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왜 읽는가?

첫 번째, 좋은 이야기를 잘 알아듣기 위해
영어를 잘 알아 들으려면 영어를 자주 들어야 하듯, 좋은 이야기를 잘 알아 들으려면 좋은 이야기를 자주 접해야 하지 않을까
에세이를 읽으며 작가들은 일상에서 무엇을, 어떤 눈으로 포착하는 지 궁금했고 나도 그렇게 보고 싶었다. 그러면 내 세상을 새로운 색으로 칠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네 빛나는 얘기를 내가 알아 들어” 하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책을 읽고 제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은 이런 이야기들을 귀담아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영혼이 잠들어 버리면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p. 14)

 

두 번째, 내 방식대로 나를 잘 키우기 위해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걸 위해서 내 시간을 쓴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서 독서라는 취미를 설명할 때도, ‘그냥 재미있어서 덕질처럼 읽어요’ 하고 말하곤 했다.
근데 내가 단단히 서서 살아가려면, 나만의 세계를 만들려면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내가 먹은 것이 그대로 나를 구성한다고 말해줬다.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시간을 들여 나를 잘 키워보려고 읽습니다. 내가 좀 더 그럴듯해지려고 읽습니다.

“‘나를 키우는 시간’은 시간의 척추입니다 … 시간에도, 영혼에도 척추가 필요합니다. 그런 시간이 없다면 우린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질 것입니다.”(p.40)

“영혼을 단단한 핵처럼 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하나 고유한 행성이 되고 또 그만한 무게와 자신만의 중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맘껏 흩뿌려 보지 못한 사랑의 무게, 열정의 무게가 있습니다 …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데 쓴 시간들은 다시 자기 자신을 만듭니다. 결국 나를 키우는 시간에는 내가 ‘한 성공한 인간으로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사는 데 성공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걸려 있는 것입니다.” (pp.44-45)

“제가 읽었던 책들도, 그리고 제가 만났던 좋은 사람들의 영혼도 이렇게 제 혈관 어딘가에 흐르게 해 주십시오.” (p. 219)

 

세 번째, 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꺾이지 않기 위해
요즘은 끊임없이 절망하곤 한다. 이게 내가 사는 세상이라고? 정말 바뀌었으면 하는데, 변화를 상상하는 일은 정말 어렵고, 가능성이 없어 보여서 쉽게 지치고 낙심하게 된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다. 고작 이런 게 나라고? 세상이나 나나, 정말 바뀔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 가장 쉬운 방법인 포기를 선택하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나는 자꾸 읽어야 한다. 다른 모양의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절망을 직면하는 게 너무 어려워 눈을 감아버리는 게 아니라, 끝까지 읽어내서 다음 페이지에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읽는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되려면 나를 다시 봐야 하니까 읽는다.

“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겁니다. 지금 당장 내가 사는 세상이 너무 서글프니까요 … 책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눈을 돌리니 정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르게 사는 사람들요” (p. 70)

“그는 불명예스러운 페이지를 구겨 버리지 않기를 선택했습니다. 이제 그 앞에는 그 페이지를 통과해야만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놓여 있습니다 … 깊이 절망했기 때문에 변화를 향한 의지를 불태웁니다” (pp.81-82)

“다른 존재가 되려면 질문이 필요합니다 … 믿을 만한 것을 꽉 움켜잡아야 합니다. 다른 존재가 되려면 자신의 경험을 좀 더 큰 맥락 안에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pp. 116-117)

 

네 번째, 빈칸을 채우기 위해
나는 누구를 위하여 무엇이 되어야 하나.
‘누구’와 ‘무엇’에 최대한 근사한 단어를 넣기 위해서 계속 읽는다.
80억명의 ‘누구’들이 ‘무엇’을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있는지를 봐야겠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를 구원했으면 한다.

“70억인분의 슬픔을 끌어모아 본다면 …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 그러나 잃어버린 것들, 우리를 울고 웃게 했던 것들을 다시 찾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면 … 무엇이 쓸모가 있는지 나옵니다 … 고통과 불안을 직시한 책들만이 우리를 구해 줄 수 있습니다” (p. 123)

 

 

이 책이 ebs 교재에 실렸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