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가와바타 야스나리 | 옮김 유숙자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3년 7월 17일 | ISBN 978-89-374-6418-8

패키지 변형판 132x225 · 180쪽 | 가격 12,000원

수상/추천: 노벨문학상

책소개

전설적인 ‘불패의 명인’ 슈사이의 생애 마지막 대국

바둑이 지닌 구도적인 면모와 예술적 품격을 서정시처럼 그려 낸 걸작

 

“고매한 정신의 모습이 허공에 떠 있는 듯 보였다. (……)

그윽한 향 같은 모습이다.”

 

▶ 『명인』은 소설이라기엔 기록 요소가 많고, 기록이라기엔 소설 요소가 많다. 기사의 심리에 대해서는 모두 나의 추측이다. 이를 당사자에게 물어본 것은 하나도 없다. 날씨 묘사 하나를 들더라도, 역시 나의 소설이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 명인에게 바둑은 단순히 흰 돌과 검은 돌이 겨루는 경기를 넘어, 숭고한 미적 가치를 지닌 기예이자 정교하게 구축된 예술품이다. ─ 유숙자(「작품 해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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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바둑계의 전설 혼인보(本因坊) 슈사이 명인의 마지막 승부를 소재로 한 『명인』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바둑 애호가였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38년 6월부터 12월까지 약 반년 동안 치러진 슈사이 명인의 은퇴기를 참관하고 신문에 총 64회의 관전기를 연재했다. 일본 바둑계에서 ‘명인’은 당대 최고의 기사를 의미한다. 『명인』은 지병이 악화된 슈사이 명인이 1940년 세상을 떠난 뒤 가와바타가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잡지에 나누어 게재한 작품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데 탁월한 작가다. 눈 덮인 니가타 지방의 아름다운 정경을 배경으로 하는 대표작 『설국』이 동양적 미의 정수를 보여 주었다고 평가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작가는 『명인』에서 병환에도 불구하고 은퇴기에 나선 예순다섯 살의 ‘불패의 명인’과 서른 살의 패기만만한 신예 기사의 대국을 통해 단순히 시합이나 게임이라는 관념을 넘어 ‘예도’로서 바둑의 경지를 보여 준다.

 

편집자 리뷰

■ 바둑 외길에 인생을 건 예인, 슈사이의 마지막 승부

 

혼인보(本因坊)는 이노우에(井上), 야스이(安井), 하야시(林)와 함께 일본 에도 시대의 바둑 명문가 중 하나로, ‘혼인보’는 혼인보 가문의 대표자를 일컫는 명칭이었다. 21대 혼인보 슈사이 명인은 삼십여 년간, 흑을 쥔 적이 없는 ‘불패의 명인’으로 동시대의 경쟁자를 완전히 압도한, 이인자가 없는 일인자다. 그동안 일본 바둑계에서는 한번 명인의 지위에 오르면 죽을 때까지 명인이라는 일대제(一代制)가 상식이었기에 명인이 되면 그 권위가 손상될까 우려해 시합에 나서지 않았다. 그런 슈사이가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승부에 나선다는 소식에 약 일 년에 걸쳐 ‘명인 은퇴기 도전자 결정전’이 치러진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슈사이 명인은 신시대와 구시대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인 듯하다. 구시대의 명인으로서 정신적 숭배를 받는 동시에, 신시대의 명인으로서 물질적 이로움도 얻었다. 그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마음과 파괴하는 마음이 교차하는 날에, 오래된 우상의 흔적으로 일어서, 명인은 최후의 바둑에 임한 것이었다. ―본문에서

 

실제 슈사이 명인의 대국 상대였던 ‘기타리 미노루’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오타케’ 7단은 리그전에서 라이벌들에게 전승을 거두고, 자신의 옛 스승들마저 모두 쓰러뜨리는 파죽지세로 명인의 은퇴기 상대가 된다. 아내와 둘뿐인 명인과 달리 오타케는 내제자와 자녀들로 복닥복닥한 가정을 이루고 살며 대국 중에는 말이 없는 명인 앞에서 농담을 늘어놓기도 한다.

 

대국은 닷새에 한 번 진행된다. 제한 시간은 각 40시간. 마지막 수는 봉수로, 종이에 적어 봉인해 두었다가 다음 대국일에 공개한다. 몇 차례 대국 장소가 바뀌고, 도중에 명인이 병환으로 입원하면서 석 달간 대국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진다. 명인의 건강 문제로 인한 대국 일정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오타케 7단은 급기야 대국 포기 선언을 하고, 관전 기자인 ‘나’는 설득에 나선다. 순조롭게 이어지던 대국의 흐름에 미묘한 변화가 일면서, 명인의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불패의 명인’의 거대한 모습은 기사들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명인에게도 일생의 운명을 건 싸움은 여러 번 있었으나, 정말로 중요한 바둑 시합에서 진 적은 없었다. 명인이 되기까지의 싸움은 기세였다고 해도, 명인이 된 후 특히 만년의 싸움에 이르기까지, 세상 사람들이 불패를 당연한 걸로 믿고 자신도 굳게 믿으며 대국에 임해야만 했다는 점은 오히려 비극이다. ―본문에서

 

■ 가와바타 야스나리, 역사적인 대국의 관전기를 연재하다

 

혼인보 슈사이 명인의 은퇴기는 1938년 6월 26일부터 12월 4일까지 치러졌다. 명인은 은퇴기를 치른 뒤, 지병이 악화되어 1940년 1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대국의 관전기를 담당해, 대국보다 한 달 남짓 늦은 7월 23일부터 9월 6일, 11월 30일부터 12월 29일에 걸쳐 도쿄 《니치니치신문》과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에 총 64회를 연재했다. 바둑은 작가가 평소 즐기던 취미로, 아마추어 이상의 기량을 보유했으며 명인의 은퇴 바둑 관전기를 계기로, 일본기원은 작가에게 초단 자격을 수여했다. 지난해(2022년) 11월에는 『명인』 집필의 공적을 높이 평가해 바둑 전당 입성을 발표하기도 했다. 가와바타는 문인 바둑 모임에 참가하는 등 실력을 꾸준히 갈고닦아, 만년에는 5단, 사후에는 6단 자격을 얻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으로 치닫던 당시, 일간 신문은 대대적으로 슈사이 명인의 은퇴기를 알리는 기사를 실어 홍보했다. 명인의 은퇴 바둑 관전기는 바둑 애호가는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크게 성공했다. 문단의 중심에서 활약하는 가와바타의 존재감이 한몫했으리라 추측된다. 이후 작가가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잡지에 나누어 게재한 작품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명인』에 대해 작가는, 이 작품이 단순히 전기 소설이 아니라, 자신의 창작물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명인』은 충실한 기록소설이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이라기엔 기록 요소가 많고, 기록이라기엔 소설 요소가 많다. 기사의 심리에 대해서는 모두 나의 추측이다. 이를 당사자에게 물어본 것은 하나도 없다. 날씨 묘사 하나를 들더라도, 역시 나의 소설이다.”

 

■ 본문 중에서

 

시바 고요관의 대국 개시식(開始式)에서는 흑이 한 수를 두고 백이 한 수를 두었을 뿐, 다음 날도 겨우 12수까지만 나아갔다. 그리고 대국 장소를 하코네로 옮기게 되어 명인과 오타케 7단 그리고 관계자들이 다 함께 도가시마의 다이세이관〔對星館〕에 도착한 날은, 바둑도 아직 지금부터 시작인 데다 대국자들 사이에 묘한 신경전도 없어, 명인도 채 한 병을 못 비운 저녁 반주에 마음이 푸근해져 몸짓 손짓 더해 가며 만담을 펼칠 정도였다. (15쪽)

 

명인의 하얀 부채가 얼음물을 얹은 검은색 칠(漆) 쟁반에 비치어 움직이는 고즈넉함. 관전은 나 혼자다(37쪽)

 

7단이 자리에 앉기 바쁘게 다시 일어서는 것도 싸움을 위한 몸풀기 같은 것으로, 명인의 숨결이 거칠어진 것과 마찬가지이리라. 하지만 나는 명인의 좁고 동그스름한 어깨가 물결치는 데에 감동받았다. 괴로워하지 않고 험상궂지도 않으며 명인 자신조차 알지 못하고 타인은 절대 알아챌 리 없는, 영감이 찾아오는 비밀을, 나는 훔쳐본 듯 느꼈다.(41쪽)

 

명인은 바둑판 앞에 앉으면 ‘옛사람’이었다. 요즘 세상의 자잘한 술책은 알지 못했다. 대개 적당한 시기를 가늠하여 자신의 형편이 괜찮다 싶은 때에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는, 하수에게 두게 했다. 그러고는 대국을 중단시키고, 다음 대국을 재개하는 날짜도 자신이 결정하는 식으로 상수가 누리는 엄청난 독단을 당연한 관례로 삼아, 명인은 지금껏 오래도록 대국해 왔다. 시간의 제한도 없었다. 그리고 명인에게 허용된 엄청난 독단도 명인을 단련시켰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자잘한 규칙투성이에 비할 바가 못 되리라.(51쪽)

 

대형 신문사의 힘에 흔들리고 대국료에 유혹당했을 뿐만 아니라 명인은 예도를 위해 자신이 나서야 할 의의를 중하게 생각했을 테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불타오른 것은 바둑을 둘 수 있다는 투지였음에 틀림없다. 질 거라는 의심이 일었다면, 아마도 나설 명인이 아니었다.(53~54쪽)

 

보통 사람이 열중하는 방식과 달리, 명인은 아득한 저 멀리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97쪽)

 

나는 바둑을 보고 있었다기보다는, 바둑을 두는 사람을 보고 있었다. 또한 대국하는 기사가 주인이고, 관계자나 관전 기자는 종복이다.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바둑을 무한히 존중하고 써 나가려면, 기사에게 경애심을 갖는 수밖에 없었다. 승부에 대한 흥미뿐만 아니라 한 가지 예도에 대한 감동이 내게 있었던 것은, 자신을 비우고 명인을 바라본 덕분이었다. (101쪽)

 

마침내 끝내기에 들어선 기사의 긴장감은, 포석이나 중반 때와는 또 다르다. 팽팽하게 곤두선 신경이 번뜩이고, 몸을 앞으로 쑥 내민 자세에도 절박함이 묻어난다. 예리한 칼부림이 서로 오가듯, 호흡이 거칠게 가빠진다. 지혜의 불꽃이 터지는 걸 보는 듯하다.(150쪽)

 

 

목차

명인 7

 

혼인보 슈사이 명인 은퇴기 기보 159

작품 해설 162

작가 연보 172

 

작가 소개

가와바타 야스나리

1899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를 잃고 15세 때 10년간 함께 살던 조부마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로 인해 생겨난 허무와 고독, 죽음에 대한 집착은 평생 그의 작품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1920년 도쿄 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했는데 곧 국문학과로 전과, 1924년 졸업하였다. 이후 《문예시대》를 창간, 요코미쓰 리이치 등과 감각적이고 주관적으로 재창조된 새로운 현실 묘사를 시도하는 <신감각파> 운동을 일으켰다. 1924년 서정적인 필체가 빛나는 첫 소설 「이즈의 무희」를 발표한 이래, 『서정가』 등 여러 뛰어난 작품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지휘를 확고히 하였으며, 1937년 『설국』 을 출간하여 독보적인 일본 작가로 국내외에서 자리매김되었다. 이 작품은 발표 후 12년 동안 여러 번의 수정 작업을 거쳐 1948년 마침내 완결판 『설국』 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천우학』 과 『산소리』 , 『잠자는 미녀』 , 『고도』 등의 대표작에서 줄곧 서정적인 미의 세계를 추구하여 독자적인 서정문학의 장을 열었다. 1968년 그간의 작품 활동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 외에도 괴테 메달,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일본 문화훈장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 1972년 3월,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은 후 퇴원 한 달 만에 자택에서 가스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다른 책들

유숙자 옮김

번역가. 지은 책으로 『재일한국인 문학연구』(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재일한인문학』(공저), 옮긴 책으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손바닥 소설』, 『명인』,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옛이야기』, 『디 에센셜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대산문화재단 번역 지원), 『유리문 안에서』,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 오에 겐자부로의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쓰시마 유코의 『「나」』, 김시종 시선집 『경계의 시』, 데이비드 조페티의 『처음 온 손님』, 사토 하루오의 『전원의 우울』, 가와무라 미나토의 『전후문학을 묻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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