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사후 발표된 마지막 작품이라서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사실 그의 전작들을 읽어보지 않아서 뭐가 다른 건지, 어떤 건지 아는 바는 없었다. 어쩌면 흔한 소재에 흔한 전개일 수도 있지만 몇 마디 읽지 않았는데도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어서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추후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비롯해서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케스가 오랜 시간 수정을 반복하면서 만들어왔으나 끝내 완성을 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하는데, 확실히 뭔가 미완성의 작품이라는 느낌은 있었다. 내용 전개가 빨랐고 휙휙 전개되는 와중에 혼란스러운 부분도 좀 있었다. 예컨대 도메니코가 계속해서 아나 이외의 여자와 잠자리를 해왔음에도 아나가 그 현실을 마주하지 않았던 것인지, 섬에서의 유희 이후 묘하게 바뀐 아나의 태도로 도메니코가 다시 밖에서 잠자리를 하기 시작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또, 아나가 과연 정말 네번째 만났던 남자를 사랑한 것일지, 아니면 모든 면에서 젠틀하고 나쁜 기억이 없었던 그 상황 때문에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모파상의 ‘달빛’에 나왔던 말처럼 사랑 자체를 사랑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아나가 진짜 사랑에 빠졌을 만한 정황이 더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케스가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야기에 좀 더 살도 붙이고 매끄럽게 전개가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기도 했지만, 그 사이사이 맥락을 내 나름대로 상상하면서 읽어나가는 재미도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아마도 아나의 어머니는 한 명의 상대와 계속 만났던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아나도 명함을 찢어버리지 않았다면 보험을 팔던 남자와 어머니와 같이 비정기적으로 만남을 지속하지 않았을까 한다. 마지막 장에서 어머니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존재를 알고 나서 어머니의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의 이유와 자신과 어머니의 공통된 운명을 직감한 것 같다. 어머니를 이장할 때 처음 관의 문이 열렸을 때 자신과 똑닮은 어머니의 모습을 본 것은 아마 이 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어머니의 유골을 자루에 담아 집으로 갖고 옴으로써 그 운명을 완전히 종결시켜버린다. 결말 부분에서 아나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나갈 것 같다는 힘찬 에너지를 받음과 동시에, 어머니를 비정기적으로 찾아오던 그 신사는 영문도 모르고 자신의 추억을 빼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 작품은 마르케스의 작품 중 여성이 주인공인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의 예술 세계의 마무리로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 중 높이 평가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짧은 길이 때문에 마르케스라는 작가를 접하기 위한 첫 작품으로 좋았다고 생각하고, 추후 더 높이 평가받는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면서 마르케스를 더 알아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