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내가 죽을 차례다

시리즈 쏜살문고 | 클라이브 제임스 | 옮김 김민수
연령 15세 이상 | 출간일 2018년 6월 1일

『죽음을 이기는 독서』 –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고 싶은 인생의 책들

_클라이브 제임스 / 민음사

 

“큰딸을 칭찬해야 할지 나무라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성경 외에는 아무것도 읽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을 때 마치 나에게 내일이라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책을 다시 집어 들도록 만든 게 바로 큰딸이기 때문이다. 큰딸은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잭 오브리」 시리즈 전작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내게 시리즈 1권인 『마스트 앤드 커맨더』를 읽어보라고 강력하게 권하면서 영화보다 훨씬 좋다고 장담했다. 그러는 큰딸의 모습은 영락없이 공짜 샘플을 건네는 마약상이었다.”

 

이 책의 저자 클라이브 제임스는 호주 출신의 자서전 작가이자 시인, 번역가, 비평가, 방송인으로 소개된다. 삼십 여권의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1962년부터 영국에서 생활하던 중, 2010년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2010년 초, 병원 문을 나서는 내 손엔 백혈병 확진과 함께 폐까지 망가졌다는 진단서가 들려 있었다. 귀에서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된 마당에 새 책이든 중요한 책이든 간에 책이라는 걸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혹은 내가 이미 아는 훌륭한 책들조차도 다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평생 책읽기와 글쓰기로 살아온 사람이, 살아있을 날들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해서 금세 책과 이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저자는 곧 자신에게 “나중에”라는 말이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마음을 다시 붙잡는다. “불이 언제 꺼질지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다면, 불이 꺼질 때까지 책을 읽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독서에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그동안 쟁여놓고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을 먼저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울러 오래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을 때는 마치 처음 읽는 새 책처럼 느껴졌다고 한다(누가 그랬던가? 치매가 오고 나서 좋은 것은 추리물을 다시 볼 때 범인이 누구인지 몰라서 끝까지 보게 된다던가. 저자는 치매는 아니었다). 그리고 다짐 한 것이 책을 새로 사지말자고 했는데, 그게 어찌 맘대로 되는 일인가. 새 책은 물론 단골 헌책방을 수시로 드나들며 책을 한보따리씩 안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입으로는 “미쳤지, 미쳤어” 하면서 “아니, 새뮤얼 존슨이라면 이렇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부질없지, 부질없어.”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불과 한 달 뒤에 태어난 저자(1939년 10월생)는 전쟁 관련 책에 관심이 많다. 앤드루 로버츠의 『마스터스 앤 커맨더스(Masters and Commanders)』(국내 미출간)를 읽으면서 극찬하고 있다. “이 책이 가진 많은 미덕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저자가 네 명의 주인공을 흥미진진한 인물로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처칠, 루스벨트, 마셜, 브룩이 모두 등장하는데, 적어도 그중 세 명은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낯설게 행동한다. 하지만 만일 히틀러와 도조 히데키가 위의 네 사람이 한 것처럼 한 팀을 꾸렸다면, 세계는 아마 사라졌을 것이다.”

 

특이한 점은 저자의 딸도 시리즈물을 추천했지만, 저자 본인도 긴 호흡으로 읽어 나갈 시리즈물들을 곁에 쌓아놓고 읽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살기 위해 읽는다’를 넘어 ‘읽기 위해 산다’라는 의미도 담긴 듯하다. 그러다보니, 내게 있는 시리즈물(대하소설)을 한번 들여다보게 된다. 읽다 만 책들이다. 언젠가 보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끔 책등에 눈길만 주던 책들을 이젠 읽어줘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태백산맥』 『한강』 공교롭게 이 두 세트 모두 조정래 작가의 작품이다. 다른 작가 소설, 비소설 분야 3~5권짜리 여러 세트도 책장에서 손짓한다. 아, 『셜록 홈즈 전집』도 있구나. 이 책의 원제는 『Latest Readings』이다. 시기적으로는 저자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후의 독서기록이다. 번역은 『죽음을 이기는 독서』라고 되어있지만, 『죽음을 늦춘 독서』 또는 『죽음의 두려움을 밀어낸 독서』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저자는 2010년에 진단을 받고 2019년 11월 24일에 영원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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