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조용히 흐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도 이것은 끝이 아니며 가장 나쁜 일도 아니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일들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걸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3월 12일,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마포대교 위에서 뛰어내렸다. 잠시 후 강 밖으로 걸어 나온 것은 남자 한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남자는 실종된다.
정희의 남편이 연락이 닿지 않는다.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몇 해 전 아이를 잃은 정희는 이제 남편마저 잃을 처지에 놓였다.
정희는 남은 힘을 쥐어짜 남편을 되찾으려 한다.
한때 북한의 요원이었던 철식은 아내와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월남했다.
남한 생활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가 함께여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아내가 어느 날 죽었다.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철식은 아내를 죽인 자를 같은 꼴로 만들지 않고서는 남은 삶을 살 수 없다.
삶이 또다시 그녀의 의지나 욕망과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정희는 고통과 시련을 통해 단단해지는 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맷집조차 만들지 못했다. 사나운 운명이 정희에게 남긴 것은 트라우마와 두려움, 그리고 그녀 자신 말고는 아무도 그녀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는 초라한 자기 연민뿐이었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된 『가장 나쁜 일』은 추리, 스릴러의 장르적 성격이 강한 소설이다.
어떠한 사건의 발생으로부터 파생된 사건들이 숨 쉴 틈 없이 뒤이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서로 긴밀하게 엮인다. 책을 한 번 펼치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지 않고는 책을 덮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꼭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데, 영화로 치자면 연출 방식이 독특하다. 한 챕터 내에서도 초점자가 쉼없이 바뀌며, 얼른 보기에는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서사가 나열된다.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그들의 이야기가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서서히 드러난다.
때문에, 이 책은 아무런 정보 없이 읽는 편이 가장 좋다. 도통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시작해, 후반부에서 모든 퍼즐이 착착 맞춰지고 드러나는 진상에 희열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가 반 이상 날아가고도 숨통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까진 고통당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죽지 못한 자들의 숙명이니까.
『가장 나쁜 일』은 상실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았기에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의 서사이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능력도 없고, 능력이 있다 해도 그것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을 하고, 그리하여 스스로를 살린다.
이 이야기는 희망의 이야기, 구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결말 이후의 삶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힘겹고 고될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전보다 강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