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백주은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1999년 10월 3일 | ISBN 978-89-374-0682-9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20쪽 | 가격 5,5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93 | 분야 민음의 시 93

책소개

제18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백주은이 다루는 시의 대상은 어두운 현실이다. 한국의 현실, 세기말의 현실, 지리멸렬하고 절망적인, 타락했으나 아무런 구원의 희망이 없는, 기분 나쁜 꿈 같은 현실, 그렇지만 견뎌내야 하는 현실에 그는 언어를 들이댄다. 그 언어는 무시무시한 도끼가 아니라 날개 달린 도끼, 혹은 부리 뾰족한 새를 닮았다. 산문적인 느낌을 주는 가벼운 언어들로 그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쪼아댄다. 물어뜯지 않고 쪼아대기, 쪼아대면서 절망의 두께 확인하기, 그리고 유머와 농담과 비아냥거림으로 지저귀기, 그의 시는 재미있게 읽힌다. 그는 뛰어난 화술을 갖고 있다. 화술이 그의 시를 움직이는 커다란 날개이다.

편집자 리뷰

백주은(白周殷)의 첫 시집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민음의 시93)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올해 <오늘의 작가상>에 투고되어 본심에서 수상작들과 경합을 벌였던 시들을 담고 있다. 백주은은 그동안 TV 극작가와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활동했으며 프리랜서로서 많은 인터뷰 글을 쓴 바 있다.
시인 최승호씨는 이 작가의 언어를 요지부동의 현실을 쪼아대는 새의 부리, 무상(無償)으로 조잘거리는 그 지저귐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프란츠 카프카는 이렇게 말했다. <대상이 없는 곳에서 언어의 도끼는 헛돈다.> 백주은이 다루는 시의 대상은 어두운 현실이다. 한국의 현실, 세기말의 현실, 지리멸렬하고 절망적인, 타락했으나 아무런 구원의 희망이 없는, 기분 나쁜 꿈 같은 현실, 그렇지만 견뎌내야 하는 현실에 그는 언어를 들이댄다. 그 언어는 무시무시한 도끼가 아니라 날개 달린 도끼, 혹은 부리 뾰족한 새를 닮았다. 산문적인 느낌을 주는 가벼운 언어들로 그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쪼아댄다. 물어뜯지 않고 쪼아대기, 쪼아대면서 절망의 두께 확인하기, 그리고 유머와 농담과 비아냥거림으로 지저귀기, 그의 시는 재미있게 읽힌다. 그는 뛰어난 화술을 갖고 있다. 화술이 그의 시를 움직이는 커다란 날개이다.
1 넉살 좋은 입담으로 에둘러 말하는 세상사
시집의 제목인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라는 물음이, 혹여 인생의 자리를 반추하거나 성찰적 사고를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오해다. 시인은 이 물음을 통해 하루라도 자신의 자리를 점검하지 않으면 곧 설 자리를 잃고 마는 우리의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질문에 대한 시인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설 자리가 너무 없다고, 모두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고 탄식을 계속했다. 설 자리가 없어졌다면, 설 자리가 안 보인다면, 나처럼 누워지내거나 앉아서 보내는 것 어떻겠느냐고 나는 한마디 하려다 참아버렸다……… (「레만호와 계륵(鷄肋)」에서)
이처럼 입심 좋은 장광설과 부산스런 너스레가 백주은의 시를 몰아가는 가장 든든한 힘이다. 시인이 뽑아내는 요설의 거미줄은 탄력있고 가볍게 하잘 것 없는 일상을 멤돌고 어느 순간 삶의 남루함을 꼼짝못하게 드러내고야 만다. 이 시인이 기대고 있는 수사란, 시의 미덕으로 여겨졌던 은유와 상징이 아닌 풍자와 반어, 쓴웃음을 자아내는 말놀음인데, 덕분에 그는 죽음이나 삶, 혹은 시대와 같은 주제 앞에서도 무겁게 가라앉지 않고 가뿐히 차고 날아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경쾌함 뒤에 감춰진 검은 페이소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2 빈한한 일상에서 찾는 삶의 명분
사랑하는 사람과는세 번씩이나 헤어졌으면서도가난과는 헤어지지 못한 그대여…..
(\”그대의 몸속에는 사리가 있다\” 에서)
시인의 눈길이 머무는 일상의 면모는 다양하다. 더께처럼 내려앉은 가난은 물론이고, 상식의 금 밖으로 내몰린 풍경들(「뜨개질하는 남자」), 첨단의 문명 속에서 물화되어 가는 인간 군상(\”달리는 것은 다 아름답다\”), 지리멸렬한 사회적 악다구니들 (\”국민을 위하여\”, \”강아지들이 너무 많다\”). 이렇게 펼쳐지는 생활의 스펙트럼을 거쳐 중년의 나이를 사는 시인은 읊조린다. 삶이란 버스 안에서 우연찮게 들려오는 라디오 프로의 인생상담, 그것을 듣고 짓는 쓴웃음과 같은 것(\”인생상담\”). 각자 자기의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인생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명분을 찾는 것이다. 자신을 겨누는 투사의 창끝, 절대 절명의 순간 앞에서 피카소의 소가 그러하듯이.
둥근 접시 속에 피카소가 가둬놓은 그 검은 소는 (…..) 투우사의 칼끝에 달려 있는 생명의 연장보다는 자유를 갈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꾸 들여다보니, 그는 바닥에서 명분을 찾느라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피카소의 소\” 에서)
살고 죽는 것, 자유와 구속 같은 관념은 한갓 미망일 뿐이다. 우리의 나날을 채우는 것은 순간순간의 명분들 혹은 변명거리들일지도 모른다.
3 침묵의 풍경들
한편, 시인이 숨을 고르고 말을 아껴 하나의 정경을 응시할 때, 그가 선사하는 이미지는 상투적이거나 즉물적인 비유를 넘어 빛나는 은유로 가득 차 있다. 그 장면들은 독자의 뒷덜미를 낚아채 한동안 시선을 허공에 묶어 놓을 만큼 아름답고 생생하다.
떠나오면서 뒤돌아보니 물위에 떠 있는 모든 섬들이 다 하나의 입술이었다. 그랬다. 그곳에서는 무수한 입술과 가슴이 모여 수런거리며 푸른 날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한려수도\” 에서)
점점이 박힌 섬 사이로 흐르는 무상한 물결들. 그러나 남해의 풍경은 시인의 음성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나고 거친 숨결로 바다의 욕망을 내뿜는다.
이 시집에 실린 총 56편의 시들은 가벼운 잡담 같고, 철지난 유행가 가사 같고, 조리 없는 독백 같고 때론 말더듬이의 수업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소하고 흔한 것들을 노래하는 데야 저자거리의 잠언과 횡설수설만큼 솔직한 것이 있을 것인가?

* 백주은
서울생. 서울대 농대 졸업. 1981년 MBC 창사기념 공모 단막 드라마 당선 1982년 서울신문사 방송평론 공모 당선 1983년 경향신문사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어떤 귀향」으로 입선1999년 시집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를 출간하며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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