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야서
원제 日夜書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6년 11월 30일 | ISBN 978-89-374-6346-4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620쪽 | 가격 15,000원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346 | 분야 세계문학전집 346, 외국 문학
중국 문화 혁명기, 지식 청년의 삶을 그린 ‘지청 문학’의 대표 작가 한사오궁
혁명의 증인이 된 한 세대를 추적한, 격동하는 중국 근현대사의 생생한 보고서
▶ 이 소설은 한 편의 기인록 같기도 하고 영웅전 같기도 하다. 역사와 현실에 대해 대단히 뛰어난 개괄력을 보여 준다. ―거페이
『일야서』는 중국에서 1950년대 출생한 세대들이 문화 혁명이라는 역사의 격변기를 지나 청년에서 중년으로 한 세대를 살아 낸 인생의 회고록이다. 마오쩌둥의 상산하향 운동에 참여해 농촌으로 내려온 젊은이들 앞에는 ‘지식 청년’이라고 붙여진 이름과 달리 학교에서 멀어져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식색(食色)에 대한 욕망에 잠 못 드는 힘겨운 나날이 펼쳐진다. 어느새 농촌으로 내려올 때 품었던 거대한 공산주의의 이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생존을 위한 고투와 도시에 대한 그리움뿐이다. 왕년을 추억하는 기성세대의 자부심과 시대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영원한 청년이 된 이들의 자기 고백은 중국 근현대사의 가장 생생한 모자이크를 완성한다.
세계 문학사에서 매우 특별하게도 한 세대의 정신사를 탐구한 지청 문학의 선구자이자 ‘문화의 뿌리를 찾는다.’라는 의미의 심근 문학을 주창하여 20세기 후반 중국 문단을 뒤흔든 작가 한사오궁. 역사의 질곡과 시대의 전환을 몸소 겪어 낸 근현대사의 산증인이자 위화, 모옌과 함께 현대 문학 최고의 거장으로 꼽히는 그의 최근작 『일야서』는 중국 지청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일야’는 말 그대로 낮과 밤을 상징한다. 밝음과 어둠, 이상과 현실, 혁명과 세속의 시대가 교차하는 『일야서』 속 기억들은 격변기를 살아 온 동시대의 독자들을 뜨겁게 위로함과 동시에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역사의 근본적인 질문을 무겁게 던지고 있다.
■ 혁명의 낮(日)과 밤(夜) -역사의 이름으로 미화되기를 거부하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
우리 사회에서 ‘베이비 붐 세대’라고 하면 단순히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 출생한 사람들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표현은 휴전 이후 갑작스런 사회적 안정 속에서 생존에 대한 불안을 안고 태어나, 1970~80년대 경제 성장기를 이끌었으며 한편으론 그 혜택을 누렸던 한 세대를 상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을 바라보는 후대의 시선에는 존경과 원망이 뒤섞여 있다.
비슷한 시기, 1950년대 중국에서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말인 ‘우링허우(五零後)’는 더욱 뚜렷한 명과 암을 간직하고 있다. 문화 혁명기 마오쩌둥이 주도했던 상산하향운동은, 도시의 학생들이 농촌으로 들어가 인민 대중을 위한 문화 건설에 힘쓰는 것을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당시 이 운동에 참여해 농촌으로 떠났던 ‘우링허우’는, 공산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청춘을 바친 중국 근현대사의 영웅들이자, 세속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혁명의 추억만 곱씹는 중년의 얼굴이기도 하다.
그들은 일부 지식 엘리트들에 의해 어제는 반드시 퇴출시켜야 할 사람이었으며(들리는 말에 따르면, 효율을 위해서), 또한 똑같은 한 무리의 엘리트들에 의해 시끄럽게 길거리에 내몰리는 사람이기도 하였고(들리는 말에 따르면, 공평을 위하여), 유행하는 이론에 따라 수시로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가 다시 총애를 받는 그런 그림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아직 채 성년이 되지 못한 나이에 농촌으로 내려간 그들은 ‘지식 청년’이라고 불렸다. 문화 혁명으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게 되자 실제로는 교육에서 배제된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잘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공산주의의 포부에 모든 것을 걸었던 그들의 젊음은 무모한 만큼 숭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맞닥뜨린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너무 컸다. 도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더러운 변소에 충격을 받아 식음을 전폐한 이도 있었고,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도시를 그리워하기도 했으며, 식색에의 욕망에 속절없이 굴복하기도 했다. 진보의 시절이 아닌 방황의 시절이었고, 문명의 시기가 아닌 야만의 시기였으며, 영웅담이 아닌 평범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였다.
여성 지식 청년들은 이런 언어폭력에 강한 반감을 느꼈다. 욕만 나왔다 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면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더욱 기분이 상해 나지막이 ‘저질!’이라고 중얼댔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청춘을 향한 그들의 이상은 이렇게 파괴되고, 인생의 신앙도 그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후 그들이 하나둘씩 어떻게 해서든지 허둥대며 시골을 도망치듯 떠난 것도 이런 청각적 피해와 큰 연관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꽃망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혁명은 시와 불꽃과 돛단배, 질주하는 준마로 가득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상산하향을 직접 경험하며 6년간 농촌에서 생활했던 작가는 그들을 역사의 이름으로 미화하거나, 단지 위로받아야 할 대상으로 동정하는 대신 한 시대의 명과 암을 조명하며 인간 존재의 참 모습을 향해 다가간다. 꿈을 품고 만났던 열두 명의 ‘지식 청년’들이 훗날 자부심과 조소가 뒤섞여 왕년을 곱씹는 ‘아저씨’가 될 때까지, 작가는 혁명의 증인이 된 한 세대를 예리하게 추적한다.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이며, 사회와 이념 속에서 인성이 억압되었을 때 어떤 불행을 초래하는지 무겁게 물어 오는 그의 필력은 격동했던 중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여 인간 보편을 향해 날아가는 거장의 화살을 연상시킨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멀리 태평양 건너편의 그는 소식이 감감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어렴풋이 내 기억에 떠올라 마음의 가장 여린 구석을 흔들었다. (…) 점차 나에 대한 그의 인내심이 줄어들고 참기 힘들 정도로 그의 언사가 각박해져 갔음에도 불구하고(‘어떻게 이런 것도 몰라?’, ‘가서 머리 박고 죽지 그래?’ 같은) 그야말로 망망하고 어두운 밤 처음으로 성냥을 그어 내 창문의 등불을 밝힘으로써 내 소년 시절을 환하게 비춰 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본문 중에서
■ 문화 혁명 이후의 문학 –상흔, 반사, 심근 그리고 지청 문학
수업은 무슨 놈의 수업? 영어 시간에 가르치는 것이라고는 ‘Long live Chairman Mao’ 같은 정치적 구호뿐이었다.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수학 과목 역시 계산을 할 때 예로 식량이나 비료가 등장했다. 하루는 일원방정식을 배울 때 소똥 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면 또 다른 날은 돼지 똥을 예로 들어 드는 바람에 교실 전체 가득 똥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본문 중에서
중국 문화 혁명이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마오쩌둥이 주도했던 극좌 사회주의 운동이다. 『일야서』의 소재가 된 상산하향 운동 역시 관료주의와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마오쩌둥의 사망과 함께 ‘극좌적 오류’라는 평가를 받으며 막을 내린 이 혁명은, 단지 정치 모델의 실패가 아니라 중국 인민들을 역사의 격변기로 몰아간 일대 사건이 되었다. 그리고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 작품들이 속속 문단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문화 혁명이 끝난 후 가장 먼저 문단에 등장한 것은 ‘상흔 문학’으로, 이때의 작품들은 주로 혁명으로 인해 파탄에 이른 젊은이의 삶과 가정의 비극을 그렸다. 그러나 말 그대로 ‘상흔’ 즉 상처에 주목한 이 사조는 문학성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한사오궁에 의해 ‘철학적 부재와 심미적 졸렬함’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 상흔 문학의 빈자리에 등장한 ‘반사 문학’과 ‘심근 문학’은 비로소 역사의 본질에 다가가는 문학적 탐구를 시작한다. 반사 문학은 혁명이 남긴 상처를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상처가 생겨나게 된 역사적 원인을 탐구하며 한 발짝 진보했다. 또한 이른바 ‘뿌리 찾기 문학’이라고 불리는 심근 문학은 한사오궁이 《작가》에 「문학의 뿌리」를 기고하며 시작되었다. 혁명이 실패로 끝난 후 흔들린 정신적 근원을 되찾고자 중국 전통과 중국인들의 문화 심리를 발굴하는 데 몰두한 것이 특징이다.
혹자는 『일야서』를 ‘인성’에 대한 심근, 즉 ‘인성의 뿌리 찾기’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에 동의한다.
-작품 해설 중에서
한편 ‘지식 청년’의 줄임말인 ‘지청’에서 출발한 ‘지청 문학’은 작가가 문화 혁명기에 상산하향을 경험한 장본인이거나, 그들의 생활상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일컫는다. 많은 지청 문학들이 동시에 반사 문학이나 심근 문학에 속했다. 전자는 작가와 내용에 따른 분류이고 후자는 문예 사조에 따른 분류인데, 한사오궁의 『일야서』와 전작 『마교 사전』은 지청 문학이면서 동시에 심근 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
『마교 사전』은 문화 혁명기 작가가 실제 생활했던 ‘마차오’라는 마을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을 탐구하여 지식 청년들의 생활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내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최근작 『일야서』는 그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열두 명의 지식 청년들과 그다음 세대의 삶을 오십 년간 추적한 대장정의 결과물이다. 이 작품은 문화 혁명 시기 지식 청년들의 삶에 관한 가장 생생한 보고이자 동시대를 살아낸 중국인들에게 내미는 현재의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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