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한줄 : 세상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오만이요, 상대에 대한 편견이다.
세상 사람들은 속물이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조차도 소설을 읽고 나면 속물로 변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리자)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본 독자라면 어김없이 속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소설은 주인공과 주인공 주변 인물의 결혼과 연애를 중심 이야기로 하여 여성의 사회적 권리, 사람들 간의 선입견 등 다양한 주제를 내포한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인물들 중 가장 정상적인 인물로 나온다. 이야기의 풀이를 리자를 중심으로 하기에 독자는 자연히 리자의 생각에 물들어 소설을 읽어나가게 된다. 리자의 고민에 공감하고 같이 분노하는 사이에 우리는 그 시대의 상황을 현실로 이끌고 나오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과 현 시대에서 합일화 되는 것이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1800년대 영국은 지금과 200년이라는 시간이 대변하듯 생활 모습, 가치, 문화, 시민 간 계급 등 모든 것이 다르다. 이러한 다른 문화와 시대의 차이에서 리자의 상황을 현대로 끌어냄으로서 책의 재미를 다양화 할 수 있다. 리자와 같은 상황에 놓인 현 시대의 독자라면 고민이야 있겠지만 당연히 자신이 하고 싶은 결혼을 택하는 주체적인 삶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리자의 경우는 다르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가족의 삶과 관계가 있고 그녀의 선택이 사회적 눈치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자신의 감정을 중심으로 판단 할 수 없다.
‘결혼이 행복을 가져다주느냐는 확실치 않다 해도 가난을 피하는 가장 쾌적한 방법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했거든요.’ – 200page
그 당시의 결혼에 대한 일반적인 사고방식이 위와 같이 표현되어있다. 당시는 결혼이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집단과 집단의 문제로 보는 시대였다. 집안끼리의 계급이 맞지 않다면 결혼은 성사 될 수 없던 시기이기 때문에 리자의 고민의 깊이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리자는 그러한 편견을 깬다. 집단에서 벗어나 자신의 독립성을 중시하게 된다. 그러한 입장은 콜린스의 청혼을 거절하는 행위에서 나타난다.
‘앞으로 저를 보실 때는. 당신을 애태우기로 작정한 품위 있는 여자라고 생각지 마시고, 솔직하게 진실을 말하는 이성적인 인간으로 생각해 주세요.’ – 181 page
여기서 말하는 품위 있는 여자란 기존의 사회적 지위만을 바라고 결혼을 생각하는 속물적인 여자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녀는 선언한다. 이성적인 인간으로 대해 달라고. 이성적인 여자가 아닌 인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소설은 페미니즘 소설로 분류 되곤한다. 위와 같은 여성에서 인간으로 대해 달라는 선언도 그러한 해석의 한 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현대의 페미니즘과는 동떨어진 소설로 생각한다. 과거 1800년대의 페미니즘 소설은 계급과 사회 관습적 역할 타파의 의미였다면 현대의 페미니즘은 금전적인 이야기가 주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대적인 의미로서 페미니즘 소설로 취급할 수 없다고 본다.
리자 역시 소설의 초반에는 사교 모임에서 소위 잘나가는 남자들과 춤을 추기 위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며, 콜린스의 청혼을 거절하는 순간부터 그러한 모습에서 탈피하여 완벽한 독립적인 인간으로 변모한다. 이런 면에서 리자의 사랑의 순수성을 의심해 보았다.
사랑에는 순수성이 존재 하는가? 순수한 사랑은 존재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나 칸트의 물자체의 영역처럼 인간의 내부 혹은 어딘가에 본질의 특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본질의 세계, 우리의 현실 속으로 들어오게 되면 순수성은 사라지게 된다. 현실의 세계에는 감정의 순수함이 변질되지 않고 살아 갈 수 없다. 어떠한 상황이든 순수함에 끼어들게 마련이다. 순수함이란 오염되지 않음만을 의미 하는 바는 아니다. 깨끗한 다른 본질이 사랑이랑 본질에 끼어들게 되어도 순수함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리자의 사랑에도 역시 다양한 오염원이 존재 했다. 그것은 비단 계급에 대한 동경뿐만 아니라 금전적 풍요로움도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이러한 엘리자베스 식 오염된 사랑을 비난 할 수 없다. 비난 할 수 있는 오염된 사랑이란 샬럿 혹은 리디아의 사랑이다. 그녀들은 추한 사랑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집안의 유산을 노리고 헛된 감정을 사랑이라 속이고 결혼하는 샬럿이나, 장교라는 허울된 이미지에 반하여 자신의 감정에 속는 리디아의 바보 같은 사랑은 비난 할 수 없는 오염된 사랑이라 말 할 수 없다.
소설의 다양한 주제 중 편견이라는 주제는 제인과 리자의 대화 속에서 찾을 수 있다. 1권 17장에서는 제인과 리자가 위컴이라는 인물의 거짓말(다아시에 대한 비난)을 두고 설전을 벌인다. 당시에 리자는 다아시에 대한 반감을 중심으로 위컴의 말을 해석하여 위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반면 제인은 믿을 만한 사람인 빙리를 중심으로 해석하여 위컴의 말을 조금 의심을 한다. 이 대화에서 편견의 전단계로 볼 수 있는 선입견이 상황의 해석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 할 수 있다. 2권 1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서로 대립하게 된다. 이번의 주제는 빙리의 행동이다. 빙리는 런던으로 떠난 후 제인에게 한 통의 연락도 없게 된다. 이를 두고 리자는 빙리의 우유부단한 성격(빙리의 동생과 다아시가 제인과 빙리의 결혼을 반대한다.)에 의해 설득을 당한 것이라며 빙리를 비난한다. 하지만 제인은 빙리를 믿는다. 정말로 자신을 사랑한다면 변할리 없다는 게 그녀의 믿음의 근원이다.
편견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처음의 경우에서와 같이 잘못된 첫인상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두 번째와 같이 믿음이 과함으로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소설 속에서 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아시의 행동을 살펴본다. 힐긋 쳐다보기도 하고 눈치를 보기도 하며 다아시의 표정, 손짓, 서 있는 위치 등을 파악한다. 그리고는 혼자서 그 행동들의 정당한 이유를 찾게 된다. 여기서 편견이 발생하게 된다. 개인이 남의 행동을 혼자서 판단하게 되는 경우에는 자신의 의견 이외에는 아무것도 포함되지 않는다. 아무리 객관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주관이 된다. 그 과정에서 선입견을 낳고 선입견은 오해로 변질되며 오해는 편견으로 자라난다. 그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오해가 해소 되기는 매우 힘들다. 이 소설에서도 이 편견들의 고리를 끊어 내는 방식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대화이다.
캐서린 여사는 다아시의 친척이자 귀족이다. 그녀는 조카의 이름 없는 집안과의 결혼을 반대하고자 친히 엘리자베스를 찾아오게 된다. 캐서린의 결혼 거절 요청에 대해 리자는 영특하게 대처한다. 직접적인 거절은 없으면서도 상대에게 더 이상의 강요는 허락하지 않는 방식이다. 리자는 캐서린 여사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독립성, 자유에 대해 확실히 어필한다. 자신의 결혼은 자신의 문제이며 다아시의 결혼에 관한 문제라면 다아시에게 가서 해결하라는 이야기를 한다. 콜린스의 청혼을 거절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성적인 인간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러한 대화가 오가고 다아시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다아시는 리자의 완곡한 화법에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녀가 만약 거절의 표시를 명확히 했다면 이 소설은 비극이 되었을 것이다.
다아시는 롱번으로 찾아오게 되고 리자와의 대화로 서로의 오해를 해결하고 결혼을 하며 소설을 끝이 난다. 남의 의중을 함부로 판단하려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오만이고 상대에 대한 편견을 심어준다. 대화는 이러한 부정적인 상황을 해결하는 것에 있어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작금의 시대는 서로의 이기심이 끝도 없이 늘어나고 있다. 서로의 대화는 단절되고 자신만이 가슴 속에 남아있다. 겉치레뿐인 대화가 오가고 껍데기만이 머릿속에 남는다. 속 알맹이는 가슴 속에만 있어 전달되지 않는다. 고인 물은 썩게 된다. 가슴 속은 썩게 되고 나오는 말은 냄새가 구리다. 냄새나는 말은 상대방에 상처가 된다. 서로에 가슴에 오해만이 쌓이게 된다.
대화가 필요하다. 짧은 인생 많은 곡해를 낳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