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양과 가끔씩 장황해지는 묘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고전 소설(나에게 있어서는)이 아닌가 싶다. 몇년 전에 완독하고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사람 이름도 쉽게 익숙해지고 내면과 심리상태에 보다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소설은 안나-브론스키(불륜커플), 레빈-키티(정상커플)의 두 커플을 그 중심축으로 하면서 안나의 연애와 사랑, 레빈의 사상과 각성이라는 두 이야기의 짜임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단순히 가정소설, 불륜소설이라고 한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소설이 도시와 사교계, 농촌문제와 농민 계몽, 교육과 정치 등 러시아의 당대 모습, 그리고 더 나아가 삶과 죽음, 종교 등 보편적인 인간사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비극적이긴 했지만 솔직히 대단하긴 했고, 레빈의 유별난 농촌 사랑과 고집스러운 사상은 좀 답답하긴 했지만 감동적인 면이 있었다. 무엇보다 모든 중심 인물들이 입체적이고 생생하면서 하나같이 다 공감이 가고 마음이 간다는 점이 나에겐 가장 인상적이고 좋았다. 역시 대작의 클래스란 이런 것:)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1권 시작)
“내 생각에는…. 사람의 머릿수만큼 그 생각도 가지각색이라면, 마음의 수만큼 사랑의 종류도 다양할 것 같아요.”(1권 p.302)
가정생활에서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부부간의 완벽한 불화나 애정 어린 화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부 관계가 불명확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닐 경우에는, 아무것도 실행할 수 없게 된다. 많은 가정이 단지 완전한 불화도 화합도 없다는 이유로 부부 모두에게 지긋지긋한 그 묵은 자리에 수년 동안 머무르곤 한다. (3권 p.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