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로 칼비노, 나무 위의 남작

P.335

코지모 피오바스코 디 론도-나무 위에서 살았고-땅을 사랑했으며-하늘로 올라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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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7년 6월 15일, 코지모 피오바스코 디 론도가 마지막으로 땅을 딛고 서 있었던 날이다. 이후 그는 나무 위로 올라가 죽을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땅을 절대 딛지 않았다.

(싸패 기질이 있어보이는) 누이 바티스타가 만든 역겨운 달팽이 요리에 반항하여 나무 위로 올라간 코지모의 삶을, 동생 비아조의 목소리로 듣는다. 코지모는 나무 위에서 그저 야만인처럼 살아간 것이 아니다. 작은 짐승들을 사냥하여 의복을 지어입고 사냥감을 주변 마을 사람들과 과일, 채소 등과 물물교환하였으며 나무 위에 쉴 곳을 만들고 도구를 사용하여 물을 끌어다 식수로 쓰고 몸을 청결하게 하였으며 볼일은 정해진 곳에서만 보았다. 독서와 연구에 충실하여 박학다식하였으며 빈민들에 대한 연민도 있었고, 옴브로사의 마을과 숲에 위기가 생기면 앞장서 해결책을 마련하고 도왔다. 나무 위에서 살았을 따름이지 누구보다 귀족처럼 행동하고 원칙이 있었다. 코지모는 나무 위에서 못할 것이 없었다. 심지어 사랑과 연애까지도

이 시기 유럽은 격동기였다. 시민혁명이 발발하고 다시 왕정복고 시대로 귀환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작품 전반에 드러나 옴브로사와 코지모의 삶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주는 아니다. 그냥, 유럽 어느 가상 마을에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은 남작이 있었다는, 동화같다는 느낌이 시종일관 유지된다.

P.158

그렇게 해서 형은 이미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던 옴브로사의 나무들을 가지치기 기술을 이용하여 더욱더 도움이 되는 존재로 만들었고, 동시에 이웃과 자연, 그리고 형 자신의 친구가 되게 해 주었다. 특히 형이 나이가 든 뒤, 이 슬기로운 작업의 결과로 인해 나무들은 형이 공을 들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점을 베풀어 주었고, 형은 그것을 누릴 수 있었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세대,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며 세상 모든 것,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호의적이지 않은 세대의 출현으로 세상은 변해 버렸다. 이제 나무 위로 당당히 걸을 수 있는 코지모 같은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현경 번역가의 작품해설 중 마지막 부분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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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3

칼비노는 18세기가 괴짜와 기인의 진열장 같은 시대였다고 말한다. 코지모 역시 자신의 기이함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해 보려고 애쓴 18세기의 기이한 인물 중 하나일지 모른다. 그래서 기인이 없는 세상, 자기만의 개성을 상실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일컫는 현대에 칼비노의 코지모는 더 독특한 존재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