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4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인 <어릿광대의 나비>와 <마쓰노에의 기록> 두 편이 실린 단편집이다. 달랑 두 편인데 단편집이라고 말하니 조금 어색하다. 분량도 많지 않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다. 적은 분량 때문에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 되었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 완전히 소화하지도 읽지도 못했다. 그것은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이자 어려움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소설에 상을 준 심사위원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런 소설 정말 오랜만이다.

     

    <어릿광대의 나비>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쉽지 않다. 화자가 바뀌는 것이야 쉽게 파악되지만 이 변화가 이야기 속에 녹아갈 때 만들어지는 시간과 설명은 쉽지 않다. 희대의 다언어 작가 도모유키 도모유키를 둘러싼 상황들이 녹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쓴 소설에서 시작하여 이 소설을 번역한 사람이 등장하고 다시 도모유키가 등장하는 설정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단순히 사람의 변화만이 아니라 상황과 시간의 전복 등이 이어지면서 복잡해진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것이 있다. 그것은 도모유키 도모유키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방식이다. 혹시 나도 이런 식으로 한다면 빨리 다른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마쓰노에의 기록>은 원작을 번역한 작품을 다시 번역하고, 이 번역을 다시 번역하는 것을 다룬다. 이런 번역 과정 속에 원래 의미는 사라지고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다. 어쩌면 번역이라기보다 상상력에 의한 창작이 더 맞을 것 같다. 다른 언어를 정확하게 번역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두 번역자가 만난 후 벌어지는 이야기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사람속이 얻은 최초의 언어는 노래였다.”(188쪽)란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아직은 과학적으로 완전히 해석되지 못한 뇌의 신비도 다루어지는데 역시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가끔 이와 비슷한 소설을 읽는다. 읽을 때면 늘 고민에 빠진다. 쉽지 않다. 익숙한 문장과 구성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많지 않은 분량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바로 이런 낯설음 때문이다. 추적자와 추적자를 관찰하는 대상의 이야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런 구성으로 이어지고 이 구성 밖에서 만들어지는 설정과 환경이 어렵게 만든다. 이것은 다시 번역자와 원작자의 상호 번역이 이해가 아닌 자신의 인식에만 머문 것에 눈길이 가게 한다. 모든 번역에 대해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면 지나친 과장이 되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낯선 문장과 전개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소개가 보여준 해설의 깊이나 넓이에 대해 그 반만이라도 이해했다면 이 소설에 대한 나의 호감은 더 높아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