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삶이 무겁다 생각될 때 꺼내 읽고 싶어지는 제목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가볍지 않다.
사랑을 쫓지만 그 사랑에 불안하고, 불안하게 하고, 신분상승을 꿈꾸고, 자유를 택하고, 인정받는 안정된 삶을 이어가지만 때로 이율배반적인 주인공들을 보며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유연애와 같은 색다른 소재 속에 숨겨진, 체코인의 역사를 만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책의 숨은 역할이 아니었을까.
프라하를 침공한 소련군에 맞서 싸운 체코인들의 모습을 책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각 주인공들에게서 당시 체코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읽을 수 있다. 뒤틀린 모성을 가진 테레자의 어머니에게서 당시 체코의 모습(조국을 어머니라 부르기도 하기에)을, 어머니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테레자는 스위스로 망명한 밀란 쿤데라 자신을 빗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자유를 꿈꾼 사비나. 사랑을 찾아 다시 돌아온 토마시는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자신의 소망을 담지 않았을지.
또한 주인공들에게서 나의 마음과 생각을 만나기도 한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혀지는 이유도 그렇지 아닐까 싶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einmai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재룡, 민음사, 17~18쪽)
주인공들의 삶처럼 우리의 삶은 가볍지 않다. 그러나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드라마이기에, 그래서 또한 삶은 가볍다.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이 무거운 만큼 제목이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아니, 삶이 무거운 이에게는 가볍다 위로하고, 가벼이 흘려버리는 이에겐 다소 묵직한 삶을 소개하며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니 아껴가며 살아보자고 권하는 것 같다. 삶이 한 번뿐이니 가볍고 또는 무겁게.
그는 책상 앞에 앉았다. 직접 책상을 골랐다는 사실이 흡족했다… 난생 처음으로 그는 어린아이에게서 벗어나 독립적인 인간이 된 것이다… 그 순간, 그는 불현 듯 자신이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이렇듯 믿지 못할 정도로 짧은 순간에 인생의 모든 무대 장치가 갑작스레 바뀌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재룡, 민음사, 199~201쪽)
좋은 책이란 같은 답을 주지 않는다. 연령에 따라 상황에 따라, 말 걸어오는 것이 다르다. 오늘 내게는 주인공들의 생각과 삶에서 나의 모습을 보고, 나와 다른 이의 모습을 보며 이해의 폭을 넓힌다. 좋은 책은 읽을수록 좋다. 다시 읽어봄직하다. 인생은 리허설이 없으니 주어진 오늘의 시간을 살아내면 된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그저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