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초기작이다. 이 책과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가 ‘백년의 고독’ 예고편이래서 먼저 읽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읽은 적이 없고 다른 어떤 유명한 작품도 아직 읽은 게 없어 이 책으로 처음 마르케스를 접했다.

정말 엄청난 매력이다. 20대 초반 작이라는데 이렇게 탄탄할 수가 있다니. 구성, 문장력이 정말 대단하다. 너무 매력적이다. 재밌다.

죽음과 고독을 다루는 책이 많지만, 특히나 그 소재 때문에 독특한 분위기를 내는 책은 손에 꼽는다. 아름다운 문장은 독자를 꽉 붙들고 문장에서 피어오르는 아우라는 여유롭게 읽는 이를 압도한다. 다인물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특이한 구성이 흥미롭다. 글의 분위기가 다른 작품과 달라 무언가의 기운이 훅 끼쳐온다. 마르케스의 표현을 조금 빌리자면 그런 기운이 나를 때렸달까.

- 나는 죽은 사람이란 꼼짝 않고 잠자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전혀 반대라는 것을 보고 있다. 깨어 있으며 싸우고 난 후에 화가 난 사람 같다는 것을 보고 있다.[p13]

   

-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진심으로 원했고, 심지어 언젠가는 그의 썩은 몸에서 내뿜는 기분 좋은 냄새가 마을을 떠다닐 것이라고 느끼며, 누구도 눈물을 흘리거나 놀라거나 괘씸해하지 않고, 그토록 고대했던 시간이 왔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이런 상황이 죽은 사람의 일그러진 냄새가 가장 깊이 숨겨진 원한마저 해소시킬 때까지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미리 즐거워했다.[p20]

 

작품을 읽으면서 그의 다른 작품이 궁금했다. 다른 작품은 또 어떤 즐거움을 줄지, 얼마나 대단할지 자연스럽게 기대가 됐다.

 

책에는 내내 썩은 잎이 배회한다. 거대 자본 혹은 전쟁으로 생겨난 썩은 잎. 그런 쓰레기들을 혐오하는 초반의 짧은 글은 이후에 어떤 글이 이어질지 기대하게 만든다. 찌꺼기 같은 이들은 평안한 도시 마콘도를 떠돌아다니고 존재하지 않는 도시 마콘도는 부족할 것 없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각 시점의 반복, 변화하는 구성은 내용을 살찌우고, 각 인물의 도덕, 책임, 신념, 이기가 어지러이 섞여 실존하는 물리적 공간에 집중되어 있다. 여러 인물의 겹친 시점은 짧은 순간을 느리게 나열하는데, 그렇게 모든 인물의 시각이 섞여 공간은 살아난다. 의사의 자살을 바라보는 모든 이의 시선 속에 고독이 들었고 고독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부른다.

 

같은 시간, 다른 시각은 사건을 더 궁금하게 만들고, 매력적인 문장은 그런 문장들을 여러 번 곱씹게 만든다. 문장이 정말 묘하게 매력적이다. 마술적 사실주의로 유명한 만큼 초반 죽음과 고독, 아이의 시선과 구체적인 내면의 목소리는 기이하면서 사실적인데 아무튼 굉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