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기도는 그를 하얀 세계로 이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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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민음의 시 204 | 성동혁
출간일 2014년 9월 12일

1.
그는 “신앙과 종말을 함께 배워” (〈口〉)
죽고 사는 일에 너무 가까이에 있다.
죽고 사는 일을 너무 자주 반복했다.
스스로를 “다섯 번 허물”면서도 다시 창조되었다. (〈수선화〉)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왜 만날 나만 잔다 하시니) (〈6〉)

그가 서 있는 곳은
‘침대 밑까지 차오른 물’을 직전에 둔 ‘방주’의 갑판 위인 것인가 (〈6〉, 〈동물원〉)
‘하얀 나무’를 보며 믿어온 ‘숲이 있는 하늘’로 향하기 직전의 비석 위인 것인가 (〈숲〉)

 

2.

‘붉은 숲’ 위를 딛고 선 ‘붉은 난쟁이’가 자신에게서 ‘발현되는 붉음’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 (〈흰 버티컬을 올리면 하얀〉)
김행숙 시인의 말처럼, “빨강은 성동혁의 색이다.”
그의 붉은 슬픔은 남들보다 몇 배는 거대하고 날카로워서
“붉다와 아름답다 중 무엇을 먼저 떠올려야 하는지 몰랐다” (〈붉은 광장〉)

달려오는 소와 (〈나의 투우사 ─식사 기도〉)
직선으로 떨어지는 칼을 (〈서커스〉)
온몸으로 맞으며 웃음 짓는 친구여
이제 너는 “하얀색처럼 흔들”리게 되었니? (〈수선화〉)

 

3.
시의 문장들은 ‘차오르는 달’만큼이나 ‘차오르는 미안함’에 ( 〈口〉) 그가 읊었을 기도문인 것 같았다.

대체 당신은 어떤 죄책감 속에서 숨 못 쉬었던 건지.
아이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박수에는 무슨 마음을 담았던 건지.
사실 당신도 상대가 사라진 순간 지옥에서 살고 있었잖아. ( 〈6〉)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나를 홀로 두지 마소서 (이 부분에선 네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나는 더 이상의 불을 삼킬 수 없습니다
매일 기도한다” (〈독주회〉)

“아이들은 죽어서 그곳에 묻힌다
아이들이 어깨를 맞대고 커져 간 움집을 파낸다 … 나는 삽 끝으로 아이들의 심장소리를 듣는다 모종삽 모종삽 그곳을 파낸다 아이들의 발이 드러난다 발이 많다 그곳이 뛴다
… 어른들은 주머니 안에서 양초를 켠다 노래들이 밀려간다
자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박수를 치자” (〈반도네온〉)

 

4.
‘이곳의 중력’과는 전혀 다른, ‘가볍고 향기로’운, 아마 흰색이었을 ‘그곳에서 버려진 후 이곳을 고향이라 소개’하는 당신은 (〈유기〉)
사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였을까요.
진정한 귀향.

그래서 그곳과 닮은 꽃을 잊지 못하고 한 아름 건네 주었나요?
가볍고 향기로운 〈꽃〉.
〈수선화〉, 〈라일락〉, 〈리시안셔스〉, 〈라넌큘러스〉.

아니 어쩌면 꽃이라는 건
검붉은 땅속에서 한 번 썩어서 죽어버렸을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싹을 틔워내고 지상 위에서 봉오리를 틔워낸다는 점에서
우리의 부활과 닮아있는 걸까.

 

5.
아름다운 붉음 속에서
지독하게 아팠던 노을의 시간 속 그가
검은 터널을 지나
마침내는 속죄와 고향의 흰 세계로 무사히 도달했기를
당신의 예배당 안에서 기도할 뿐이다.

6.
우리가 붉어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 수 있는 거야.
깨끗하고 투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