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 계곡에서 머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 <팅커 계곡의 순례자 Pilgrim at Tinker Creek>로 1975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지은이의 에세이집. 지성과 감성, 이성과 본능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연적으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사유한 단상을 담은 글 7편을 엮었다.1979년 버지니아 주 얘키모 계곡에서 일어난 개기 일식을 관찰한 이야기, 남극 대륙에 가서 자연과 생태.인간들을 관찰한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과 우주에까지 사유의 폭을 넓힌 산문, 돌에게 말을 가르치겠다는 남자에 관한 일화 등 인간 문명과 자연, 과학과 우주에 대한 사유를 담은 글들이 실렸다.
애니 딜라드는 독특한 자연 관찰 일지인 『팅커 계곡의 순례자Pilgrim at Tinker Creek』로 1975년 퓰리처상(논픽션 부분)을 수상한 이후, 현재까지 출간하는 책마다 ‘내셔널 베스트셀러’가 되어온, 현대 미국의 대표적인 에세이스트이자 시인이다. 1975년 스물아홉 살의 여성이 일 년 동안 팅커 계곡 근방에서 야영 생활을 하면서 쓴, 일종의 ‘생태 문화 보고서’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을 때만 해도 그것은 하나의 센세이션이었다. 그러나 그 후 왕성한 에너지와 열정을 가지고 떠난 탐험 여행을 통해 얻은 영감들, 전문가 수준에 이르는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한 자연 관찰, 인간의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 폭넓은 혜안이 어우러진 산문들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애니 딜라드를 따르는 수많은 추종자들이 생겨났고, 그녀에게는 ‘대지의 성자(Earth Saint)’라는 칭호까지 주어졌다.『돌에게 말하는 법 가르치기』는 매우 다채로운 성격과 빛깔을 한 몸에 지닌 독특한 책이다. 그래서 읽는 독자에 따라서는 아주 친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혹은 전혀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로 보일 수도 있다. 환경주의와 웰빙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즈음에는 이 책을 ‘자연적’으로 살아가는 법에 대한 하나의 사례로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이 단순히 자연 예찬을 넘어서 하나의 ‘사상’으로 발전한 것처럼, 『돌에게 말하는 법 가르치기』 역시 『월든』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연 속에서 출발한 어떤 성찰이 하나의 독자적 사상으로 진화해 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다. 애니 딜라드는 우리에게 과학과 우주를 결합시켜 종교적 경지에 이르는 숭엄함과 신비로움을 일깨운다. 과학철학과 종교가 하나의 접합점을 찾아내 고유의 세계를 구축해 가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녀는 까마득한 우주로 확대되었던 시선을 다시 지상의 인간에게로 돌려 과학적이고 영적인 언어를 시적인 언어로 감싸 안는다. 여기에 애니 딜라드 산문이 가진 놀라운 힘이 담겨 있다. 끝까지 인간을 향한 사랑과 믿음을 간직하는 시선. 거기서 우리는 사색 이상의 무엇, 명상 이상의 그 무엇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현실 세계를 초극하고자 하는 한 실천적 인간의 진지한 고민을 통해 우리 생에 빛을 던져줄 어떤 통로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내용소개
일식1979년 2월 26일, 버지니아 주 얘키모 계곡에서 일어난 개기 일식을 관찰한 글. 애니 딜라드는 남편인 게리와 함께 개기 일식을 관찰하기 위해 얘키모 계곡으로 떠난다. 그런데 애니 딜라드가 묘사하고 있는 개기일식은 일식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정관념을 깬다. 그녀는 대단히 예외적이며 특별한 자연현상을 관찰할 때 일어나는 반응에 대해 대담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녀는 일식이 엄청난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연의 멋진 장관을 보고 감탄하는 수준 이상의 그 무엇, 즉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한계 밖에 있는 경험이다. 본능적으로 ‘죽음’과 ‘태어남’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 인간이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일식의 전부다. 애니 딜라드는 “그것은 마치 팔에 마취 주사를 맞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혈관을 따라 흐르는 “제 피의 무시무시한, 비인간적인 속도”를 경험할 때, 인간은 그 현상을 자연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느끼지 못하듯이, 일식을 통해 우리는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한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그 속도를 실제적으로 체험하는 순간에는 대단히 비실제적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 인간은 오직 자신의 육체성만으로 ‘실존’의 증거를 확보하고자 한다. 그래서 “정신은 전 세계를, 영원을, 신 존재를 알고자 한다. 하지만 정신의 단짝 친구는 살짝 익힌 달걀 두 개로 만족하기 마련이다.”일식에 대한 애니 딜라드의 성찰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자연과 우주에 대해 끊임없이 알고자 하지만, 경험 속에서 인간이 물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으며, 결국은 창조적 상상력과 영혼만이 이 간극을 극복할 수 있는 매개임을 깨닫는다. 이러한 성찰은 인간이 ‘과학’을 통해서 그 정신의 능력을 확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과학철학’의 기초가 된다 하겠다. 이 글이 티모시 페리스가 편찬한『세계의 대표 과학 에세이 선집』에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칼 세이건, 리처드 파인만 등의 글과 함께 ‘우수 천문학 에세이’로 선정, 수록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극지 탐험애니 딜라드는 실제로 남극 대륙에 가서 그곳의 자연과 생태, 인간들을 관찰한 경험을 여러 차례 갖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은 실제의 경험과 현재 시점(가톨릭 성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미사)이 역사적 사실(수많은 극지 탐험가들의 탐험 기록)과 결합되면서 대단히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애니 딜라드 고유의 탐험기이다. 그런데 이 탐험기는 인간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의지’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목표를 실현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해졌을 때, 그 다음에 오는 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있다. 1845년 북서항로를 찾기 위해 떠났던 영국의 ‘프랭클린 탐험대’는 출항 후 3개월 뒤 배가 난파하고 북극에서 표류하다가 대원들 전원이 사망한다. 그런데 이들이 남긴 자취를 찾아가다 보면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원정대가 배에 싣고 간 것은 탐험을 위한 장비들보다 1,200권의 책과 도자기 식기, 나이프 포크 세트, 포도주 등이 더 많았다. 그들의 복장은 북극용 방한복이 아니라 왕립 해군 제복차림이다. 한데 애니 딜라드는 이들이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의 순간에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저 정신의 노력에 갈채를 보낸다. 그리고 “상대적 접근 불가능성의 극”인 극지를 향해 떠나는 행위는 영혼에서도 상대적 접근 불가능성의 극인 ‘형이상학’에 이르고자 하는 충동과 같다고 말한다. 탐험가들이 이루어낸 성과보다 좌절의 기록에서 더 큰 영감을 얻고, 나아가 그 속에서 인간적 면모들과 인간에게 숨겨진 신성(神性)을 발견해 내는 저자의 안목이 놀랍다.
족제비처럼 살아가기저자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 주의 홀린스 연못가에서 우연히 족제비와 마주친 일화를 애니 딜라드의 예리한 성찰적 안목으로 기록한 글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물을 통해서 생의 신고를 넘어서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족제비는 한번 문 먹이는 절대로 놓지 않는 습성이 있는데, 심지어 독수리에게 잡히고서도 자신을 공격한 독수리의 목을 물고 늘어져서는 살점이 뜯겨져 해골이 될 때까지도 결코 놓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족제비를 보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싶다. 족제비가 제대로 살아가듯이. 단 하나의 필요를 붙들고 절대 놓지 않는 것, 그 필요성이 공격해 올 때마다 힘이 빠질 때까지 물고 매달리는 것은 훌륭하고 적절할 뿐만 아니라, 순종이요 또 순수라 믿는다.”특히 이 글은 애니 딜라드와 절친한 많은 동료 학자들, 비평가들, 그리고 예일대 교수들이 애니 딜라드의 최고의 산문으로 손꼽는다.
프로비덴시아의 사슴애니 딜라드는 아마존의 밀림에서도 남다른 것을 본다. 동료들(그녀를 제외하면 모두 남성들)과 아마존 밀림으로 여행을 떠난 그녀는 프로비덴시아라는 작은 마을에서 사냥으로 잡아 놓은 살아 있는 어린 사슴을 본다. 그런데 그 사슴을 보면서 그녀는 사슴 고기 스튜로 식사를 하고 마을 아이들과 놀고 수영을 하고 편안히 잠을 잔다. 이런 그녀의 태도를 본 동료들은 대단히 놀라워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간결하다. 인간이 ‘먹기 위해’ 잡은 짐승은 자연의 원칙에 따른 것일 뿐, 거기에는 어떠한 감상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애니 딜라드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 하나의 편향성을 가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그녀는 자연에 과도하게 감동하거나 과도하게 친화적이거나 과도하게 인간화하지 않는다. 그녀는 생존의 법칙과 생에서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하는 원칙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인간 역시 자연 속에서 살아나가야 하는 하나의 생명체로서의 사명을 다할 뿐이라는 점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돌에게 말하는 법 가르치기이 책의 표제작인 「돌에게 말하는 법 가르치기」는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에 사는 한 남자에 관한 일화로 시작된다. 돌에게 말을 가르치겠다는 그의 행위는 우스갯거리 농담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히 과학적인 목적을 가진(가령 원숭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것도 아니지만, 그 개인에게는 분명 중요한 하나의 “제의”이다. 애니 딜라드는 사내의 이러한 ‘제의’를 갈라파고스 군도의 “팔로 산토 나무”와 유사한 것으로 파악한다. “철마다 이 나무(팔로 산토)들은 매번 비버 연못에 빠진 자작나무들처럼 다 죽어가고, 하얗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수백 가지의 이끼들이, 수십 년이 지나도 별로 커지지 않는, 묵묵한, 겹치고 또 겹치는 폭발을 일으키며 그 나무껍질에 붙어 자라고 있다.” 팔로 산토의 이 ‘변화 없음 속의 성장’은, 일견 어리석고 쓸모없는 짓으로 비치는 “돌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려는 사내의 행위”처럼 당장에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고 심지어 그 행위자의 사후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팔로 산토 나무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성장하고 있듯이, 어쩌면 사내의 돌에게 말을 가르치는 행위도 그 나름으로 ‘자라나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의 목적이나 의미를 설명할 수도 없고 알아낼 수도 없지만 끝까지 엄숙하게 되풀이하는 자세. 그 자체가 하나의 신성함이요 감동의 대상인 것이다. 마치 인간이 생명의 궁극적 목적이나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살아나간다는 것만으로 신성한 일인 것처럼. 이렇듯 무용함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 내고, 더 나아가 인간 문명 전체에서도 그와 같은 ‘미세하지만 무한한 변화’의 과정을 읽어 내는 애니 딜라드의 눈은 분명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이 글은 《보스턴 글로브》지를 통해 \’이 시대 최고의 에세이\’로 선정되었으며 그녀가 가장 아끼는 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바위 위에서 살아가기과학계에 가장 충격적이고도 놀라운 ‘진화’였던 다윈의 진화론이 탄생한 섬 갈라파고스. 애니 딜라드는 갈라파고스 군도를 여러 차례 방문했고 그 경험 속에서 다윈의 진화론과 창조론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고유한 우주론을 만들어냈다. 그녀가 그려 보이고 있는 갈라파고스의 독특한 지형, 자연 경관과 풍토의 특징. 지구상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자적 방식으로 진화한 생명체들. 이구아나와 펭귄들. 선명한 파란색 발이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보이는 파란발 가마우지들. 절벽 틈새에 집을 짓고 죽음을 무릅쓰고 집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슴새의 습성. 다윈에게 중요한 영감을 주었던 갈라파고스 방울새들. 인간에게 박해받아 본 적이 없어서 인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바다사자들의 귀여운 행동들. 독특한 식물들, 브로멜리아드와 빵나무와 파파야와 팔로 산토 나무들 등등. 일반인이 쉽게 가볼 수 없는 갈라파고스 섬의 생물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흥미롭다. 그런데 이 생명체들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이 모든 사건의 시초인 갈라파고스 섬을 이루고 있는 ‘바위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생명의 다채로움을 잉태하고 있는 토양―대지의 무한한 가능성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흙’이라고 말하는 이 땅이 저 우주 속에서 ‘별’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흙은 폭발하고 성장하고 변형되고 소멸한다. 흙은 물만큼이나 자유자재로 변모한다. 이 세계에서 고정되어 불변하는 것은 없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인간은 그저 “노래를 부른다.”특히 이 글에서 우리는 자연을 관찰하고 탐험을 떠나는 애니 딜라드의 열정이 단순히 호사가적 취미가 아니라, 대단히 진지한 태도로 생의 비밀을 찾고자 떠나는 구도적 여정, 일종의 ‘순례’임을 선명히 깨닫게 된다.
에이스와 8의 패이 글은 애니 딜라드의 개인적인 면모가 비교적 많이 드러나는 글이다. 아홉 살짜리 소녀(애디 딜라드의 딸로 추정된다. 그녀에게는 첫 번째 남편인 리처드 딜라드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하나 있다.)와 주말을 통나무집에서 함께 보낸 체험을 쓴 이 글은, 짧은 주말여행 속에서 떠오른 어린 시절의 기억들, 추억들과 이어지면서 인생과 세월에 관한 탁견을 보여주고 있다. 농장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낡은 자전거를 수리해서 타고 언덕길을 달리는 한 소녀와 그 소녀를 바라보면서 ‘태어남과 살아감과 돌아감’을 한꺼번에 읽는 한 여인의 생은, 한마디로 ‘아름답게 떠나가기 위해 연습해 나가는 삶’으로 압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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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블링 | 2024.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