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영화 필름을 마구 찢어서 아무렇게나 다시 이어 붙인 후에 영사기에 넣고 재생하는 영상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랬더니 그건 더 이상 편집된 영화가 아니라 눅눅한 현실이 됐다.
하나의 시 안에서도
시와 시 사이에서도
시집 전체가 하나의 영화 같다. 겹치는 대사와 장면과 이미지.
대체 책장을 몇 번이나 앞뒤로 넘기며 시와 시 사이를 이동하면서 감상했나.
그러면서 대체 몇 번이나 피가 아닌 액체를 흘렸나.
생각만으로도 슬퍼서 마음이 망가지고
평생을 걸고 가장 절절하게 애틋하며
혼자 떠나버려 다신 볼 수 없는 사랑에게
딱 한 권의 시집을 전할 수 있다면.
어둠이 쏟아지는 시간에만 시집을 펼칠 수 있었다.
몇 번이고 비명을 지르며 읽었다.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솔직하게 절망하고 슬플 수 있었다. 맹세코 이렇게나 마음에서 탄 냄새가 날 수 있었는지 몰랐다.
이런 게 마음이라면
네가 보고 싶어
나는 너와 함께 무너지기로 선택할게
너를 내려 당기는 중력의 영향권으로 함께 들어갈게
이게 나의 애도법이야
우연하게 시작됐다가 결국 잔해가 된 우리의 마음을 끌어안고 파수하는 게 내 운명이든
운명적으로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던 우리 마음의 최후를 뒤에서 끌어안고 함께 떨어지는 우연한 결심을 하게 되든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겠어
과거와 미래가 뒤엉키며 네 모습이 되어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것을 나는 그저 바라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