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원제 斜陽

다자이 오사무 | 옮김 유숙자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8년 9월 28일 | ISBN 978-89-374-6359-4

패키지 소프트커버 · 변형판 132x225 · 188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나는 확신하련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인간 실격』의 다자이 오사무 생전에 가장 큰 사랑을 받은 대표작

▶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 중에서 여성을 가장 탁월하게 그려 낸 역작.
-가와바타 야스나리(작가, 노벨 문학상 수상)

▶ 다자이의 생생한 묘사, 천재적 필력은 독자들의 영혼을 바로 매료시킨다. 도저히 벗어날 방법이 없다.
-오쿠노 다케오(문학 평론가)


자기 파멸의 상징,
다자이 오사무 문학의 전모가 가장 잘 드러난 역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9번으로 다자이 오사무 생전에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작품 『사양』이 출간되었다. 패전 후,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다자이 오사무는 1947년에 『사양』을 출간했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당대에 몰락하는 귀족을 지칭하는 ‘사양족’이라는 유행어를 낳을 정도로 일본 사회에 일대 파문을 일으킨 작품이다.

『사양』은 다자이 문학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어둡고 파멸적인 세계관과 달리 풍성하고 깊어진 그의 중후기 세계관을 보여 주는 독보적인 소설이다. 독백, 고백의 편지, 일기, 꿈, 추억 등 다양한 서술 방식으로 개성 있는 네 인물들 각자의 고뇌와 현실과 선택을 그린다. 특히 자립적인 삶을 선택하는 강인한 여성 주인공의 독백이 다자이의 새로운 면모와 더불어 페미니즘적인 위상을 드러내어 일본 문학사에도 의미가 깊다.

편집자 리뷰


귀족으로 남을 것인가,
어떻게든 평민으로 살아갈 것인가.
네 인물들의 각기 다른 선택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

패전 후 빠르게 몰락해 가는 귀족 집안의 장녀 가즈코는 몸이 쇠약해진 어머니를 모시고 도쿄를 떠나 이즈의 산장으로 거처를 옮긴다. 귀족의 기품을 갖춘 아름다운 어머니지만 경제력에는 무방비 상태로, 삼촌의 도움을 받는 처지라 달리 방도가 없다. 마침 소식이 끊겼던 남동생 나오지도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지만 급변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설가 우에하라와 함께 어울리며 술과 마약에 빠져 넉넉하지 못한 집안의 돈을 탕진할 뿐이다. 불행한 일들은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무심코 태운 뱀알, 화재, 어머니의 병세 악화, 나오지의 유서, 우에하라를 향한 가즈코의 사랑…….

마지막 귀부인 어머니의 죽음으로 가즈코와 나오지는 드디어 선택의 기로 앞에 선다. 귀족으로 남을 것인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떻게든 평민으로 적응해 살 것인가. 혼란스러운 패전과 시대의 격변 속에 어머니, 장녀 가즈코, 남동생 나오지, 소설가 우에하라, 네 인물의 각기 다른 운명적 선택이 묘하게 얽히며 당시의 사회 ․ 문화적 배경과 긴밀하게 연결된 긴장감을 돋운다. 가즈코의 결연한 편지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몰락과 희망에 대해 대조적 감동을 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저의 도덕 혁명의 완성입니다”
시적인 아름다움의 결정체, 『사양』을 읽지 않고 다자이 오사무를 말할 수 없다

다자이는 신초샤를 방문해 출판 관계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걸작을 쓰겠습니다. 대 걸작을 쓰겠습니다. 소설의 구상도 거의 마쳤습니다. 일본판 『벚꽃 동산』을 쓸 생각입니다. 몰락 계급의 비극입니다. 이미 제목을 정했습니다. 『사양』. 기우는 해. 『사양』입니다.”
-「작품 해설」 중에서

『사양』은 다자이 오사무의 서른 아홉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 1년 전에 쓴 작품이다. 『인간 실격』에서 보여 주었던 자기 파멸과는 다른, 인간 영혼에 대한 다채로운 시선을 엿볼 수 있다. 귀족 출신이라는 우월감과 자괴감을 동시에 품고 있는 나오지와 사랑 없는 결혼의 실패 후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성으로 탈바꿈하는 가즈코의 모습은 더욱 풍부하고 깊어진 그의 세계관을 담아낸다.

혁명도 사랑도 실은 이 세상에서 제일 좋고 달콤한 일이며, 너무 좋은 것이다 보니 심술궂은 어른들이 우리에게 포도가 시다며 거짓을 가르친 게 틀림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나는 확신하련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109쪽)

특히 여성 독백체로 이어지는 『사양』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로부터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 중에 여성을 가장 탁월하게 그려 낸 역작”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또한 시적이고 탐미적인 문장으로 산문보다는 거의 시에 가깝다는 평도 있다. 『사양』은 패전 후의 혼란을 넘어서서 현대인의 고독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향해 돌진하는 용기를 그려 내며 무뢰파, 데카당스의 한계를 넘어서는 저력을 과시한다.

목차

사양 7

작품 해설 165
작가 연보 173

작가 소개

다자이 오사무

1909년 아오모리 현 쓰가루에서 부유한 집안의 십일 남매 중 열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 자신의 집안이 고리대금업으로 부자가 된 신흥 졸부라는 사실에 평생 동안 부끄러움을 느꼈던 다자이는 도쿄 제국 대학 불문과에 입학한 후 한동안 좌익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1930년 연인 다나베 아쓰미와 투신 자살을 기도했으나 홀로 살아남아, 자살 방조죄 혐의를 받고 기소 유예 처분되었다. 1935년 맹장 수술을 받은 후 복막염에 걸린 다자이는 진통제로 사용하던 파비날에 중독된다. 같은 해에 소설 「역행」을 아쿠타가와 상에 응모하였으나 차석에 그친다. 그는 이 심사 결과에 불만을 품고 당시 심사 위원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항의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한다. 이듬해 파비날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는데, 자신의 예상과 달리 정신 병원에 수용되어 크나큰 심적 충격을 받는다.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후, 그의 작품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되고, 다자이는 사카구치 안고,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데카당스 문학’, ‘무뢰파 문학’의 대표 작가로 불리게 된다. 『인간 실격』은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으로, ‘퇴폐의 미’ 내지 ‘파멸의 미’를 기조로 하는 다자이 문학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1948년 연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다마 강 수원지에 투신해, 생애 다섯 번째 자살 기도에서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유숙자 옮김

번역가. 지은 책으로 『재일한국인 문학연구』(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재일한인문학』(공저), 옮긴 책으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손바닥 소설』, 『명인』,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옛이야기』, 『디 에센셜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대산문화재단 번역 지원), 『유리문 안에서』,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 오에 겐자부로의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쓰시마 유코의 『「나」』, 김시종 시선집 『경계의 시』, 데이비드 조페티의 『처음 온 손님』, 사토 하루오의 『전원의 우울』, 가와무라 미나토의 『전후문학을 묻는다』 등이 있다.

독자 리뷰(17)

독자 평점

4.2

북클럽회원 30명의 평가

한줄평

명문이지만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보기엔 힘들다.

밑줄 친 문장

6년 전 어느 날 제 가슴에 아스라이 무지개가 걸렸고

그건 연애도 사랑도 아니었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 무지개 빛깔은 점점 또렷해져

저는 지금껏 한 번도 그걸 놓친 적이 없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간 맑은 하늘에 걸리는 무지개는

이윽고 덧없이 사라져 버리지만,

사람의 가슴에 걸린 무지개는 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ㅋㄴㅇ
'"작위가 있다고 해서 귀족이라 할 수는 없어. 작위가 없어도 천작이라는 걸 가진 훌륭한 귀족도 있고, 우리처럼 작위는 가졌어도 귀족은커녕 천민에 가까운 치도 있지. (자신의 친구인 백작의 이름을 대며) 이와시마 같은 녀석들은 도무지 신주쿠의 유곽 호객꾼들보다 훨씬 천박해 보인다니까. (역시 동생의 친구인 자작의 차남 이름을 대며) 요전에도 야나이의 형 결혼식에 그 녀석이 턱시도를 입고 왔는데, 대체 뭐 때문에 턱시도를 입고 오냐고. 뭐 그건 그렇다 치고, 탁상연설을 할 때 그 녀석이 '어쩌고저쩌고이옵니다.' 해 가며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데는 역겹더군. 거드름 피우는 건 품위가 있다는 것과 전혀 무관한 얄팍한 허세야. '고급 하숙'이라고 써 놓은 간판이 혼고 부근에 더러 있었는데, 사실 화족 따위 대부분은 '고급 거지 나리'라고 부를 만한 치들이지. 진짜 귀족은 이와시마처럼 서툰 거드름을 피우지 않아. 우리 친족 중에서도 진정한 귀족은 아마 어머니 정도겠지. 어머닌 진짜야. 아무도 못 당해."'

'동생 나오지조차 어머닌 못 당해, 하고 말하지만 나 또한 도저히 어머니 흉내는 엄두도 못 낼 일이고 심지어 절망에 가까운 기분을 맛보기도 한다.'

'"괜찮아요. 나오지는 괜찮아요. 나오지 같은 악당은 웬만해선 안 죽어요. 죽는 사람은 으레 얌전하고 예쁘고 착한 사람이죠. 나오지는 몽둥이로 패도 안 죽어요." 어머니는 웃으며, "그럼 가즈코는 일찍 죽으려나?" 하고 나를 놀린다. "어머, 어째서요? 난 악당보다 한 수 위니까 여든까지는 거뜬해요." "그래? 그럼 엄마는 아흔까지는 거뜬하겠어." "네." 하다 말고 조금 난처해졌다. 악당은 오래 산다. 아름다운 사람은 일찍 죽는다. 어머니는 고우시다. 하지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저녁 해가 어머니의 얼굴을 비추어 어머니의 눈이 푸르스름하니 반짝였다. 얼핏 노여움을 띤 그 얼굴은, 대뜸 달려가 안기고 싶을 만치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는 아아, 어머니의 얼굴은 아까 본 그 슬픈 뱀과 어딘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또한 내 가슴속에 살무사처럼 흉측한 뱀이 굼실굼실 자리 잡고 있어, 깊은 슬픔으로 더없이 아름다운 어미 뱀을 언젠가 물어 죽이고 마는 게 아닐까, 어쩐지 자꾸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의 부드럽고 가냘픈 어깨에 손을 얹고 까닭 모를 몸부림을 쳤다.'

'그러고는 얼굴을 들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다소 핼쑥한 얼굴이 아름다웠다. "그래요." 나도 와다 삼촌에 대한 어머니의 아름다운 신뢰에 지고 말아 맞장구를 쳤다. "그렇담, 가즈코도 눈 딱 감을래요." 둘이서 소리 내어 웃었지만, 웃고 나니 한없이 쓸쓸해졌다.'

'아아, 돈이 없다는 건 얼마나 두렵고 비참하고 희망 없는 지옥인가, 하고 난생처음 깨달은 양 가슴이 미어지고 너무나 괴로워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다. 인생의 엄숙함이란 이런 느낌을 말하는 걸까.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심정으로 똑바로 누운 채 나는 돌덩이처럼 가만히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자그만 손을 꼭 잡고 흐느껴 울었다. 어머니가 너무도 가여워서, 아니 우리 두 사람이 너무도 가여워서 도무지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울면서 정말 이대로 어머니와 함께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 우리 인생은 니시카타초의 집을 나설 때,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매화꽃은 한숨이 터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랑'이라 썼다가, 그 다음은 쓰지 못했다.'

'어머니의 슬픔을 한층 깊어지게, 목숨을 옅어지게 만들었다.'

'이제는 황족이건 화족이건 다 없어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기왕 스러질 바에는 한껏 화려하게 스러지고 싶다.'

'스스로도 심한 말을 내뱉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 마치 살아 꿈틀거리듯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

'마음껏 속 시원히 울고 싶어져 2층 방으로 뛰어 올라가 침대에 몸을 던지고 담요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기운이 쑥 빠지도록 실컷 우는 사이,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차츰 어떤 이가 사무치게 그리워 얼굴이 보고 싶고 목소리를 듣고 싶어 견디기 힘들었다. 마치 양쪽 발바닥에 뜨거운 뜸을 뜨며 꾹 참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생각하면 그 무렵이 우리 행복의 마지막 남은 불빛이 반짝이던 때였고, 그 후 나오지가 남방에서 돌아오면서 우리의 진짜 지옥이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이젠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초조감. 이런게 바로 불안이라는 감정일까? 가슴에 고통스러운 파도가 몰아쳐 마치 소나기가 그친 하늘에 허둥지둥 흰 구름이 잇달아 질주해 나가듯 내 심장을 옥죄었다 풀었다 하고, 맥박과 호흡이 흔들리면서 눈앞이 가물가물 어두워졌다. 온몸의 힘이 손가락 끝에서 쑤욱 빠져나가는 느낌에, 더 이상 뜨개질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울고 싶어졌다.'

'나는 전등을 껐다. 여름 달빛이 홍수처럼 모기장 안에 흘러 넘쳤다.'

'남한테 존경받으려 애쓰지 않는 사람들과 놀고 싶다. 하지만 그런 좋은 사람들은 나와 놀아 주지 않는다.'

'"난 애인이 있어요." 어느 날 나는 남편의 잔소리를 듣고 쓸쓸해져, 불쑥 이렇게 말했다. "알아. 호소다 아냐? 도저히 단념이 안 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뭔가 껄끄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 부부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젠 틀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드레스 옷감을 잘못 재단했을 때처럼 더 이상 그 옷감은 꿰매어 붙일 수도 없어, 전부 내버리고 다시 새 옷감으로 마름질 해야 한다.'

'박꽃. 아아, 동생도 괴로운 거다. 더구나 길이 막혀 무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직 전혀 모르는 거다. 그저 매일 죽을 작정으로 술을 마시는 거다. 차라리 큰맘 먹고 본격적으로 불량해지는 건 어떨까. 그러면 동생도 오히려 마음 편하지 않을까. '불량하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라고 그 공책에 쓰여 있었는데, 그러고 보면 나도 불량, 삼촌도 불량, 어머니조차 불량하게 여겨진다. 불량하다는 건 상냥하다는 뜻이 아닐까.'

'6년 전 어느 날 제 가슴에 아스라이 무지개가 걸렸고 그건 연애도 사랑도 아니었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 무지개 빛깔은 점점 또렷해져 저는 지금껏 한 번도 그걸 놓친 적이 없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간 맑은 하늘에 걸리는 무지개는 이윽고 덧없이 사라져 버리지만, 사람의 가슴에 걸린 무지개는 사라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당신은 사랑을 하면 안 됩니다. 당신은 사랑을 하면 불행해집니다. 사랑을 하려거든 더 어른이 된 뒤에 하세요. 서른이 되거든 하세요."'

'당신이 그리워져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허전하고 외로워 혼자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기다림. 아아, 인간의 생활에는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미워하는 여러 가지 감정이 있지만, 그래도 그런건 인간 생활에서 겨우 1퍼센트를 차지할 뿐인 감정이고 나머지 99퍼센트는 그저 기다리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행복의 발소리가 복도에 들리기를 이제나저제나 가슴 저미는 그리움으로 기다리다, 텅 빈 공허감. 아아, 인간의 생활이란 얼마나 비참한지!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았겠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이 현실. 그리고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헛되이 뭔가를 기다려요. 너무 비참해요. 태어나길 잘했다고, 아아, 목숨을, 인간을, 세상을 기꺼워해보고 싶습니다.'

'아무튼 나오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주변 분위기에 나의 내음이 털끝만큼도 스며들지 않은 것 같아, 나는 부끄럽다기보다도 이 세상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세상과는 전혀 딴판으로 마치 기묘한 생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채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응답이 없고, 가을날 해 질 녘의 광야에 서 있는 듯, 여태껏 겪은 적 없는 처참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런 것이 실연의 감정일까. 이렇게 꼼짝 않고 광야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이, 해는 뉘엿 저물어 밤이슬에 얼어 죽는 수밖에 없겠다 생각하니, 눈물 없는 통곡에 양쪽 어깨와 가슴이 격렬하게 출렁거려 숨조차 쉴 수가 없다.'

'나는 발밑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일이 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절망의 벽, 그 존재를 난생처음 알게 된 것 같았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초록빛 쓸쓸함이 꿈 그대로 주변을 온통 감돌았다.'

'단박에 나는 풀이 죽어 납작해졌다.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 어둑한 방 안을 멍하니 둘러보다가, 문득 죽고 싶어졌다.'

'뱀을 보고 나서 나는 슬픔의 바닥을 뚫고 나온 마음의 평안이라고 할까, 그런 행복감 비슷한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 이제부터는 가능한 한 오로지 어머니 곁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울고 싶어도, 이젠 눈물이 안 나." 나는 어머니가 지금 행복한 게 아닐까, 하고 문득 생각했다. 행복감이란 비애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반짝이는 사금 같은 것이 아닐까? 슬픔의 극한을 지나 아스라이 신기한 불빛을 보는 기분.'

'"세상이란, 알 수 없는거야." 어머니는 얼굴을 딴 데로 돌리고, 혼잣말처럼 낮게 말했다. "난 모르겠어. 아는 사람이 있으려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모두 어린애야.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안절부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미쳐 버린게 아닐까? 문득 생각했다.'

'두 개의 컵이 힘없이 부딪쳐 쨍 하는 슬픈 소리가 났다.'

'뜨거운 우동에서 올라오는 김에 얼굴을 묻고 후루룩 우동을 먹으며, 나는 지금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쓸쓸함의 극한을 맛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아, 이 사람들은 뭔가 잘못된 거야. 하지만 이 사람들도 내 사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떡해서든 끝까지 살아야만 한다면, 이 사람들이 끝까지 살기 위한 이런 모습도 미워할 수 없는게 아닌가. 살아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아아, 이 얼마나 버겁고 아슬아슬 숨이 넘어가는 대사업인가!'

'나는 잠자코 있었다. 이 사람은 분명 내 편지를 읽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 나는 그 사람이 말하는 분위기에서 재빨리 알아챘다.'

'"단둘이 있고 싶었던 거죠? 그렇죠?" 내가 그렇게 말하고 웃자 우에하라 씨는, "이래서 밉다니까."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나 자신이 무척 귀염받고 있다는 걸 사무치게 의식했다. "엄청 술을 드시더군요. 매일 밤 그런가요?" "그래, 매일. 아침부터."  "맛있어요? 술이?" "맛없어." 그렇게 말하는 우에하라 씨의 목소리에, 나는 어쩐지 오싹했다. "일은?" "잘 안 돼. 무얼 써 봐도 시시하고, 그냥 괜히 슬퍼 죽겠어. 목숨의 황혼. 예술의 황혼. 인류의 황혼. 이거 거슬리는데."'

'"죽을 작정으로 마시고 있어. 살아 있다는 게 슬퍼서 견딜 수 없어. 외롭다느니 쓸쓸하다느니 그런 한가로운 게 아니고, 슬퍼. 음침한 탄식의 한숨이 사방 벽에서 들려올 때, 자신들만의 행복 따위 있을 리가 없잖아? 자신의 행복도 영광도 살아있는 동안엔 결코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노력. 그런 건 그저 굶주린 야수의 먹잇감이 될 뿐이지. 비참한 사람이 너무 많아. 거슬리나?" "아뇨." "사랑뿐이야. 자네가 편지에 쓴 그대로지." "그래요." 나의 그 사랑은, 사라지고 없었다.'

'난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걸 도무지 알 수 없어요.'

'나는 놀면서도 전혀 즐겁지 않았습니다. 쾌락의 불감증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다만 귀족이라는 자신의 그림자를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며 놀았고 황폐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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