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방인에게 도시는 불안과 공포의 공간이다. 모두가 그들을 환대하는 듯 보이지만, 도시에 문제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범인으로 의심받고 구석으로 내몰리는 것은 이방인이다. 도시의 구성원들은 그들에 대한 혐오의 시선과 함께 ‘이곳에 너희의 자리는 없다’며 몰아내고, 그들을 지켜줄 도시와 정부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거대한 도시 속에서 오롯이 홀로 생존해야 한다.
#2.
스웨던 스톡홀름 도심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모든 도시는 공포에 빠진다. 다른 모든 시민들이 그러하듯, 이주민들 또한 그 도시의 구성원으로써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도시의 공포는 그들에게 뒤집어 씌워진다. 이들은 아랍인이라는 이유로 계속되는 의심의 눈초리를 견뎌내야 하며, 경찰이 미행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경찰은 수상한 아랍인을 발견하고 손쉽게 미행여부를 결정하며 낌새가 보이지 않을 경우 손쉽게 미행을 종료하지만, 미행을 당하는 그 순간에 당사자들이 느낄 공포와 불안감은 그렇게 손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케미리는 이 불안과 공포를 계속해서 중첩되는 대사들을 통해 입체적으로 구현한다. 미행하는 경찰의 무전과 아무렇지 않아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미행당사자, 그리고 그에게 전화를 건 친구. 계속되는 통화와 무전, 대화들은 여러 겹으로 쌓이며 폭탄테러의 공포를 온전히 끌어안은 이방인들의 불안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3.
혐오와 차별에 가득한 도시의 시선 속에서 결국 그들은 가스라이티(gaslightee)가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랍인이기에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의심받고 미행당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그것을 ‘자신을 받아준 도시에 대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자신이 속한 이주민 집단이 가해집단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스스로 하게 된다. : ‘너희, 확신할 수 있어? 그게 내가 아니라고 100퍼센터 확신할 수 있냔 말이야?’ 이렇게, 도시의 이주민들은 ‘위험집단’으로 재정의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주민을 위험집단으로 만든 도시는 ‘위험집단’만 빼면 안전한 곳이라는 자기 합리화와 함께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이어간다. 그리고, 또다른 위기가 닥쳐오면 도시는 ‘위험집단’으로 새롭게 정의할 집단을 찾을 것이다. 그 집단은 소수자가 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