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적인 작품으로 난해하기에 평론가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작품이라는데, 김석희 번역가님 말대로 심판의 K, 이방인의 뫼르소 같은 느낌도 들지만, 나에게는 암호해독과도 같은 소설이었다.
‘창백한 언덕 풍경’,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남아있는 나날들’로 이어지는 기억 삼부작으로 부커상을 수상한 후, 작가가 진정 써보고 싶은 소설을 썼다고 하고, 그만큼 실험적인 소설로 난해하다.
시공간이 불명확하고, 만나는 사람들도 모호한, 격식을 차리지만 어려운 부탁만 하는 사람들, 정작 지켜야 할 것은 지키지 못하고 겉도는 대화들은 읽어내기 힘들다.
번역가님은 라이너의 무의식이라 추정했고, 나는 언젠가부터 시공간을 벗어난 잠시 머물고 가는 연옥과도 같은 곳으로 해석을 했다. 기억이 희미해지고, 불현듯 또렷하게 떠오르기도 하는 곳. 모호한 공간 속에서 아쉬운 기억들의 편린들이 주마등 처럼 떠오르는 상태, 목적도 없고 정해진 것도 없고, 결국 무언가를 하고자 하면 상처만 받는 상태, 등장인물은 모두 라이너일 수도 있고, 그저 일반화된 사람들 일 수도 있는 안개 속 상태
순환하는 열차의 상징은 끝나지 않는 혼란, 곧 그것이 현실임을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속에서 특정한 방향성 없이 상처를 안고 사는게 곳 인생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결국 라이너가 안식을 얻는 곳은 순환하는 버스 속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이니 상처받고 모호해도 인생의 굴레를 받아 드리라는 의미인듯 하여 그 또한 아이러니하다.
복잡한 상념은 들지만 대중성에서 너무 멀리 왔기에, 가즈오 이시구로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물론 내 깜냥의 문제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