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235쪽, 세상이 결코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 딱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섹스를 솔직하고 깨끗이 드러내는 행위이지요. 더럽게 감추며 욕하는 것은 얼마든지 해도 괜찮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섹스를 더럽히고 욕할수록 그만큼 더 섹스를 좋아하지요. 하지만 만약 당신이 자신의 섹스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믿고 그것을 더럽히려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여지없이 당신을 거꾸러뜨리고 말 겁니다. 그건 정신 나간 금기 사항 중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이지요. 즉, 절대 섹스를 자연스럽고 생명의 원천이 되는 행위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이 달고 다닌 각종 오해와 오역, 오독과 잘못된 방향의 인기, ‘차탈레 부인’으로 재생산되던 흥미 자극 본위의 섹스 담화들을 작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쓴 마지막 작품이 된 이 소설을 로렌스는 순순히 출판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자비로 출판한다. 이후 삭제판과 해적판이 난무하고 3류 에로 소설로 낙인찍혔던 과거는 지금도 이 소설을 색안경을 끼고 보게 한다.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성 묘사는 지금 읽어도 놀랍긴 하다. 고전으로 숭앙받는 소설에서 ‘그’단어들이 아무렇지 않게 툭 튀어나올 때의 당혹감이란! 지금도 섹스는 한 겹 아래 커튼을 친 좁은 방 안에서 속삭이듯 이야기된다.
그렇다면, 귀족 부인 코니와 사냥터지기 맬러즈가 갖게 되는 성적 관계는 단순한 자극적인 내용을 넘어서 어떤 문학적 의미를 갖게 된다는 말일까?
-2권126쪽, 사람들의 기는 다 죽어 없어져버렸소. 자동차니 영화니 비행기니 하는 따위가 사람들에게서 마지막 남은 기까지 다 빨아 없애버리고 있소. 분명히 말하건대, 새로 태어나는 세대마다 점점 더 토끼처럼 소심해지고 고무관으로 된 창자와 양철 다리와 양철 얼굴을 하고 있을 거요. 양철 인간인 거지! 그건 모두, 인간다운 것을 말살해 버리고 기계적인 것을 숭배하는, 일종의 강고한 볼셰비키주의 같은 것이라오.
맬러즈의 입에서 반복적으로 터져나오는, 인간적인 것, 인간의 삶을 말살하는 돈과 기계의 지배를 두려워하는 마음, 진짜 인간(인간 본래의 아담과 이브)은 압살당하고 섹스는 기계적인 성행위(127쪽)로 전락한다. 그는 진짜 섹스가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섹스를 이상적으로 숭앙하는 태도 역시 그는 배격한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기쁜 마음으로 서로의 육체를 직시하고 만나는 것, 남성과 여성의 성기-맬러즈의 명명법에 따라 존 토머스와 제인 부인-에 ‘자그만 불꽃’을 피워올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육체를 가진 인간의 삶이다.
그래서 코니의 남편은 하반신이 불구가 되어 모터 의자에 의지하는 반쯤 기계에 종속된 인간으로서 맬러즈와 대척점에 선다. 모터 의자의 바퀴는 산책길의 꽃들을 거침없이 짓밟고, 그 의자에 앉아 사람은 정신적인 존재로만 남아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진화의 목표라는 사상을 떠든다. 실상 그 기계가 고장이 나 사냥터지기와 부인이 밀어 주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던 상황에 처하게 되어도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의 육체를 부정하고 부부의 관계를 정신적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지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코니가 다른 남자 사이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를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하겠다는 발언까지 한다. 육체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리하여 코니는, 채털리 부인은 자신의 육체적 삶을 일깨워 준 연인을 만나, 기계인간(?) 클리퍼드를 떠나기로 결심하면서 소설이 끝나는 것이다.
인간과 기계, 육체와 정신, 단순한 대립 구조 같으면서도 문학에서 쉼 없이 다뤄 왔고 앞으로도 다뤄야 할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로렌스는 자신의 마지막 소설 도입부에서 선언한다. ‘우리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다.’ 그 비극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비극을 해결할 방안을 찾아 끈질기게 쓴다. 소설이란 클리퍼드가 줄창 써 대는 내용 없는 무의미한 글이 아닌, ‘삶의 가장 내밀한 부분들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1권223쪽)는 글이 되어야 한다. 채털리 부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읽혀져야 한다.
우리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를 비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큰 격변이 일어났고 우리는 폐허 가운데 서 있다. 우리는 자그마한 보금자리를 새로 짓고 자그마한 희망을 새로 품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좀 어려운 일이다. 미래로 나아가는 순탄한 길이 이제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장애물을 돌아가든지 기어 넘어가든지 한다. 아무리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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