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기에(아니면 그렇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인종차별의 문제나 그로 인해 야기되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 문제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성찰해보지 않았다.
해외에 나가면 동양인도 인종차별에 대상이 된다지만 고작 며칠 간의 얄팍한 여행에서는 다행히도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고 인종차별이 불합리하고 몰지각한 인간들이나 저지르는 일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교육 받고 자란 세대이므로, 인종차별이 ‘나쁜 일’이라고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배웠고, 실생활에서는 겪을 일이 없는 문제는, 특별히 치열한 고민 없이 원론적인 상식 정도로 그치기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내게 인종차별이란 옳지 못한 것이나, 저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나 벌어지는 남의 일 정도였고 큰 관심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생각해보면 흑인들의 ‘패싱’이라는 행위 자체가 충분히 있음직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이 책을 접하고 ‘패싱’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하고 다소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내 수긍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자신을 버리고 백인들의 삶에 섞이려 했지만 결국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소속으로 돌아가기를 열망했던 클레어와 그런 클레어를 부정하고 경멸하면서도 그녀에 대한 연민과 동지애를 끝내 온전히 떨쳐내지도 못하는 아이린의 마음과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인종차별이라는 부조리한 사회가 낳은 다양하고 복잡한 상처들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어째서 세상은 단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버리는 일까지도 감수해야 하도록 돌아가는지. 또 인간에게 자기 자신이라는 자존은 어째서 그리 서글프고 가냘프면서도 끝내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인지.
평소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 잠시 고민을 쏟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