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모두가 입을 모아 위대한 책이라 칭송하기에, 대체 무엇이 그리 위대한지 궁금했다. 예컨대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곳이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에서 인데, 작중 주인공 와타나베가 이 <위대한 개츠비>를 3번째 읽고 있다는 것을 안 나가사와라가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을 정도면 나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고 중얼거리는 것을 봐도 그 위대와 위상은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1920년대의 미국 뉴욕. 소설은 증권을 배우기 위해 고향인 중서부를 떠나 동부 뉴욕으로 떠나온 캐러웨이가 이웃인 개츠비를 만나며 접한 사건과 이야기들을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풀어나가며 진행된다. 주되게는 개츠비-데이지의 치정을 다루지만, 또 그에만 국한되지 않고 톰과 머틀, 캐러웨이와 조던 베이커 등 다양한 인물을 출연시키고 또 그들 사이의 감정,관계를 조화롭게 병치시켜 작품의 주제의식을 조명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주제의식은 과연 무엇일까. 기실 나는 작품을 시험 지문 읽듯이 주제는 이러쿵 또 뭐는 이러쿵 하는 식으로 해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위대한 개츠비>는 소재의 예사스러움 때문인지 무심히 슥슥 읽다보니 단편적이게도 그저 치정극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작품으로 밖에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뒤늦게라도 눈에 불을켜고 주제의식을 담은 것 같은 의미심장한 여러 상징들을 낚아채기 시작했고, 이에 이하 내가 찾아본 상징들을 써보겠다.
첫째론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한 “방향”에 눈길을 주었다. 캐러웨이는 소설의 말미에서 “이제 나는 이 이야기가 결국 서부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며 이어 “톰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과 나는 모두 서부 출신이었고, 어쩌면 우리는 왠지 동부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어떤 결함을 공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라고 한다. 사실 나도 미국의 동부서부의 차이를 잘 모르다가도, 서부는 LA,동부는 뉴욕이라 생각하니 알아차렸다. 바로 여유로운 서부는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고, 호화스러운 동부는 물질적 가치를 중시한다는 것. 정 반대로 다른 동부로 온 서부사람들은 모두 작중에서 어딘가 공허를 느끼고 방황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매일 화려한 파티를 열며 유명인사들과 놀아 재끼는 개츠비는 밤이면 물 건너 희끄무레한 초록 빛을 바라보며 몸을 떨고, 톰과 결혼해 부유해진 데이지도 그런 생활에 권태를 느낀건지 개츠비와 바람이 나고. 사치스럽게 향락을 즐기면서도 항상 공허감에 젖어 허덕거리는 인물들이 태반이다.
둘째론 물 건너 초록색 빛과 쓰레기 강이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그리며 물 건너의 데이지네 부두 희미한 초록색 빛을 밤마다 바라본다. 이는 희미하고 이루기 지난한 꿈과 이상. 그러니까 개츠비에겐 데이지이다. 그리고 개츠비는 이 초록 빛 이상을 거의 쟁취했었다. 그러나 개츠비는 데이지를 잃고 비탄속에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당했다. 253쪽에서 캐러웨이가 말하듯,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다. 그럼 개츠비에게 남은 것은 무언가. 쓰레기 강이다.
작중에서 쓰레기 강은 몇 번씩이나 등장하며 묘사된다. 이는 비정한 현실을 상징 한 것으로 보이는데 재밌게도 이상을 상징하는 초록 빛과 아주 대조된다. 초록 빛은 희미하고, 떨어져 있고, 잡으려 하니 계속 피해가지만, 쓰레기 강은 비대히 몸집을 불려가며 잔존하고, 항상 우리곁에서, 우리를 무참히 잡아끈다.
이 두개의 상징이 시사하는 바는 이러하다. 1차대전에서 승리해 막대한 물질적 풍요를 얻어낸 미국에서, 서부라는 정신적 가치를 상실한 주연들은 그 상실감에 사무치며 동부에서 살아간다. 여기서 톰, 데이지, 베이커는 자신을 잡아끄는 쓰레기 강. 현실에 순응하고 비열해지나 개츠비는 희미하고, 멀리 떨어져 있고, 제 손을 자꾸 피해가는 초록 빛을 잡기 위해 모든것을 내던졌다. 비록 개츠비는 실패하고 모든것을 잃으며 몰락하지만, “그 빌어먹을 인간들-톰,데이지 등-을 모두 합쳐 놓은 것만큼이나 훌룡”하다 평가된다.(217쪽)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갔지만 별로 문제 될 것은 없다-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맑게 갠 날 아침에……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이상이 그토록 잡아채기 힘들고 희미해도, 우리는 마땅히 계속 그를 좇아야한다. 이상을 좇기위해 앞으로 나아간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 동시에 이상을 좇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얍실한 가치를 위해 현실에만 안주하다 보면 결국 쓰레기 강에 떠밀려 퇴행하듯 인생을 살아야 한다.
<위대한 개츠비>. 좋았다. 소문대로 위대한 책이었다. 명불허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