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여인

다른 문화 혹은 이국정취란 것은 자기 정체성이나 지역성에 가외로 얹힌 기회 같은 것으로 여겨, 함께 조화를 이루고 절충과 종합의 미덕을 지향하기보다는 잠시 그 이질성을 즐기려고 들 뿐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여자에게도 적용되어, 처음부터 나는 동등한 인격의 배우잣감이라기보다는 기회가 닿으면 한 번 데리고 놀고 싶은 여자로만 인식되는 거죠. (p.233)

 

혜란의 어머니는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병합될 때 외할머니와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한국 사람인 혜란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내게 된다. 하지만, 혼혈아 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그 이유로 다시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재수생 시절 금발의 혼혈 아이에 자꾸 눈이 가던 나는 그 아이가 따돌림 당하는 장면을 끝으로 그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10년 후‘리투아니아 남자들’이라는 연극을 기획하면서 금발의 제니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녀와의 가늘지만 끊기지 않는 인연도 다시 시작된다.

 

한참을 소식이 없이 지내다가도 어느 날 우연히 만나도 어제 봤던 사람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혜란에 대한 나의 감정은 스스로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혜란과 결혼하고 이혼한 김교수는 상간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혈육 같다고 표현하였지만, 그것은 사실 나의 마음을 감출 수 있는 가림막일 뿐이었다. 혜란의 이혼과 나의 이혼은 결국 두 사람을 브로드웨이에서 런던, 파리와 비엔나, 로마의 고전 오페라까지의 길거리 수업을 같이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같이 돌아와서 뮤지컬 ‘너 어디 있느냐’ 를 제작해서 성공을 거두고, 혜란은 서울 인근 대도시 시향의 지휘를 맡게 된다. 그 교향악단이 유럽의 도시에서 큰 호평을 받고 혜란은 유명해진다. 하지만, 언론의 가십거리 기사와 그에 호응하는 네티즌에 의해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고 혜란은 다시 길을 떠난다. 나에게 마지막으로 밥을 해주고 다시 음악을 위해 뉴욕으로 떠난 혜란은 이제 나에게는 또 10년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혜란이 박칼린이라는 유명인의 이야기를 토대로 쓰기는 했지만 작가의 말처럼 허구가 많이 가미 되었다. 그 허구를 채운 것은 바로 작가의 심정이었던 것 같다. 예술과 생물학적 태생의 상관관계를 도식화 하면서 그것은 지극히 무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혜련의 삶은, 작가의 작품과 사상이 분리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란은 비록 자신이 ‘동족으로 의제해 온 종족들로부터 가혹하게 부정’ 되었지만 결코 자신이 그 비수를 피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마치 유목민이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가듯 선입견을 갖지 않는 청중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 악사가 되고자 한다고.. 그리고 극중의 나는 그 말을 믿고자 했다.

 

이문열이라는 작가를 이야기 할 때면 항상 함께 열띤 논쟁을 벌였던 대학 때 친구가 떠오른다. 작가로서의 역량이 우선인지 그의 사상이 우선인지 우리는 자못 진지하게 이문열을 이야기 했었다. 다소 권위적면서도 가부장적이고(그 때는 한창‘선택’이라는 소설이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보수적이라 할 지라도 그의 작가로서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나의 의견에 항상 격한 반대를 외쳤던 친구를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이문열의 소설을 읽었다. 그래서였을까? 소설 곳곳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사상이 쉽게 지나쳐지지가 않았다.

 

한국의 홍위병들도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파나 지도자를 따라 주지 않는 작가를 문화 권력이란 이름으로 몰아댔다. 처음에는 인터넷 대자보로 그 작가를 난도질하더니, 급기야는 그 집 앞에 몰려가 서점에서 아직 팔리고 있는 그의 책을 장례 지내기까지 했다. (p.242)

 

이 글은 박칼린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고 있지만, 작가의 경험 또한 토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구절이다. 물론 아무리 봐주고 읽어도 글 구석구석 편향된 사상의 느낌은 나지만 나름대로 거기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봤다. 비록 상대가 쓰는 칼이라고 할 지라도 그 칼이 내가 원하는 곳에 쓰이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은 할 수 있겠지만, 그 칼이 날카롭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문열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