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그르니에 / 일상적인 삶

여행, 산책, 수면, 독서, 담배, 정오, 자정 등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느릿하고 정적인 특유의 사유를 보여주는데, 장그르니에 선집 4권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 제가 이분의 깊이있는 사유를 따라가기 어렵군요. 재독하더라도 깊이있게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에세이집. 그래도 드문드문 공감이 가거나 끄집어낼만한 구절은 있었습니다. 이로써 장그르니에 선집 4권을 모두 완독하였는데 역시 카뮈가 서문을 쓴 섬이 제일 좋았다.

 

P.057 산책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산책할 여가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공백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일상사 가운데 어떤 빈틈을, 나로선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순수한 사랑 같은 것에 도달하게 해 줄 그 빈틈을 마련할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산책이란 우리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게 해 주는 수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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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3 비밀

한갓 인간들 사이에서 비밀은 결코 지켜지지 못한다. 그것을 끝까지 지키려고 아무리 애써봐야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애당초 사람의 비밀이란 밝혀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은글슬쩍 털어놓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제삼자가 부추기지 않아도 스스로 토로하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지만 당신에게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남이 알아주는 것은 더 소담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그게 비밀인지조차 모르는 바에야그 비밀의 내용이 잘 지켜진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리고 자기에게 비밀이 하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흔히 그렇듯이, 그 내용을 드러내기로 마음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그 비밀의 베일은, 너만 알고 있으라는 식의 공모의 분위기가 마련되어야만 벗겨진다. 그래야만 그 비밀이 저잣거리에 파다하게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어쩌랴, 결국은 그렇게 퍼지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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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0 독서

데카르트가 독서를 대화라고 말한 것에 대해 프루스트는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에게 독서는 대화의 반대이다. 즉 무엇을 읽는다는 것은 “혼자 남은 상태에서, 다시 말해 고독 속에서만 발휘되고 대화가 시작되면 이내 사라져 버리는 그 지적 능력을 계속해서 누리는 상태에서 다른 사유와 소통하는 것”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깨지기 쉬운 어떤 고취된 상태, 우리를 그 상태로 두는 것이 바로 독서이다. 그래서 독서는 우리에게 자극제가 된다. 그것은 우리를 성가신 사회적 관계로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혼자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며, 마치 베르길리우스를 읽은 단테가 그러했듯이 우리는 독서로 인해 새롭게 자극 받는다. 그래서 저자의 지혜가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깨달음이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