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원제 Rituelen

세스 노터봄 | 옮김 김영중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4년 5월 9일 | ISBN 978-89-374-6320-4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284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거장 세스 노터봄의 구심점이 되는 작품

20세기 서양 문명사회의 이면을 관찰하는 날카로운 철학적 시선

성찰 없는 물질세계 속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세 남자의 정신적 편력

 

집안과 절연하고 학교에서도 퇴학당한 예민한 청년 인니 빈트롭은 고모 테레제 덕분에 유산을 상속받으면서 삶이 바뀐다. 그 과정에서 고모의 옛 연인 아르놀트 타츠를 알게 되고, 그의 서양 역사와 문화, 종교에 대한 비판과 실존주의적 입장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 중년이 된 인니 빈트롭은 아내와 헤어진 뒤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이후 그림을 수집하거나 주식에 투자하고 여자들과 하룻밤을 보내면서 부유한 주변인으로서 공허한 삶에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그는 어느 날 화랑에서 우연히 동양 혼혈인 필립 타츠라는 남자를 만난 후 또 한 번 정신적 변화를 경험한다. 그는 아르놀트 타츠의 숨겨진 아들로, 아버지만큼이나 서양 문화를 증오하면서 그 대안으로 동양의 선과 도 사상, 특히 일본 다도에 깊이 심취한 인물이다. 어느 날 필립은 평생의 숙원이던 고가의 라쿠 찻잔을 구입하고, 인니는 그와 다도 의식을 체험하며 점점 깊숙이 타츠 부자의 정신적 방황에 함께 휩쓸리게 된다.

『의식』은 세스 노터봄이 첫 소설 『필립과 다른 사람들』 이후 기자와 여행 작가로 활동하다 이십여 년 만에 발표한 소설로, 출간 이후 전 세계에 크나큰 반향을 일으키며 세스 노터봄을 거장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동서양의 대표적 의식(儀式)인 가톨릭교의 미사 전례 의식과 다도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20세기의 다양한 역사적 흐름을 아우르며 공허한 현대 사회에서 각자의 의식을 통해 해답을 갈구하는 세 인물의 방황을 그렸다. 물질적인 발전이 정점을 이루었던 시대, 발전에 뒤따르는 성찰의 부재로 인해 정신적인 결핍을 겪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강렬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담아 낸 『의식』은 끝없는 레일 위를 빠르게 질주하듯 보낸 지난 세기를 반성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편집자 리뷰

네덜란드를 넘어 세계를 관찰하는 작가, 세스 노터봄

역사의 흐름과 개인적 삶을 묘사해 내는 엄중한 시선

매해 노벨 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유럽 문단의 대표적인 지성 세스 노터봄. 그는 1955년 스물둘의 나이에 첫 소설『필립과 다른 사람들』을 발표하자마자 문단의 일약 스타로 올라서며 화려하게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소설과 시, 희곡을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하는 한편『산티아고 가는 길』 등 여행 작가로도 두각을 나타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0번으로 출간된『의식』은 그가 1980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1963년『기사는 죽었다』 이후 이십여 년 만에 쓴 소설이라 특히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소설보다는 여행기로 이름이 높아가던 때 발표한 이 소설은 세스 노터봄을 단순히 스타일리시한 작가가 아닌 거장의 반열로 올려놓으며 그의 작가 생활에 큰 획을 그었다.

『의식』은 동서양의 대표적 의식인 가톨릭교의 미사 전례와 성찬식, 그리고 다도를 소재로 하여 세계 대전, 한국 전쟁, 경제 공황과 경제 발전, 신자유주의, 히피 운동, 환경 오염 등 20세기의 거대한 역사를 아우른다. 노터봄은 이 소설에서 소돔과 고모라처럼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암스테르담 한복판으로 독자를 이끌고 들어가, 사회 적응을 거부한 채 본질적인 존재의 의미를 찾으며 방황하는 인니, 아르놀트, 필립 세 남자의 묘한 인연을 보여 준다. 물질적인 발전이 정점을 이루었던 시대, 발전에 뒤따르는 성찰의 부재로 인해 정신적인 결핍을 겪으며 대안을 찾아 나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강렬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담아 낸『의식』은 끝없는 레일 위를 빠르게 질주하듯 보낸 지난 세기를 반성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사회 속 고독한 개인들이 만나는 다양한 의식들

비사회적이고 무능력한 청년 인니 빈트롭은 집안과 절연한 채 학교도 퇴학당하고 잡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우연히 고모 테레제가 그를 찾아와 유산을 받을 수 있게 해 주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유산 상속 과정에서 만난 고모의 옛 연인 ‘아르놀트 타츠’라는 남자는 그의 새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 젊은 시절 성공한 삶을 살았지만 전쟁을 겪으며 인간 세상을 혐오하게 된 아르놀트는 현재 세상일에 거리를 두고 지내는 독특한 인물이었다. 그는 인니에게 모든 경험과 감각을 기억 속에 뚜렷이 기록해 둘 것을 가르쳤고, 그의 서양 역사와 문화에 대한 비판 의식과 실존주의적 입장에 젊은 인니는 큰 영향을 받는다. 노터봄은 아르놀트라는 인물을 통해 사회를 비관하고 극단적인 인간 혐오주의에 빠져 은둔해 버린 지식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낸다.

“나는 결코 인간을 존경한 적 없네. 사람들은 대부분 겁쟁이, 체제 순응자, 정신 착란자, 수전노이지. 게다가 그들은 철면피야. (중략) 전쟁이 끝났을 때 우리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고 들을 수가 있었지. 배신, 기아, 살인, 파멸, 모두가 인간의 작품이야. 그때부터 나는 인간을 경멸하게 되었다네.” _76쪽

모임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르놀트는 가톨릭교에 대해 신부와 격앙된 토론을 하고, 인니는 그 상황을 피해 고모의 집 하녀와 육체적 관계를 맺으며 그 쾌락을 통해 현실에서 벗어난다. 이런 도피 방식은 이후 그의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데, 일시적인 쾌락을 통해 현실을 잊는 방식의 태도는 에피큐리언적인 현대인의 삶의 방식을 대변한다. 유산 상속 후에도 인니는 가끔 아르놀트 타츠와 편지를 주고받지만, 어느 날엔가 테레제 고모에게서 그가 예전부터 꿈꿔 온 대로 산속에서 얼어 죽는 방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신부님은 목구멍까지 도그마와 스콜라 철학으로 꽉 차 있습니다. (중략) 로마제국의 군사 조직을 통해 이교적 우상 숭배와 좋은 의도가 뒤섞인 기묘한 광신성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서구의 팽창욕과 식민 정책을 널리 확장시키는 데 일조했고요. 신부님이 어머니교회라 부르는 가톨릭교회는 자주 살인자가 되었으며, 때론 형리였고 언제나 폭군이었습니다.” _119쪽

삼십 대가 된 인니 빈트롭은 아내 지타를 두고 여전히 실존적인 공허함에 빠져 다른 여자들과 섹스를 하고 죽음에 대해 성찰하며 힘든 시간을 보낸다. 인니의 상태가 악화되자 지타는 결국 인니 곁을 떠나고, 그 사실에 충격받은 인니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다시 살아난 날 신문에서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소식을 본 인니는 자신의 삶과 이 시대에 혼란의 시기가 도래했음을 직감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이제 사십 대가 된 인니 빈트롭은 그림을 수집하거나 여자들과 하룻밤을 보내면서 부유한 주변인으로서 돈과 여자를 통해 공허한 삶에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그러다 사업상 방문한 화랑에서 동양 혼혈인 ‘필립 타츠’라는 인물을 알게 된다. 그는 아르놀트 타츠의 아들로, 아버지처럼 서양 문화를 증오하며 정신적인 고양을 추구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르놀트의 무신론적이고 실존주의적인 태도와는 달리 그는 동양의 선과 도 사상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

인니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낯선 동양의 문화에서 형이상학적인 해답을 구하는 필립의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어느 날 필립은 오래전부터 원하던 엄청난 고가의 라쿠 찻잔을 구입해 가고, 그에 대한 기념으로 인니와 화랑 주인을 다회(茶會)에 초대한다. 하지만 그들이 엄숙하게 일본의 다도 의식을 체험한 날 이후 필립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그를 찾아 방문한 집에서 인니는 수천 조각으로 깨진 라쿠 찻잔 조각만 발견한다. 이후 인니는 다시 한 번 ‘장례식’이라는 인간의 마지막 의식에 참석한다.

찰칵 소리가 나자 녹음 테이프에서 바흐의 제3조곡 멜로디가 나오기 시작했다. 음악이 다 끝나기 전에 관은 이미 내려졌다. 장례식은, 장례식이라 부를 수 있다면,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오 분 걸렸다. 그렇게 세상은 필립 타츠와 계산을 마쳤다. 그들이 밖으로 나오자 죽은 자가 회색빛 진눈깨비가 되어 오버코트 위로 내려와 앉았다. _255쪽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 이후 서양 사회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화무쌍한 사건들을 겪었다. 이것은 동시대 수많은 사람들에게 외면적, 내면적 후유증을 남겼다. 전후 20세기의 문학 역시 실존주의 소설에서 출발하여 칙릿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와 인간을 묘사해 왔다. 그중에서 노터봄은 지나간 20세기를 엄중한 시선으로 뒤돌아보며 우리의 역사가 어떠했는지, 사회 속 개개인의 정신적 피로와 공허에 대안이 있었는지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가톨릭 제례나 다도 같은 종교적, 사상적 의식, 혹은 섹스라는 육체적 의식에 기대어 해답을 갈구하는 세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지난 세기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빈곤했는지를 뼛속 깊이 느끼게 된다. “세스 노터봄은 우리가 겪어 온 역사의 형상들을 이해하기 때문에, 또 그 역사의 형상들을 기록하는 데 전혀 새로운 허구적 형태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위대하다.”라는 작가 A. S. 바이앳의 말처럼 노터봄은『의식』에서 문학적 허구를 통해 역사의 흐름 속 개인의 정신적 고뇌를 치밀하고 고상하게 풀어내는 대가의 면모를 보여 준다.

 

■ 언론 리뷰

세스 노터봄은 20세기 현대 작가들 중에서 단연 감수성이 강하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목소리를 내는 작가로 우뚝 서 있다.—《뉴욕 타임스》

노터봄은 큰 주제를 다루는 소설가이다. 그는 평범한 관찰 속에서 철학적 재미를 끼워 넣고, 그의 생각들은 마치 버려진 찬장 안에 숨은 천사들처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며 다가선다.—《워싱턴 포스트》

『의식』 속의 묵시론적 환상에 응답하는 도전적인 어조는 전례 없이 독창적이다.—《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이 시대에 세스 노터봄 작품을 읽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정신적 만족은 없다.—《노이에 취리허 차이퉁》

 

■ 본문 중에서

 한국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라는 말로 몇몇 사람들에 의해 38선으로 분단되었고, 베트남 전쟁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이 있었다. 물고기들은 전에는 영향이 없었던 이상한 물질로 인해 죽기 시작했다. 70년대에 접어들자 운하 위에는 차량 정체가 점점 심해졌고, 차에 탄 사람들의 얼굴에는 좌절감과 공격성이 뒤섞여 나타났다. 만물의 어머니인 자연이 파괴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고, 오염된 시대의 종말이 다가왔다는 사실, 특히 이번에는 결정적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_17~18쪽

 인니 자신이 동요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는 조용한 물체가 되어 빙빙 도는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서 위로 들어 올려졌다가 마치 채찍질로 창밖으로 내쳐지는 것 같았다. 온몸을 토해 내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모자랐다. 남아 있던 공허한 감정도 모두 밖으로 튀어 나가고 싶어 했다. 구토는 결사적으로 위로 치밀어 올라와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_129~130쪽

 마흔이 넘은 인니는 더 이상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일본어도 배우지 않을 게 확실했다. 그 확실함에 인니는 문득 슬퍼졌다. 이제 인생의 유한함이 분명해지기 시작했고 그 유한함 때문에 죽음이 가시화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옳지 않은 말이었다. 옛날에는 모든 것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인간은 본의 아니게 결정지어져야 하는 존재다. _186쪽

 잔은 폭이 넓고 뭉툭해 보였다. 사람의 손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태고에 저절로 생겨난 것 같았다. (중략) 사물의 존재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육안으로 그 사물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여기서 빗나갔다. 사물에 어떤 열반 같은 것이 있다면 이 라쿠 찻잔이야말로 벌써 영겁을 위해 열반에 이르렀을 것이다. _235쪽

목차

1부 간주곡 ․ 9

2부 아르놀트 타츠 ․ 39

3부 필립 타츠 ․ 147

 

작품 해설 ․ 271

작가 연보 ․ 317

작가 소개

세스 노터봄

1933년 7월 3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태어났다. 가출한 아버지가 2차 대전 중 헤이그 시내에 집중 투하된 폭탄에 맞아 사망한 후 독실한 가톨릭 신자와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의붓아버지에 의해 가톨릭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 학교로 보내졌으나 오래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가출을 일삼는 등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이때부터 문학적 기질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파리로 건너간 이후 이 년 동안 유럽 전역을 정처 없이 방랑하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필립과 다른 사람들』(1955)을 출간했다. 이 작품의 발표 직후 안네 프랑크 상을 수상하면서 스물둘의 젊은 나이에 일약 문단의 스타가 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체험한 색다른 경험은 작품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고, 죽음, 세계와 자아의 내면 성찰, 현실과 이상과의 관계 탐구 등 뚜렷한 작품 주제를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브뤼에에서의 어느 오후』(1963),『베를린 수기』(1990),『산티아고 가는 길』(1992) 등 여러 편의 여행기를 출간하며 여행 작가로 활동했으며, 1980년 발표한 소설『의식』으로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시와 소설, 에세이와 여행기, 희곡과 시사 평론, 샹송의 작사와 번역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의 글을 두루 써 온 노터봄은 1982년 미국의 페가수스 상을 비롯하여 유럽 문학상(1993), 독일의 괴테 상(1992), 네덜란드의 페이 세이 호프트 상(2004) 등을 수상했으며,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1991), 문학예술훈장(2003) 등을 수여받았다. 또한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 미국 현대 어문협회의 회원으로 임명되었으며,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고 있다.

김영중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 네덜란드어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와 스위스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성균관대학교에서 고대 게르만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네덜란드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한국어-네덜란드어 사전』,『네덜란드어 문법』,『네덜란드사』(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의식』,『희망과 기도』,『인도 게르만어 지역의 분류』,『희망을 키우는 착한 소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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