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프랑스의 행동하는 지성 앙드레 말로의 대표작, 『인간의 조건 』 , 『왕도 』의 신호탄이 된 말로 3부작 첫 소설, 인간의 실존을 강렬하고도 간결한 문체로 규명한 르포르타주 문학의 수작

정복자들

원제 Les Conquérants

앙드레 말로 | 옮김 최윤주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4년 12월 5일 | ISBN 978-89-374-6328-0

패키지 소프트커버 · 변형판 132x225 · 320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20세기를 빛낸 프랑스 문학계의 지성이자 실존적 행동주의 작가 앙드레 말로의 대표작 『정복자들 』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인간의 조건』, 『왕도』와 함께 말로 3부작을 이루는 『정복자들』은 1928년 발표된 장편 소설로, 혁명의 본질과 인간 존엄이라는 심원한 주제를 긴박감 넘치는 간결한 문체에 담아냄으로써 전 세계 문단과 독자들에게 유의미한 충격을 안겨 준 작품이다.
프랑스 파리7대학에서 실존주의 문학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역자 최윤주는 원전주의에 입각한 번역으로 내용과 주제 면에 편중된 관심을 받았던 말로 소설의 문체적 성과를 보존하고자 했다. 『정복자들』은 정복과 저항 너머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 방식을 규명한 말로의 날카로운 주제의식과 더불어 문학으로 그치지 않는 문학에 대한 소설가의 강렬한 실천 의지를 엿보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 작가 자신의 체험을 역사와 문명의 문맥으로 옮기는 데 앙드레 말로만큼 뛰어난 소설가는 없었다. ─카를로스 푸엔테스
▶ 『정복자들』의 가린은 니체가 꿈꿨던 초인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앙드레 지드
▶ 말로에 이르러, 마침내 나는 ‘인간’을 만났다. ─샤를 드골

편집자 리뷰

▶ 말로 문학의 정수가 담긴 3부작의 첫 권
20세기 혁명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한 시대의 보고서

1928년 발표된 장편 소설 『정복자들』은 발표되자마자 약관의 말로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유의미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말로 자신이 청년 시절 경험한 식민 체제, 격동기 중국의 국민당 활동 등 날것의 경험을 자본 삼아 인간의 존재 방식과 존엄성의 보존이라는 무겁고 철학적인 문제를 손에 잡힐 듯 현실적으로 전달한다. 광둥 총파업이라는 1925년 중국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약 두 달간의 시간을 다루는 이 소설은 익명의 프랑스인 서술자가 광저우에 도착해 옛 친구이자 국민당 선전부의 사령관인 가린과 조우하는 여정을 기본 플롯으로 삼고 있다. 서술자가 혁명의 격전지에서 당내 혁명가와 비밀경찰 들을 차례로 만나 가며 혁명의 진행 과정을 목격해 가는 『정복자들』은 가린이란 한 인물에게 점차 접근하여 그의 사고방식과 세계관 변화의 추이를 따라가는 일종의 탐정 소설이기도 하다.
『정복자들』은 쑨원의 국민당이 베이징 군벌 정권과 제국주의 열강에 대항할 목적으로 1923년 수립한 3차 광둥 정부를 주요 무대로 삼는다. 작가는 1925년 3월 12일 쑨원의 사망 탓에 생긴 지도력 공백과 국민당 내부적 권력 다툼 문제를 다루면서 혁명의 대의에 투신했으나 이념과 목적이 서로 달라 갈등하는 여러 ‘정복자들’ 군상을 선보인다. 테러리스트 우두머리이자 급진 좌파인 중국 청년 홍, 소비에트와의 긴밀한 협력 아래 활동하는 관료적 공산주의자 보로딘, 민족주의 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우파 진영을 대표하는 중국의 간디 쩡다이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이자 야심만만한 개인주의 전략가 가린 등을 등장시킴으로써, 이 작품은 적과 동지를 구별할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의 긴장감을 시종일관 유지한다. 또한 말로는 보로딘이나 랴오중카이 같은 실존 인물을 주변인물들로 배치함으로써 작품의 실제감을 한결 높인다.

이 작은 공간에 400~500명이 있다. 책상 옆에는 머리카락이 짧은 여학생 몇몇이 있고 천장에 매달린 대형 선풍기들은 무거운 공기를 힘겹게 휘젓는다. 서로서로 다닥다닥 붙어 앉거나 사이사이 빈자리를 두고 앉은 청중들은 주로 군인, 학생, 소상인, 하역 인부 들로 몸은 움직이지 않지만 마치 짖어 대는 개들처럼 목을 앞으로 쭉 내밀고서 목소리로 지지를 표한다. 팔짱을 끼거나 무릎 위에 팔꿈치를 기대고 있거나 손으로 턱을 괸 사람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죽은 듯이 빳빳하게 상체를 똑바로 세우고 상기된 얼굴에 턱은 앞으로 내민 채로 함성과 괴성을 계속해서 불규칙적으로 내지르고 있다.
“그자들은 그들이 우리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오 년 전부터 제국주의 영국을 마치 달걀을 깨듯이 부숴 버렸으나 그자들은 군벌 채찍 아래 배를 깔고 납작 엎드려 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자들은 돈으로 매수한 첩자와 하수인 들을 동원해서 자기들이 우리에게 혁명을 가르쳤다고 떠들어 댑니다……! 과연 우리가 그들을 필요로 했던가요……? 태평천국 장수들이 러시아인 고문들을 두었던가요……? 의화단 대표들은요?”
상스러운 중국어로 격렬하게 내뱉는 이 모든 말들이 점점 더 빈번히 터져 나오는 “그렇지! 옳소!”라는 함성에 중간중간 끊어진다. (『정복자들』 188~190쪽)

중국 혁명에 대한 말로의 통찰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노동조합의 강당에서 열린 ‘라 정크 회합’은 공산당을 포함한 국민당 내부 좌파의 갈등과 분열을 보여 주면서도 혁명을 향한 중국인들의 거칠지만 순수하고 강렬한 열망을 독자에게 각인해 준다. 이 회담에는 직업 혁명가 보로딘은 물론 혁명 사령관인 가린도 병환으로 참석하지 못하는데, 여기서 중국 혁명에 대한 말로의 전망을 짐작할 수 있다. ‘정복자들’의 시대는 머지않아 종말을 고할 것이며, 늙고 병든 서양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세상을 구축하겠다는 중국의 결코 녹록지 않은 투쟁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 현대적 글쓰기의 모범!
강렬하며 간결한 문체로 사건의 긴장감을 더한 르포르타주 문학의 수작

앙드레 말로는 초대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내면서 “국가는 예술을 감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에 봉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라는 원칙을 강력하게 내세웠다. 예술이 사치가 아니라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 활동인 말로에게 있어서 현실과 괴리되지 않는 예술을 드러내는 형식의 중요성은 상당하다.
『정복자들』이 오리엔탈리즘적 소설로 비판받지 않는 이유는 이 작품이 20세기 초엽 유럽인에게 이국적인 공간임에 분명한 당시의 중국을 여행자 시각으로 소개하거나, 현장의 경험을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실존 인물과 허구 인물을 첨예한 갈등 구조 속에 혼재시키고, 자신의 실제 경험과 역사적 사실을 작품 내 적재적소에 분배하면서 이야기를 전략적으로 구조화하는데, 이 과정에 전통적 서술 방식은 철저히 배제돼 있다.
『정복자들』의 서술자가 제공하는 정보량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기에 등장인물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그들의 심리적 갈등을 독자에게 알려 주는 독서의 안내자가 되어 주지 못한다. 게다가 실제 사건을 다룬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역사 소설로 보는 것이 무리일 정도로 사건의 개괄적인 정보조차 소설 속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사건의 부분적 정보, 등장인물의 단편적인 의견 등이 짧은 보고나 무선 전보 등의 형태로 파편화되어 제공된다. 이 불친절한 내러티브에서 느끼는 독자의 불안감은 소설 속 현장의 긴장감과 절묘하게 궤를 같이한다.

6월 25일.
‘광저우에서 총파업이 결의됐다.’
어제부터 붉은색 밑줄이 그어진 이 무선 전보가 나붙어 있다. 수평선까지 얼어붙은 인도양은 마치 옻을 발라 놓은 것처럼 번들거리기만 할 뿐 (배가 지나간 흔적도 없이) 꿈쩍도 않는다. (『정복자들』 11쪽)

5시.
‘사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조계지 전역이 암흑 속에 묻혔다. 교량은 신속히 보강됐으며 철조망 으로 통행이 차단됐다. 포함 탐조등이 교량을 밝히고 있다.’(『정복자들』 16쪽)

소설은 날짜와 시간을 병기하며 서술자 ‘나’의 일지를 보여 주는 형태로 전개된다. 어느 날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어느 날은 위에 인용한 것처럼 무선 전보 한 통으로 일축되기도 한다. 제한된 서술자 설정뿐 아니라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를 통해서 독자들은 중국 혁명의 소용돌이라는 폭력적이고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현실에 자연스럽게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 부조리할지라도 인생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총 대신 펜을 든 행동하는 지성 앙드레 말로의 인생관이 오롯이 드러난 역작

소설보다 소설 같다고 평가되는 앙드레 말로의 삶은 끊임없는 그의 모험에 기반한 것이다. 고대 도시 발굴을 위한 아라비아 반도 상공 비행이나, 스페인 내전 당시 비행기 조종사로 참여한 전투 그리고 2차 세계 대전의 포화 속에서 나치 정권에 맞선 저항 운동, 제도권 내 정치인으로서 프랑스 드골 정권에서 십여 년간 문화부 장관으로서 행한 공무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험은 실로 다양하다. 다양한 세계에의 편입과 공동체 구축의 열망은 ‘인간’과 존재 방식과 ‘사회’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말로의 깊은 고심을 보여 준다. 자칫 광둥 총파업이라는 시의성 짙은 소재에 국한하여 읽힐 수 있는 『정복자들』은 원하는 바를 쟁취하려는 정복자, 그리고 그가 극복하기 힘든 의구심과 자기 고뇌를 그리고 있는데, 이는 특이한 인간 유형에 해당된다기보다는 원초적 욕망을 지닌 보편적 인간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기질과 외부 세계와의 조응에 대한 말로의 관심은 『왕도』(1930), 『인간의 조건』(1933)까지 계속 이어진다.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 살든 그렇지 않은 다른 세상에서 살든…… 이 세상의 덧없음에 집착이나 확신이 없다면 의지도 없는 거고, 심지어 진정한 삶도 없는 거지.”
그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가 바로 이런 생각에 달려 있으며 그의 의지가 부조리라는 뿌리 깊은 강렬한 감정에서 비롯됨을 나는 잘 안다. 만일 세상이 부조리하지 않다면 그의 인생 전체는 인생의 근본적인 덧없음(따지고 보면 그를 열광케 하는) 때문이 아니라 그 어떤 희망도 찾을 길이 없다는 허망함 때문에 산산이 흩어져 버릴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린은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있다. (『정복자들』 261쪽)

혁명의 영웅이자 탁월한 전략가로 활동했던 가린이 자신의 생을 회고하는 것을 서술자 ‘나’가 듣는 장면이다. 『정복자들』의 등장인물에게 있어 인생이란 부조리한 것이지만 무의미한(무의미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가린은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떠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 의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생의 무상함에서 오며 이는 “따지고 보면 그를 열광케 하는” 것이다. 지드는 니체가 꿈꿨던 초인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 가린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니체가 그저 허무주의에 그치지 않고 마지막 희망을 제시한 것에 주목해 본다면 가린은 분명 초인(Ubermensch)에 들어맞는 인물이다. 요컨대 니체는 아득한 천상이 아닌 우리 자신 안에 잠재된 권력에의 의지에 주목함으로써 삶의 유의미성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주장했다. 실제 가린이 끊임없이 극복하고자 하는 대상은 외부의 적이나 현실 상황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부조리라는 자명한 현실은 『정복자들』을 혁명으로 이끌어 낸 근원이며, 말로 예술 전반의 동력이기도 하다. 시련과 시험의 연속인 인생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을 근본적인 물음(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이 소설은 예술가의 엄정한 세계관이 오롯이 드러난, 시대의 살아 있는 보고서인 동시에 개인과 사회의 갈등, 인간 본연의 본성 규명과 같은 우리 모두가 풀어야만 하는 현재적 물음이자 그에 대한 대답이다.

목차

1부 접근 9
2부 권력 95
3부 인간 199

작품 해설 281
작가 연보 297

작가 소개

앙드레 말로

1901년 파리에서 태어난 말로는 부모의 이혼으로 식료품 가게를 하던 외가로 이사하여 어머니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주말이나 방학은 프랑스 북부 항구 도시 됭케르크에서 부유한 선주 집안이었으나 가계가 기운 친가에서 보냈다. 1918년 학업을 포기한 뒤 독학으로 문학, 예술, 동양 문화 등 다방면의 지식을 쌓았다.
세련된 멋쟁이이자 권위를 부정하던 반항가 말로는 1923년 주식 투자 실패로 파산하고 나서 아내 클라라, 죽마고우 루이 슈바송과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로 떠났다가 도굴 혐의로 식민 당국에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아내의 구명 운동으로 석방된 후 파리로 돌아온 그는 자신이 경험한 식민 체제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고자 다시 인도차이나로 떠났고, 1925년 쑨원 사망 이후 중국 혁명의 혼란기에 국민당 소속 위원으로 활동하며 격동기의 중국을 경험했다. 1928년 발표되자마자 약관의 말로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정복자들』은 바로 이 시기의 경험을 배경으로 하며 탐험가, 예술가, 소설가, 독재에 맞서 싸운 투쟁가, 제도권 내 정치인으로서 훗날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게 될 사상의 원형을 엿보게 한다.
격동의 20세기를 마치 소설 속 인물과도 같이 파란만장하게 살았던 그는 1976년 폐울혈로 사망했다. 1996년 11월 23일 서거 20주년을 기념해 유해가 파리 팡테옹으로 이장됨으로써 그는 프랑스 공화국을 빛낸 위대한 영웅들과 함께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최윤주 옮김

성심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7대학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와 한불문화재단에서 강의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연구: ‘반대 오이디푸스’에서 ‘반(反) 오이디푸스’로」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로제 다둔의 『폭력: 폭력적 인간에 대하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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