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오만하고 편견에 사로잡힌다.

재산 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p9

 

사랑의 결실이 결혼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저마다 실패한 사랑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두 사람의 이상이 결혼이라는 현실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건들을 만족해야 쟁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이 필수가 아니게 된, 비혼율이 높아지고 있는 현재에도 결혼은 두 집안의 결합이라는 의식이 아직 만연해있다. 그렇기에 서로의 집안에 대한 조건들 또한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결혼으로 이르는 길은 더더욱 난관이 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빅토리아 시대에서 여성의 지위는 남성의 그것보다 낮았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결혼의 전제 조건인 사랑은 ‘조건’ 축에 끼기는커녕, 그들에게 사치와도 같지 않았을까.

사랑보다는 가문의 계급과 자산- 즉 외부의 조건에 결혼이 결정되는 시대에서, 돈 많고 잘난 귀족 자제인 다아시는 오만했다. 더욱이 여성의 지위는 현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던 시대에서, 엘리자베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오만한 그의 청혼을 물리친다.

 

다아시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그녀에게만큼 매혹된 적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집안이 그렇게 열등하지만 않았더라면 자신이 상당한 위기에 처해 있었을 거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p76 / 당신이 거만하고 잘난 체하며 자기 생각만 하면서 남의 감정은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저는 당신 같은 사람과 결혼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p274

 

엘리자베스에게 대차게 차이며 자신의 태도를 하나하나 지적받은 다아시는 그녀의 의견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자신의 오만함을 반성한다. 또한 엘리자베스는 첫인상과는 달리 뻔뻔한 콜린스와 거짓말과 도박으로 점철된 위컴을 겪으면서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은 편견에 불과했었음을 깨달았다. 감정의 폭발을 주고받으며 오해가 풀리며, 그제서야 서로를 제대로 마주하기 시작한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그들은 작품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결국 행복한 결혼까지 이어지게 된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드리려는 소망이 이번 일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가족은 제게 빚진 것이 없습니다. 그분들을 무척 존경은 합니다만, 저는 당신만을 생각했습니다. p501

 

현란한 수식어 하나 쓰지 않고 속삭이듯 사랑을 말하는 다아시. 엘리자베스를 보면서 나를 만족시킬 만큼의 외모는 아니라고 콧대 세우던 그분 맞으신가요..?

첫 등장부터 무뚝뚝하고 날카로워 보였던 다아시의 진심 어린 고백은 작품이 탄생하고 지금까지의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쏟아지는 로맨틱 코미디의 홍수 속에서, 수많은 다아시의 분신들이 츤데레 백마 탄 왕자님이 되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오만하고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있다. 오만의 다아시와 편견의 엘리자베스가 만나 서로를 오해하지만, 결국 자신이 잘못됨을 인정하고 사랑으로 풀어지는 과정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앞으로도 살아감에 있어, 성녀가 아닌 이상에야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단정 지어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태도를 항상 주의하고 스스로를 바꿔나간다면, 나는 조금씩 성장해나갈 것이고 결국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