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연극만 보러 다닌 적 있었다. 수많은 포스터 중 눈길을 끄는 게 하나 있었는데 <관객모독>이었다. 당시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제목의 코너가 있어 눈에 들어왔다. 꽤 재미있어 보였지만 난 보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책으로 먼저 만나게 됐다. 딱 보기에도 얇은 <관객모독>은 작품 해설 및 작가 연보를 제외하면 64페이지다. 짧은 만큼 호흡도 빠르게 진행된다. 어떤 문단은 두 페이지가 되도록 나눠지지 않고 한 호흡으로 계속된다. 문장을 읽기만 해도 극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하다.
꽤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나도, 이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엄청난 파도가 치는 것처럼 출렁인다. 흔히 극에서 보여주는 갈등과 해결 장면은 물론이고, 줄거리조차 없다. 하지만 메시지는 가득하다. 전통적인 극과는 전혀 다른 이 이야기가 당시에 얼마나 파격적이었을지 당시의 상황이 그려진다. 작품 해설(p.75)에서 한트케는 이렇게 말한다.
내 첫 희곡들의 작법은 (……) 연극 진행을 단어들로만 한정한 것이었다. 단어들의 서로 다른 의미는 사건 진행이나 개별 이야기를 방해했다. 연극이 어떤 구체적인 상(想)을 그리지도 않고,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거나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로 착각하게끔 하지도 않으며, 오직 현실에서 쓰이는 단어와 문장으로만 구성된다는 점, 그것이 이 작법의 핵심이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방법들에 대한 거부가 내 첫 희곡의 작법이었다.
‘모든 방법들에 대한 거부가 첫 희곡의 작법이었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면서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기 위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내 이야기를 타인을 위해 적다 보니 막막했던 적이 많다. 그러나 한트케는 그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아주 담담하고 과격하게 썼다. 하지만 관객들은 환호한다.
모든 것에는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욕심을 버리는 것이 글쓰기는 물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볍게 읽기 위해 샀던 <관객모독>을 통해 모독이 아닌 ‘조언’을 얻었다. 너무 긴 문장들의 연속이라 ‘책 속의 문장’에 적지 못한 문단들이 참 많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관객모독>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면, 관객이 아닌 연기자가 되어 희극과 비극을 표현하기 원한다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