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과 권태 사이의 오래된 연인인 폴과 쓰레기 로제, 그리고 열정적인 사랑을 폴에게 쏟아붓는 시몽. 책은 이 세 사람의 감정을 나긋나긋하게 배열한다.
오랜 연애와 사랑을 함께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뭐가 있을까? 편안, 안정, 그리고 믿음. 연애 초반의 설렘 같은 감정은 희미해져도,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들이 만들어준 울타리는 서로 간의 마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비록 그 견고한 울타리가 때때로 서로에게 짐이 되기도 하는 순간이 있더라도.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로제는 폴과의 울타리가 부담스럽다. 오랜 연애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씁쓸하게도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를 할 수밖에 없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 부담을 기쁨으로 감싸 안을지, 혹은 포기를 할지 선택을 한다. 하지만 로제는 선택하지 않는다. 마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와 같다. 육체적인 관계는 정신적인 그것과 별개인 것이라 포장하며 폴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말한다. 그런 그를 폴은 인내한다. 그녀의 사랑엔 소유욕이란 없기 때문이다. 저녁마다 그를 기다리고, 제멋대로인 그를 기다리면서 그저 오래된 그와의 관계에서 적당한 안정감을 얻는 것에 만족한다. 아니, 만족하는 척을 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p57
그런 폴에게 시몽이란 존재는 환기였다. 처음 폴을 본 그 순간부터 무한한 사랑을 쏟았고 또 그만큼의 사랑을 갈구했다. 그런 시몽은 폴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되게 했고, 사랑 앞에 여유를 즐기게 해주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쓸쓸함 대신 벅찬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했다. 로제에게 맞춰지게끔 조절된 폴의 자아는 시몽의 존재로 인해 살아나고, 다시 그녀 스스로를 되찾는 듯했다. 아아. 여기서 소설이 끝나버렸으면 어땠을까. 폴과 시몽은 행복했을 것이고, 로제는 사랑 앞에서 죄를 진 것들에 대해 응당히 벌-폴을 잃는 것-을 받고 끝이 났겠지. 하지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저 그런 연애물 중 하나로 묻혀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폴과 시몽에게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시몽, 시몽” 그런 다음 그녀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이렇게 덧붙였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고 거기에 몸을 기댔다. p150
로제와의 재결합 이후, 폴은 그와의 울타리가 절실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 자신을 합리화 시켜버린 것은 아닐까. 사실은 그 결정이 과거를 반복하게 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열네 살 차인 시몽과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두려워서. 또 그럴 의지조차 상실하게 되었기 때문에. 애달픈 시몽에 대한 모든 복잡한 감정들은 늙었다는 말 아래 한순간에 정리가 되고 만다. ‘늙었다’! 공교롭게도, 무언가에서 회피하고 싶을 때 쓸만한 가장 좋은 단어인 것 같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스물네 살 때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내가 스물넷에 이 소설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그 시절의 나는 폴과 시몽, 로제의 감정선을 제대로 따라갈 수는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