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풍차’라고 불리우는 드넓은 영지에 부와 명예를 구축한 코스트 1세, 그들 가문의 5대에 걸쳐 이어지는 비극을 어떤 이름 모를 화자가 이야기하다. 책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모든 자리에 이야기 속 코스트가의 비극, 저주가 주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내 눈에는 그저 그들이 나름대로의 삶을 그럭저럭 잘 살다가 간 것으로만 여겨질까. 예상치 못한 사고사가 이어지고 아이를 낳다 죽기도 하고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미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에도 행복을 꿈꾸고 사랑하고 아이를 키우고 무엇보다 자신 가문을 둘러싼 수근거림에도 당당히 자신들의 인생을 이끌어나간 이들의 모습이 내 눈엔 더욱 도드라지게 보인다.
동네 미친 언니로 손가락질 당하던 우리의 쥴리가 <우애의 무도회>에서 반은 일그러진 얼굴, 반은 꽃같이 어여쁜 얼굴을 한 모습으로 꿋꿋하게 혼자만의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는 경품 추첨을 주재하는 공증인에게 소근소근 <행복에 당첨될 수 있는지> 묻는다. 이 대목에서… 나는 그녀를 미친 언니 취급하는 것이 한없이 억울하고 또 미안했다. 세상의 좀시러운 시선에 굴하지 않고 행복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고 또 음악에 자신의 광기어린 정열을 표현할 줄 아는 그녀… 난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녀이고 싶었다.
<평범하게 밥이나 먹고 사는 것>의 아름다움을 위해, 코스트는 자신의 딸들을 신이 망각했을 정도로 평범하고 덤덤한 이들과 짝지어주고자 했다. 저주라면 저주고. 비극이라면 비극인.. 그 일련의 사건들에는 아무런,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비극을 자초한 일 따위는 없었다. 삶의 갑자기 어디로 머리를 돌릴 지 몰랐던 것이고 삶의 길목에서 갑자기 무엇이 나타날지 몰랐던 것이다. 비극적인 운명과 지극히 평범한 운명을 섞어서 운명의 안전지수를 올릴 수 있지는 않을까 했던 코스트의 생각이 새삼 한없이 우습다. 비극으로 예정된 운명의 대물림 따윈 없다. 이를 비극으로 규정짓고 바라보는 좀스러운 시선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