰력이다. 이 방대한 분량에서 바전이 선별적으로 다룬 사건, 인물, 사상, 예술은 모두 “해방”이나 “원시주의” 같은 명료한 주제 아래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몰랐던 무명인이 알아 두어야 할 중요한 인물로 떠오르고, 또 기왕에 알려졌던 사람도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익숙한 견해는 재평가된다. 특히 현재의 장점과 단점이 과거의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에 대해 요즘 유행하는 통념을 재검토한다.” 바전의 신선한 통찰이 집약된 이 책은 우리 시대 최고의 문화사 저술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듯 유려하게 써 내려간 이 책을 통해 평범한 독자들도 바전만의 특별한 혜안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바전은 1500년 이후 서양사를 네 번의 혁명으로 나눈다. 먼저 종교개혁이라는 통용어 대신 종교 혁명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데서 바전의 독자성이 드러난다. 16세기 초에 시작되어 그 다음 세기 중반에 가서야 마무리되는 “이념을 표방한 권력과 재산의 살벌한 교체”를 혁명이 아니라 개혁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종파들 사이의 끝없는 전쟁은 17세기의 군주 혁명을 자극했다. 종파들은 사방에서 권위에 도전하거나 권위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충성과 새로운 상징을 통해 질서를 회복해야 했다. 새로운 질서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은 군주였다. 한편 국민은 언제까지나 군주의 소유로 남으려 하지 않았다. 정치적 권리와 개인의 자유를 쟁취하려는 열망은 18세기 말의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하여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의회제와 보통선거제 쟁취를 위한 투쟁은 바로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이루어진 자유주의 혁명의 내용이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는 사회적 평등을 저절로 보장하지 않았다. 경제 발전에도 불구하고 날로 심해지는 빈부의 격차 앞에서 이론가들은 근본적 사회 혁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숱한 이론의 모색 끝에 등장한 사회주의 혁명은 그 골간을 이루는 복지국가라는 형태로 20세기 내내 확대일로를 걸었다. 이러한 혁명의 목적과 열정은 아직도 현재 우리의 정신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의식과 제도를 지배하는 그 목표와 정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나간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바전의 주장이다.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들과 사상들을 이처럼 초지일관되게 짜낸 저자의 저력이 놀라울 따름이다.지성사는 탁상공론에 빠지기 쉬운 이론보다는 인간이 실존적으로 추구하는 열망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자크 바전의 역사관이다. 따라서 바전은 서양 문화사 500년을 해방, 개인주의, 원시주의, 추상, 분석, 세속주의, 과학만능주의와 같은 키워드로 인간의 욕망을 읽어 낸다. 가령 루터가 부르짖은 종교개혁에는 해방, 개인주의, 원시주의라는 주제가 녹아들어 있다. 성서에서 권위를 찾자는 것은 바로 복잡하고 억압적인 교회의 위계 구조가 없던 초기 기독교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점에서 원시주의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어떤 제도가 난숙하여 지나친 제약을 가할 때마다 거기서 벗어나 단순한 원시성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주기적으로 나타났다고 바전은 갈파한다. 지나친 이성 일변도의 계몽 정신에 대한 반발에서 낭만주의자들이 고결한 원시인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루터의 개혁은 당연히 권위로부터의 해방이며, 또 사제의 개입 없이 하느님과 일대일로 만난다는 점에서 개인주의라는 주제와도 연결된다.(옮긴이의 말) 이런 식으로 바전은 시대마다 어김없이 나타났던 굵직굵직한 주제의 변주를 드러낸다. 이러한 주제는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나 “원인”은 아니고 사건이나 운동의 밑바탕에 깔린 욕망, 태도, 목적 따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서양 근대 문화를 이끈 일종의 지적 연료인 셈이다. 이 책이 독자를 단박에 사로잡는 매력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듣던 통설을 조리 있게 깨부수며 지혜의 세계로 안내한다는 점이다. 루소가 “고결한 야만인”이라는 표현을 지었다거나 루이 14세가 “짐이 곧 국가다.”라고 했다거나 사실주의가 낭만주의에 대한 반발로 출발한 사조라거나 하는 기존의 통념을 모두 명쾌하게 타파한다. 옮긴이는 저자에 대한 “신뢰감과 경외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자크 바전은 진보 성향의 역사가가 흔히 드러내는 상투적인 문화다원주의라든가 무책임한 상대주의와도 거리가 멀었지만 보수 성향의 역사가가 암묵적으로 보이는 도식적인 진화사관이나 서양 우월의식에 젖은 역사가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는 고정관념에 휘둘리는 역사가가 아니었다. 자크 바전은 게으른 역사가들이 주워들은 풍문으로 세워 놓은 그럴듯한 체계가 사상누각이라는 사실을 꼼꼼한 독해와 사실 확인을 통해 여지없이 까발린다. 진보주의자도 인종주의자도 자크 바전의 날카로운 반박 앞에서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그 앞에서는 감히 사기를 칠 수가 없다. 자크 바전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도 자꾸만 되풀이되어서 그럴듯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사이비 관념과 평생을 싸워왔다고 말한 적이 있을 만큼 엄정한 사람이다.(옮긴이의 말)
★★ 익숙한 견해는 재평가되고, 우리가 아는 통념은 여지없이 깨진다
“저자의 뛰어난 직관이 번득인다. 루터, 에라스무스, 몽테뉴로부터 뒤샹, 제임스 조이스, 앤디 워홀까지 당대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존 러셀(<뉴욕 타임스> 예술비평가) 바전은 학자나 언론이나 모두 루소가 생각한 적도 없는 내용을 마치 루소의 지론이었던 것처럼 떠들어 댄다고 지적한다. 루소는 “고결한 야만인”이라는 표현을 만들어 내지도 않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부르짖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계약론>의 서두에는 지겹도록 많이 인용된 구절, 곧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선정적 문구를 좇기에만 혈안이 된 사람은 그러니까 “사슬을 부수라.”는 소리이겠거니 한다. 하지만 좀처럼 인용되지 않은 루소의 그 다음 문장은 이렇다. “그것(사슬)이 어떻게 합법적인지를 지금부터 차근차근 따져 보겠다.”(<백과사전의 시대> 724쪽) 바전은 루이 14세가 “짐이 곧 국가다.”라고 했다는 것은 오해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루이 14세는 이런 말을 하기에는 너무 똑똑했다. 설령 그가 이런 말을 했다손 치더라도 거기에 담긴 뜻은 인용자가 우기는 뜻과는 다르다.”(<에티켓의 시대>) 또 일부 바흐 숭배자들이 바흐를 “절대음악의 대가”로 부르는 것을 경계한다. 오히려 바흐는 그런 특기를 몰랐고 또 살리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다행이 이 음악의 신을 새로운 각도에서 제대로 조명한 사람이 있다고 소개한다. “그의 이름은 음악가이자 의사이자 철학자이자 문필가이자 박애주의자였던 20세기가 낳은 르네상스인 알베르트 슈바이처다. 슈바이처는 치밀한 탐구를 통해 바흐는 단순히 복잡한 음악 형식에만 통달했던 것이 아니라 소리를 가지고 드라마를 창조한 거장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바흐의 곡들은 대부분 “절대”음악이라기보다는 표현음악이라는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에 대해서는 그 지향점이 “혁명”이 아니라 단지 “반동”이었다고 주장한다. 징세권 문제로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자!”고 항거한 것뿐이었지,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마 독립이라는 상황까지 가리라고는 생각 못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반독립파는 몸이 아프다고(일명 왕당파병) 둘러대면서 빠져나갔고 그 다음에도 아무런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다. 혁명 분위기였다면 이럴 수는 없었다.”(<1790년경 바이마르> 747쪽)
★★ 현자의 눈으로 전하는 지혜의 보고 “자크 바전은 이 책을 쓰기 위해 태어났다. 이 책은 거장만이 쓸 수 있는 대작이다. 지식만이 아니라 지혜와 통찰을 겸비하는 데 한평생을 보낸 거장 말이다. 그가 다른 사람은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이 방대한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살았다는 점에 감사할 따름이다.” ―앤 패디먼(<아메리칸 스칼러> 편집장) 이 책은 500년의 세월을 여행하는 타임머신이다. 결코 쉬운 주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바전은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마치 이야기하듯이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독자를 안내하기 때문에 읽을수록 흥미진진하여 반복해서 음미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오케스트라”의 도발적인 어원에서 백과전서의 시대로, 그리고 백과사전에 일생을 바친 디드로로 옮아가다가 다시 디드로가 애정을 쏟았던 미술 평론으로 눈을 돌려 로코코 시대를 얘기한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주제와 산만한 소재들을 몇 가지 주제 아래 수미일관하게 엮어낸 데에서 거장의 혜안과 통찰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저자의 말마따나 “운” 좋게도 “불면증과 장수도 섬광처럼 지나가는 통찰을 반복시켜 명료히 다듬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숲을 통찰할 줄 안다. 서양 문화가 지난 몇 백 년 동안 어떤 방향으로 어떤 추세로 흘러왔는가를 늘 독자에게 환기시킨다. 나무와 숲을 모두 바라보는 이 비범한 능력은 그의 엄청난 독서량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이 책도 2000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아흔세 살 되던 해에 나왔다. 방대한 독서로 무장된 노학자의 입에서 나오는 발언은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로 살아 있는 현자의 지혜로 한없이 무거운 의미로 다가온다.(옮긴이의 말) 윌리엄 제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전의 책은 우리에게 “세상을 베낀 원고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전망”을 전한다. 바전은 시대를 특징짓는 논쟁과 문화·예술사에서 기존의 역사가들이 간과했던 의미들을 놓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예리한 통찰들을 보인다. 예를 들어 17세기 근대파와 고대파 논쟁을 보자. 바전은 근대파의 승리는 논쟁으로 거둔 게 아니라 문화 일반의 조류에 편승한 결과라고 꼬집으면서, 정치와 세속주의와의 관계까지 연결시킨다.이 결론은 엄청난 파장을 미쳤다. 진보를 인정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과 사회가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과 사회가 완전해질 수 있다면 이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음 세기로 넘어가자 개혁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서양의 정신은 과거 지향에서 미래 지향으로 돌아섰다. 이런 궤도 수정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사회는 묘한 역설에 직면했다. 삶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어 한편으로는 즐겁지만 현재의 상황이 그토록 안 좋다니 자의식과 함께 죄책감이 느껴진 것이다. 과감한 세력과 신중한 세력의 끝없는 전쟁도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름으로 정당을 결성하더니 결국에는 좌파, 우파로 요약되었다. 이들은 다시 미래의 청사진을 놓고 다양한 정파로 갈라졌다. 고대파와 근대파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이 세상을 구제 불능의 악으로 보는 기독교의 세계관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데 이제는 고대파도 근대파도 토를 달지 않는 듯하다. 진보의 가능성을 이렇게 긍정하면 세속주의는 더욱 확산될 것이다.(<어지러운 눈> 659쪽) 바전에게 과거에 대한 호기심은 자기 정체성이라는 거대한 질문의 하나이며, 역사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일부이기도 하다. 따라서 잊힌 역사 가운데 특히 현재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끄집어낸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이 그러한 사례다. 바전은 “배울 만큼 배웠다는 서양인들도 지금껏 그 실상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만 확실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꼬집는다. 대부분의 역사와 전기는 이집트 원정을 어쩌다가 언급을 하더라도 불과 몇 줄이고 그나마도 나폴레옹의 군사적 실패에만 초점을 맞추지 문화적으로 거둔 성공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다. “1798년에 프랑스의 학자, 과학자, 예술가가 이집트로 대거 몰려간 사실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하지 않는다.”(<잊혀진 주역들> 827쪽) 여기서 이루어진 업적은 진화론, 화학, 지질학, 수학, 지리학 등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수에즈 운하의 준비도 이때 시작되었다. “한때는 무시무시하고 장엄한 고도의 문명을 발전시켰던 나라에 그렇게 많은 수의 지식인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활개를 치고 다녔다는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 다양한 주제와 방대한 소재와 예리한 문제의식
“이 방대하고 다양한 모든 사건들과 인물들을 바전이 아니면 그 누구도 이처럼 일관되게 엮어낼 수 없다.” ―에릭 벤틀리(문학평론가) 바전이 지은 책은 서른 권에 이르며, 모두 20세기 미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거나, 중요한 논쟁들을 촉발시켰다. 그의 저서가 다루는 주제는 참으로 다양하면서도 깊이 있다. 그는 문학과 역사는 물론이고 특히 음악사와 미술사에도 조예가 깊으며, 정치와 철학과 과학에도 깊은 이해를 갖추고 있다. 문학을 보자. 바전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군주제 이론과 시대의 요구를 읽어낸다. 이런 정황과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해석이 문학사에 등장했다고 갈파한다. “햄릿 하면 떠오르는 인상이 우유부단하다는 것이다. (…) 콜리지 이후로 모든 비평가가 햄릿의 성격에만 매달렸지 햄릿이 직면했던 정치 상황을 까맣게 잊었다. 햄릿이 그의 측근들보다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은 사실이다. (…) 하지만 민중이 왕으로 추대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장난이 아니다.”(<군주 혁명> 494쪽) 햄릿이 생각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은 애당초 그가 워낙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흔해빠진 허물과 오류가 비극으로 올라서려면 지위가 놓은 사람을 끼고 나타나야” 했는데, 바전은 현대에는 이런 공식이 바뀌었다며 그 이유를 정치에서 찾는다. “민주주의 정신은 세일즈맨의 죽음도 리어 왕의 죽음 못잖게 비극적이라고 주장한다.”(<어지러운 눈> 649쪽)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주의의 언어다. 사람은 누구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치학의 전제가 미학으로 옮겨진다.”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오늘날 “르네상스인”으로 추앙받는 것은 과학만능주의가 낳은 타협의 산물이라고 꼬집는가 하면(<‘예술가’의 탄생>), 철학에서는 “프랑스 교육을 이 지경이 되도록 망쳐놓은 것도, 뉴턴의 지적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도, 독일 철학의 아버지가 된 것도, 애덤 스미스보다 한 발 앞서 자유 시장을 주무르는 ‘보이지 않는 손’을 갈파한 것도 모두 데카르트였다.”(<보이지 않는 대학>)고 소개한다. 바전은 학계의 유행어를 피하고 명확한 언어를 세심히 골라 상당히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는데, 옮긴이 이희재는 저자의 주제 의식과 작품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 어려운 번역 작업을 적확한 문체로 잘 소화해 냈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바전의 문장들을 일별해 보자. 몇 가지만 봐도 방대한 주제에서 시대정신을 읽어내는 저자의 번득이는 혜안과 번역의 훌륭함을 느낄 수 있다. 몽테뉴의 <에세>에 구현된 자의식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중요한 문화적 의미를 갖는다. 몽테뉴는 ‘성격’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은 “파도처럼 변화무쌍하다.”고 말했을 때 몽테뉴는 개인이라는 관념을 좀 더 깊이 있고 풍부한 새로운 관념으로 바꾸었다. (…) 몽테스키외와 볼테르를 비롯한 다수의 계몽철학가도 그에게 많은 신세를 졌지만 누구보다도 많은 덕을 본 사람은 파스칼과 셰익스피어였다.(<유토피아 사상가들> 279~288쪽)시의 정체성을 뒤흔들어 놓은 파격적 작품은 따로 있었다. … 이 작품은 열광적 찬사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 그러나 아득히 먼 옛날 거친 자연의 한복판에서 살아가던 사람을 불러내는 듯한 태고의 목소리는 감성만이 아니라 지성의 빈 구멍까지 채워주었다. 사람들은 그동안 새로운 이름, 새로운 풍경, 새로운 생활 방식에 목말라했던 것이다. 권태가 쌓이다 보니 어느새 혁신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것이다.(<1790년경 바이마르> 767쪽)
●자크 바전 Jacque Barzun“자크 바전은 우리 시대가 낳은 최고의 문화재다.” ―존 실버(보스턴대 총장)
1907년 11월 30일 프랑스 크레타유에서 태어났으며, 미국 지성계에서 중용과 건전한 비판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역사학자다. 바전은 고전문학 교육의 필요성을 외치며 미국 고등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 교육자자이며, 특히 학문의 추상화를 경계하고, 명확한 현실 파악 능력을 갖춘 보기 드문 지식인이다. 1920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1932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58년 학부장, 교무처장을 거쳐 1967년 명예교수가 되었다. 서른 권에 이르는 바전의 저서들은 모두 20세기 미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예술에 관한 저서로 주목을 끄는 작품들은 <베를리오즈와 낭만주의>(1950), <음악의 줄거움>(1951), <예술의 원동력>(1956), <고전·낭만·현대>(1961), <저술, 편집, 출판에 관하여>(1971), <기교의 사용과 남용>(1974), 그리고 수사학을 다룬 <단순하고 명료한>(1975) 등이 있다. <미국의 교사>(1945)와 미국의 교육 체계가 가짜 지성인을 길러낸다고 비판하는 <지성의 집>(1959) 등이 베스트셀러로서 중요한 논쟁들을 촉발시켰다. 한편 <과학, 위대한 유흥>(1964)은 과학적 사고의 과대평가를 경계하는 작품이다. 이 밖에 <인종, 현대의 미신>(1937), <다윈, 마르크스, 바그>(1941), <인간의 자유에 관하여>(1964), <프랑스 시에 관하여>(1991), <윌리엄 제임스와의 산책>(2002) 등 다수가 있다. 옮긴이 이희재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공부했다. SOAS(동양/아프리카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있었고, 현재 옥스퍼드 대학교 동양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옮긴 책으로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브루넬레스키의 돔>, 스티븐 킹의 <그린 마일>, <리오리엔트>, <중국의 시대>, <몰입의 즐거움> 등 다수가 있다.
3부 머리와 가슴의 작업단면도|1830년경 파리의회의 어머니인간 위에 올라탄 사물단면도|1895년경 시카고에너지의 극점입체파 시대
4부 거대한 환상예술가, 예언자 혹은 광대부조리의 수용대중의 시대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