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

헤르메스4: 배치

원제 Hermes 4: La Distribution

미셸 세르 | 옮김 이규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9년 1월 30일 | ISBN 978-89-374-1622-4

패키지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454쪽 | 가격 25,000원

책소개

세르는 다양한 학문 분야들 사이의 인접부를 탐색한다. 그가 숙고하는 지식의 범위에는 수학, 물리학, 역학 등 전통 과학들의 역사와 과학 혁명, 정보 이론, 전통 철학, 문학, 신화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는 폐쇄적이고 자동 제어되는 여러 학문 영역들로 찢긴 백과 지식의 공간을 깁는다. 접히고 구겨진 울퉁불퉁한 위상 공간으로서의 백과 지식을 탐색한다. 그래서 그는 지식의 음유시인이다. 세르는 끝없는 배움의 길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소통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가 말하는 소통은 바로 백과 지식이라는 상호 간섭의 공간을 가로지르는 여행으로서, 과학 분야들 또는 과학과 철학, 철학과 문학 사이에서 일어나는 방법의 전이를 가리킨다. 그는 이와 같은 상호 접근의 작용소에 ‘헤르메스’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길과 네거리, 전언과 상인의 신 헤르메스를 자신의 성(姓)으로 삼는다. 그는 ‘미셀 헤르메스’로서 소통의 철학을 수행하는 가운데 학문 분야들 사이의 전령으로서 문학, 과학, 과학사, 철학 사이를 돌아다닌다. 이러한 여정이 바로 『헤르메스』 5부작에서 구현된다. 이 책을 통해 ‘제3의 교양인’ 세르 철학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리뷰

인문적 교양과 과학적 지식을 아우르는 현대 프랑스 철학의 거장, 미셸 세르의 역작

발, 머리에 쓴 모자, 들고 있는 지팡이에 날개가 달려 있는 그리스의 신 헤르메스(Hermes)는 독특한 성격을 갖는다. 첫째는 민첩성을 토대로 한 안내자로서의 성격이고, 둘째는 유창한 말솜씨와 뛰어난 해석 능력을 갖춘 메신저(使者)로서의 성격이다. 헤르메스는 마법의 지팡이를 가지고 바람과 구름을 조정하며, 새와 같이 날아다니면서 영혼을 인도하고, 인간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그리고 메신저로서의 헤르메스는 신적인 앎, 영지주의적 앎, 절충주의적 앎, 하나의 전문 분야를 뛰어넘는 앎에 이르는 방법을 주관한다. 그의 메시지는 인간적인 지식과 인간적인 불행을 뛰어넘는 앎에 이르게 해 준다. 이러한 헤르메스의 안내자와 메신저의 일을 자신의 철학적 소명으로 삼은 철학자가 바로 미셸 세르이다. 그는 헤르메스를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신으로 여기고 있다. 기술과 과학을 통한 생산이 인류에게 중요했던 프로메테우스의 세상이 지나가고 과학과 지식과 기술을 전하고 나누는 일이 더욱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의 시대, 즉 헤르메스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래서 세르는 끝없는 배움의 길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소통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가 말하는 소통은 바로 백과지식이라는 상호 간섭의 공간을 가로지르는 여행으로, 과학 분야들 또는 과학과 철학, 철학과 문학 사이에서 일어나는 방법의 전이를 가리킨다. 그는 이와 같은 근접화 내지는 상호 접근의 작용소에 헤르메스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길과 네거리, 전언과 상인의 신 헤르메스를 자신의 성(姓)으로 삼는다. 그는 ‘미셸 헤르메스’로서 소통의 철학을 수행한다. 그는 학문 분야들 사이의 전령으로서 문학, 과학, 과학사, 철학 사이를 돌아다닌다. 이러한 여정이 차례로 『소통』, 『간섭』, 『번역』, 『분포』, 『서북 통행로』, 곧 『헤르메스』 5부작으로 구현된다.

특히 제4권 『분포』는 그의 이러한 사상적 역량이 총 집약된 것으로 평가받는 책이다. ‘분포’는 무작위적으로 흩어져 퍼진 상태와 나누어서 퍼뜨리는 활동을 동시에 의미하는데, 세르가 들고 있는 예들은 지구상에 부족들이 흩어져 있는 상태, 카드 분배, 원자들이나 점들 또는 모든 하찮은 것들의 무작위적인 배열 상태 등이다. 혼란스러운 소리, 누더기, 장터, 군중, 산산조각으로 찢긴 황야, 보일러, 바다, 번개가 일고 천둥이 치는 하늘, 구름, 시냇물, 소용돌이는 분포의 은유이다. 이것들은 무질서의 적나라한 형상이며, 과도한 질서 이전의 여건과 현실이다. 따라서 분포는 무질서나 혼돈에 가까운 용어이다. 그도 분포를 전(前)배합적, 전(前)집합적 의미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세르는 시초에 여러 가지 분포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지식의 시초, 세계의 시초, 에너지의 시초, 생명의 시초, 공간의 시초, 시간의 시초, 신호들의 시초에 상응한다. 『헤르메스 4: 분포』는 무엇보다도 19세기 과학사를 정리하기 위한 책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세르는 우선 데카르트 철학과 라퐁텐의 우화, 뉴턴 역학과 칸트 철학을 중심으로 17~18세기의 과학과 철학을 점과 면에 입각하여 제시한다. 그리고는 18세기를 17세기 패러다임의 확대 적용기로 규정한다. 19세기는 산업 혁명을 전환점으로 하여 발동기의 시대로 접어드는 시기였다. 여기에는 진정한 패러다임 변화가 있다. 세르는 19세기의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철학자, 과학자, 작가로 니체, 다윈, 마르크스, 미슐레, 베르그송, 볼츠만, 파스퇴르, 푸리에, 프로이트, 졸라, 도르빌리, 시쉬포스와 다나이데스 신화 등을 선정하여 이들이 내보이는 열역학과 위상기하학의 패러다임을 탐색하고 유체역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처럼 19세기에는 뚜렷한 패러다임 변화가 성취됨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합리성, 권력과 지식의 공모 관계 내지는 권력에 대한 지식의 봉사, 군신 마르스의 지배가 계속됨으로써, 퇴보가 곧장 이어진다. 세르는 서양인을 “언제나 승리하는 과학의 늑대”라고 말한다. 라퐁텐의 우화 ‘어린양과 늑대’에서도 늑대는 자신을 하류에 있다고, 짐짓 약한 자라고 엄살을 떨지만 결국에는 어린양을 잡아먹는다. 그는, 권력에 대항하는 반권력도 급기야는 권력이 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자연에 대해서도 늑대의 전략을 비롯한 모든 전략을 영원히 포기하기를 바란다. 그는 너무나 합리적이어서 현실과 거리가 멀거나 다만 현실을 파악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인 지식의 폭력을 경계한다. 그는 차라리 구름 속에서 사유하기를 권한다. 구름은 카오스의 모델이다. 왕 또는 정치 없는 개구리들의 연못이다. 혼돈을 유쾌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질서에 이바지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로 무질서한 연못에 나무토막이 왕일 때만 해도 폭력은 없었다. 그러나 뱀이 왕으로 들어왔을 때, 개구리들은 자신들의 소원이 실현되었는데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이 우화는 무질서하게 보이는 현실에 대한 극단적인 합리성 강요의 폐단을 보여 준다.

그의 글은 복합적 요소들이 체계를 이루지 못하고 산재되어 있으며, 단지 몇몇 합류점들을 만들어 보여 줄 뿐이다. 여러 영역들의 요소가 들어오고 서로 엇갈리면서 시간 속에서 미묘하게 움직인다. 이에 따라 색다른 관계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의 글은 생기가 있지만 동시에 실체적 사유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혼란스럽다는 인상, 혼돈의 인상을 줄 여지가 있다. 세르는 철학적 사유와 글쓰기에서 행복을 느끼는 보기 드문 철학자로 보인다. 그는 사물들의 모든 소통을 보면서 마치 신들의 만찬에 초대받은 듯이 웃는다. 그는 연구실에 들어박힌 이론가-철학자가 아니며, 소통 공간에 잠겨 있는 수신자로서 사물들의 세계, 인간 세계에 대해서 침묵하지도 않는다. 그가 구축하고 있는 새로운 지식인상은 인문적 교양과 과학적 지식의 통합, 학제 간 연구, 담론들 간의 소통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현시점에서 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 미셸 세르(Michel Serres)는 누구인가

세르는 수학자로서 출발해 라이프니츠 연구, 인식론 연구를 통해 바슐라르를 잇는 프랑스 인식론계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생애 후반에는 문학·예술·법·교육 등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문화 일반의 가능성의 조건을 다루는 문화 철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늘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통합을 모색하고 있는 세르야말로 데카르트, 베르그송, 구조주의로 이어져온 프랑스 백과전서적 학풍을 이어받고 있는 대학자라고 할 수 있다. 1969년 클레르몽-페랑 대학에서 과학사 교수로 취임한 후, 파리 8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파리 1대학 역사학과에서 과학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철학자 세르의 사상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직업적인 철학자들로부터 외면받아 왔고, 더불어 일반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것은 이공계 학교인 해군사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했고,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던 그의 독특한 학력에서 확인된다. 미셸 세르는 자신의 이러한 학문적 이력을 바탕으로 과학과 철학의 경계 지역을 자신의 학문영역으로 삼는다. 이 경계로는 그의 지적 소양의 두 기둥, 즉 과학으로부터 철학으로 가는 가는 길인 동시에 이 둘을 연결하는 길이기도 하다. 최근 프랑스 소장 지식인을 대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푸코나 데리다가 아닌) 들뢰즈와 함께 선정될 만큼 프랑스 안에서도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프랑스 케이블 TV ‘문화강좌’를 통해 대중과도 친숙한 사상가가 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헤르메스』 5부작을 비롯하여, 『청춘. 쥘 베른에 관하여(Jouvences. Sur Jules Verne)』(1974), 『오귀스트 콩트. 실증철학 강의(Auguste Comte. Le ons de philosophie positive)』(1975), 『루크레티우스 텍스트에서의 물리학의 탄생. 강과 소용돌이(La Naissance de la physique dans le texte de Lucrce. Fleuves et turbulences)』(1977), 『기생자(Le Parasite)』(1980), 『기원(Gense)』(1982), 『초탈(Dtachement)』(1983), 『자연 계약(Le Contrat naturel)』(1990), 『제3의 교양인(Le Tiers-Instruit)』(1991), 『기하학의 기원(Les origines de la gomtrie)』(1993) 등이 있다.

작가 소개

미셸 세르

수학자로서 출발해 라이프니츠 연구, 인식론 연구를 통해 바슐라르를 잇는 프랑스 인식론계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생애 후반에는 문학, 예술, 법, 교육 등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문화 일반의 가능성의 조건을 다루는 문화철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늘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통합을 모색하고 있는 세르는 데카르트, 베르그송, 구조주의로 이어져 온 프랑스 백과전서적 학풍을 이어받는 학자라고 할 수 있다.

1969년 클레르몽-페랑 대학에서 과학사 교수로 취임한 후, 파리 8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파리 1대학 역사학과에서 과학사를 가르치고 있다. 세르는 과학과 철학의 경계 지역을 자신의 학문 영역으로 삼는다. 주요 저서로는 ‘헤르메스’ 5부작을 비롯해 <청춘, 쥘 베른에 관하여>, <오귀스트 콩트, 실증철학 강의>, <기생자>, <기원>, <초탈>, <기하학의 기원>, <자연 계약> 등이 있다.

이규현 옮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프랑스 부르고뉴 대학에서 철학 DEA 취득. 서울대학교와 덕성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강사. 역서로는 『성의 역사 Ⅰ, 앎의 의지』(미셸 푸코), 『카뮈를 추억하며』(장 그르니에), 『알코올』(기욤 아폴리네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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