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혼비 /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친구

골 때리는 그녀들, 일명 골때녀라는 여자들이 축구하는 예능프로가 인기를 끌면서 축구를 하려는 여성들이 이전보다 낯선 존재가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내 주변엔 ‘축구를 하는’ 취미를 가진 여성은 없다. ‘축구를 보는’ 여성은 있어도.

에세이 작가 김혼비의 좌충우돌 아마추어 축구클럽 경험기. 음, 경험기라는 말은 옳지 않은 것 같다. 그녀의 축구는 진행중이기에.

여성이라면 누구나 학창시절, 체육시간에 남자들은 운동장 대부분을 차지하며 축구나 야구를 하고 여자들은 구석탱이 조그만 공간에서 피구나 발야구를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중 여고를 나와 운동장을 여학생들이 전부 차지했을지라도 다들 점심 저녁을 먹고 소화시킨다며 회전초밥처럼 운동장을 빙빙 돌긴 했어도 축구를 하는 여학생들을 본 기억은 없다. 왜 여자들은 축구를 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아무것도 모른 채 초보환영이라는 회원모집 공고를 보고 클럽에 들어가 마침내 1어시 1골(웃프게도 자책골이다)을 달성한 김혼비 작가의 축구실력은 지금 어디쯤 왔을까? 아마추어 축구팀의 주력 선수들이 4050 여성이라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30대 여성은 미혼이나 아이없는 기혼만이 꾸준히 연습이나 경기에 참여한다. 아이를 가지게 되면 몇 년간 축구를 하지 못한다. 남편은 아이나 결혼 유무에 관계없이 계속 축구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여성들은 축구에 미쳐서 계속 푸른색 잔디를 밟으며 넘어지고 또 일어나고 악착같이 몸싸움을 하고 골을 넣는다. 그러기 위해 축구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세상이 나눈 구획의 경계를 점점 흐리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그녀들의 취미활동을 나 역시 멀리서 응원한다. 사실은 가까이서 응원하고 싶어요. 나도 언젠가는 축구클럽에…!!

(*이 글을 백업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의 저는 여자 풋살클럽에 나가고 있어요. 주1회 2시간 코디네이션 훈련과 연습경기를 뛰고 있는데 잘 맞아서 재밌게 운동하고 있습니다. 아직 실내풋살장에서만 훈련하는 쪼렙이지만 이젠 제법 공을 발에 잘 붙이고 있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내 생각보다 축구에 진심인 분들이 많았고 주말에 따로 훈련을 하거나 연습경기를 나가는 분들도 많았다. 큰 이변이 없다면 계속 훈련에 참석하게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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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같은 일이 생겼다. 한 사람에게 어떤 운동 하나가 삶의 중심 어딘가에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커다란 일이었다. 일상의 시간표가 달라졌고 사는 옷과 신발이 달라졌고 몸의 자세가 달라졌고 마음의 자세가 달라졌고 몸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달라졌다. 축구의 경험이 쌓이는 만큼 내 몸과 마음의 어떤 감각들이 깨어나는 걸 느끼면서, 축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어쩔 줄 모르겠는 기분을 느끼면서, 선수들과 이런 말을 주고받곤 했다. “왜 진작 축구를 하지 않았을까?” 사실 이 질문을좀 더 엄밀하게 고치면 이렇다. “어렸을 때 우리는 왜 축구할 기회가 없었을까?” “우리는 정말 운동을 싫어했을까?”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그런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고 아쉬워하면서도 이제라도 만난 넓은 피치 위의 세계를 아낌없이 사랑하면서 공 하나에 웃고 울고 싸우고 서로가 서로의 힘이 되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한 사람의 좌충우돌 생애 첫 축구 도전기에 가깝지만 축구화를 신고 첫발을 내딛는 순간 바로 깨달았다. 이 여정에는 함께하는 여자들의 축구화 스터드 자국들도 무수히 찍힐 거라는 것을. 그럴 수 있어서 든든하고 영광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녀들이 차 넣는 축구공이 골인하기를. 피치 위에, 아니 넓은 운동장 곳곳에 더 많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새겨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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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보통 눈앞의 여자가 축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녀가 아무리 축구를 오래 봐 왔다고 하더라도(심지어 그 남자보다 자주, 오래 봤더라도!) 꼭 가르치려 든다. 축구 규칙이든 축구 상식이든 뭐든. 단골 질문인 “오프사이드가 뭔지 알아요?”를 시작으로, 갑자기 소크라테스 귀신이라도 붙었는지 ‘네가 안다고 믿는 것이 사실 진짜 아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겠다.’라는 철학적 일념으로 집요하게 산파술식 질문법을 펼치기도 한다. 축구를 주제로 한 심층적인 대화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감히 남자의 영역으로 겁 없이 들어온 이 여자가 대체 여기가 어딘지 제대로 알고는 들어왔는지, 진짜로 들어와 있기는 한 건지 일종의 호구조사를 펼치는 것이다.

그러다가 허점이라도 발견하면 바로 딱 잡아채서 ‘에이.역시 잘 모르네.’라는 표정으로 반가움을 숨기지 못한 채 설명을 시작한다. 반대로 당연히 몰라야 할 여자가 생각보다(심지어 자기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 당황해서 이상한 장광설을 늘어놓거나, ‘오 제법인데!’라며 선생님이 제자 기특해하듯 귀여워해 주기도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여자가 축구 같은 걸 너무 아는 척하면 남자들이 부담스러워서 싫어해. 남자 기도 좀 세워 줘야지.” 같은 말과, 이와 정반대되는 “남자한테 인기 얻으려고 축구 보는 거지?” 같은 말을 동시에 들어야 할 때도 있다. 제발 의견 통일이라도 좀 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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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 참으로 미묘한 패스의 세계.「12가지 코드로 읽는 대한민국 축구」라는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선수들은 수백 명의 관계를 업고 뛰”고 있으며, 축구 경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경기에 참여하기 전까지 무수히 있었던 수많은 관계들이 빚어낸 ‘갈등’이다. 그러므로 경기의 내용은 그 경기에 관여하는 수많은 관계들을 읽게 해 주는 단서이다.” 선수들도 이걸 본능적으로 알기에 관계에 이상 신호가 들어오면 유독 패스에 민감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에게는 ‘말’에 해당하는 것이 축구인들에게는 ‘패스’인 게 아닐까? ‘싸워서 말도 안 한다’라는 표현 대신 “싸워서 패스도 안 한다.”, “싸워서 패스도 막 준다.”라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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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피치를 딛는 발에 어쩐지 힘이 들어간다. 이렇게 세상이 일방적으로 나눈 구획들이 선명하게 보일 때면, 우리가 속한 팀과 거기서 하고 있는 취미 활동이 그 영역을 어지럽히고 경계를 흐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이 ‘운동’이 되는 순간이다. 일상에서 개인이 편견에 맞서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건 결국 편견의 가짓수를 줄여 나가는 싸움 아닐까. “여자가 ㅇㅇ를(을) 한다고?”라는 문장에서 O0에 들어갈 단어의 숫자를 줄이는 것 같은. 나와 우리 팀과 수많은 여자 축구팀 동료들은 저기서 ‘축구’라는 단어 하나를 빼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